[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전례 4. 한국교회의 전례 토착화
아직 멀지만 가야 할 여정 - 80년대 이후 토착화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활기를 띠면서 성가와 성미술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전례 토착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하느님나라의 씨앗을 뿌리시던 당시부터 토착화는 복음화의 중요한 관건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사명 또한 토착화의 과정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토착화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정의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가 내적으로 변모하며 다양한 인간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가 삽입되는 것”(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특별총회 최종 보고서)이다. 토착화를 위한 노력은 언제나 그 방향이 복음과 합치되어야 할 뿐 아니라 지역 교회를 보편교회의 친교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특별히 전례에 있어 토착화의 방향은 이러한 원칙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이는 토착화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종교적 혼합주의나 이와 유사한 흐름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미연에 막기 위한 것이다. 지난 199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발표한 ‘로마 전례와 토착화’(The Roman Liturgy and Inculturation)는 전례에 있어서도 토착화를 장려하면서 분명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내놓은 전례헌장의 정확한 적용을 위해 내놓은 4번째 훈령인 이 문서는 전례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 언어와 음악, 노래, 몸짓과 자세, 춤, 예술 등을 토착화가 가능한 영역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교회를 위해 분명히 필요한 경우에만 신중하게 토착화를 추진할 것을 지역교회에 조언하고 있다. 아울러 토착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반드시 충분한 설명이 따라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와 관련해 “뿌리에 충실하다는 것은 언제나 창의적이며, 깊이 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고, 새로운 도전들에 열려 있으며, ‘시대의 징표’에 깨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뿌리에 충실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역사가 그토록 자주 입증해 온 항구한 가치들과 오늘날 세계의 도전들, 신앙과 문화, 복음과 삶을 유기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례 토착화의 한계 한국 교회 차원의 전례 토착화를 위한 모색은 공의회 이후 시작되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이러한 현실은 전례가 지니는 특수한 위상과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전례의 본질과 방법 등을 다루는 전례학은 교의신학이나 기초신학 등 여타 신학들과는 방법론이 다르다. 다른 신학들은 관련 분야 학자들에 의해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와 실험들이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넓지만 전례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전례가 가톨릭교회를 ‘가톨릭’이게 하는 거의 유일한 외적 표징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례의 위상은 종종 ‘깃발’로 표현된다. 전례헌장은 제2항에서 “전례는…교회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민족들을 향하여 세워진 깃발로 보여 준다. 그 깃발 아래 하느님의 흩어져 있는 자녀들이 하나로 모여, 마침내 한 우리에서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전례는 가톨릭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아래 모일 수 있게 하는 깃발이기 때문에 개별 교회나 신학자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을 수 밖에 없다. 또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펴낸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에 전례에 관한 세세한 규정들이 정해져 있어 토착화에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전례는 일반 신자들에게 어렵고 다른 신학에 비해 토착화가 뒤쳐져온 분야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한국 교회 전례 토착화 노력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전례 토착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첫 걸음은 미사 경본을 비롯한 라틴어로 사용되던 각종 예식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들 예식서들은 충실한 번역에 머물러 토착화에는 무게가 실리지 못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토착화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졌다. 전례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가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국악 장단을 차용한 국악 성가와 미사곡에 대한 시도가 이뤄졌고 1988년 예수고난회 강수근 신부가 처음으로 국악 미사곡을 작곡하는 등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흐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7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생활성가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불리기 시작했다. 1974년 성바오로딸 수도회에서 외국곡을 번안한 앨범 ‘세상에 외치고 싶어’를 내놓으면서 시작된 생활성가 바람은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됐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완전히 뿌리내렸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런 음악에 대한 평가에 있어 아직도 논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지난 1985년 가톨릭 성가집이 나왔지만 이후 20년이 넘도록 개정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례 제구와 제의 등 성미술과 관련한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꾸준한 토착화 노력이 이뤄져왔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신자 예술인들이 중심이 돼 동양적 정서와 전통적 한국미를 살린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이어지면서 가톨릭 미술이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보편성을 얻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2년 10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최종 승인된 ‘가톨릭 상장례 예식서’는 토착화 노력에 신기원을 이룬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예식서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종교 심성을 교회의 공적 전례 예식 안에 수용함으로써 토착화된 첫 공식 전례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성음악분과위원회를 재구성하고 성음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어 성음악 발전과 토착화에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미 초창기부터 ‘가사’라는 시가 형식에 신앙적 내용을 담은 ‘천주가사’라는 노래를 만들어 신앙 전파의 수단으로 삼는 등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엄격주의에 치우쳐 신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들마저 백안시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토착화가 공동체의 과정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를 포함한다고 할 때 한국 교회의 전례는 한국 신자들의 심성 안으로 한발 더 다가서야 할 것이다. ◎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이완희 신부 “우리 전통, 우리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게 토착화를 가로막는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이완희 신부(사진)는 전례 토착화의 출발점이 되는 전통 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현실을 한국 교회가 토착화 도정에서 마주친 벽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국악 미사곡을 두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국악’의 개념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편에서는 서민들의 민속 음악을, 다른 쪽에서는 궁중에서 연주되던 아악을 국악으로 정의하는 등 인식의 편차가 커 토착화의 출발선마저 정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신부는 이러한 현실에 더해 서구화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현재에서 토착화를 위한 노력의 어려움을 발견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너무나 서구화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우리 것이 더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과거의 것만을 토착화의 기준으로 고집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이신부의 의견이다. “전례 토착화는 사제나 학자가 군중들을 이끌어 시도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적 요소와 민속적 요소가 동등한 가치로 전례 구성원들 안에 스며들어 구현되는 것입니다.” 이신부는 이런 대표적인 사례를 아프리카 교회의 미사에서 찾는다. 아프리카의 토양이 전례에 자연스럽게 접목되면서 토속적인 춤과 전통 음악 등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전례의 의미를 살려내는데 기여하는 모습이 그가 발견한 토착화의 전형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한국 교회 신자들이 토착화에 대한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게 이신부의 생각이다. 그는 토착화를 위한 시도가 이뤄졌을 때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토착화를 위한 사제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제안한다. 전례가 모든 백성들을 위한 하느님의 잔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 이신부는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들의 의식과 노력이 토착화의 관건임을 역설한다.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토착화의 바탕이 됩니다. 전례의 표징을 이해하고 속뜻을 알아들을 때 전례는 풍성한 은총의 장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07년 3월 25일, 서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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