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전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전례적 개관 1571년 10월 7일 레판토(Lepanto)에서 터키군과 그리스도교 함대 사이에 대해전이 벌어졌다. 당시 비오 5세 교황은 터키 세력을 분쇄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교 세력들 간의 동맹을 성립시켰다. 교황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전 해안이 터키군의 세력 아래 놓여 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터키군의 침입을 저지시켜야 한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해전의 승패에 따라 전 유럽의 운명이 걸려 있는 전쟁이었다. 도미니코회 수도자로서 비오 5세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그리고 로사리오 형제회에게 묵주 기도를 통한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도록 요구하면서 이 전쟁의 승패를 묵주 기도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교황 자신도 솔선수범하셨다. 10월 7일, 교황이 로마 시민과 함께 묵주 기도를 바치는 동안 그리스도교 함대는 기적과도 같이 승리하였다. 그 이후 교황은 즉시 승리의 기념일인 10월 7일에 묵주 기도 축제를 거행하도록 명하였고, 클레멘스 11세 교황은 1716년 이 날을 의무 축일로 만들었으며, 레오 13세 교황은 이 축일의 등급을 상향시켰다. 그리고 이 시기에 유럽의 수많은 성당들이 묵주 기도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의 전례력 개정에서는 이 날을 의무 기념일로 정했다. 묵주 기도는 불행히도 근대의 합리적 경향 아래 현저히 뒷걸음질하였다. 묵주 기도의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 역사는 정통 경건파 유대인이 입는 외투에 다는 경패(유대인이 기도할 때 양피지에 구약성서의 문구를 적어 넣는 가죽상자로써 그 하나는 왼팔, 다른 하나는 이마에 매어 율법을 잊지 않게 하는 표지로 삼았다.)의 끈과 매듭에서 시작된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 특별히 사막이나 광야에서 수도하는 은수자들이나 그들의 금육, 극기 생활을 따르는 사람들이 즐겨 바치는 꿰는 기도,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의 기도’의 반복성이 알려졌다. 기도 횟수를 헤아리기 위해서 그들은 돌이나 또는 매듭이 있는 끈을 이용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예수의 기도’의 연속형태(예를 들면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와 ‘주님의 기도’반복)가 적극적으로 권장되었다. 그 중에서도 ‘주님의 기도’연속 형태는 수도공동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도였다. 왜냐하면 성직자들이 시편을 노래하는 동안 글을 모르는 수도자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시편 수만큼 바쳤기 때문이었다. 회중들이 시간 기도의 시편과 찬미가를 통해 주님 삶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 비해 수도자들은(문맹자) 매듭이 달린 끈을 가지고 ‘주님의 기도’횟수를 헤아리면서 주님의 강생과 수난, 승천, 부활을 묵상했던 것이다. 이때는 시편이 1백 50편이기에 기도숫자도 150회를 선호했다. 이 ‘주님의 기도’ 연속기도에서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의 방향 전이는 13~14세기에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즐겨 아베(Ave)로 시작하는 시구(時句)의 마리아께 드리는 인사기도가 생겨났고, 다른 한편으로 11~12세기 이래로 ‘아베 마리아’(루가 1,28)가 점점 더 대중적인 기도가 되었다. 프로이센의 도미니코(+1460)는 ‘주님의 기도’ 끈 외에 항상 ‘아베’로 시작하는 묵주 기도 형태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15가지의 신비가 성모송과 결부 되었다. 묵주 기도가 일반 신자들 사이에 대중적이고 즐겨 바치는 기도가 된 것은 로사리오 형제회를 통해서였다. 이 형제회는 1470년 도미니코회 회원인 Alanus de Rupe에 의해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대로 터키군의 유럽 대륙 침입에 대한 위험이 공동 묵주 기도를 촉진시켰으며, 그로 인한 전쟁의 승리로 이 축일이 생겨났다. 묵상 : 묵주 기도의 힘(고요) 10월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묵주 기도 성월로 부르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매일 묵주 기도를 공동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바치기를 권고합니다. 물론 묵주 기도를 바치지 않고도 분명 착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사람이 기도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묵주 기도 형태는 기도하는 데 더 많은 것을 도와 줄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자기와 세계 이해의 표현입니다. 기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선 자기모순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단순한 사건이나 교의적 신앙 또는 믿을 만한 지식이나 이해를 뛰어 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오히려 삶의 관점이자 모든 행위나 사고를 드러내는 뿌리입니다. 기도에는 전례기도와 사적기도가 있습니다. 성사적 교회는 전례기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묵주 기도는 사적기도 영역에 속합니다. ‘사적(私的)’이라는 말과 ‘개인적(個人的)’이란 말을 혼용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전례 기도도 사적기도와 마찬가지로 함께 바쳐져야 합니다. 사적기도는 다시금 공동으로 또는 혼자서 바쳐질 수 있기에 사람들은 묵주를 자신을 위해서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바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묵주는 사적기도의 형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적기도 형태로써의 묵주는 정관적(靜觀的)기도입니다. 묵주 기도는 특별한 무엇을 간청하거나 무엇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러한 구체적 동기의 기도가 아닙니다. 묵주 기도는 일련의 반복되는 기도 양식에 기도 원의를 접합시키는 기도입니다. 누가 묵주 기도를 바치며 그 안에서 구체적인 삶을 생각한다면, 그는 이 기도가 결코 산만한 기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형태 안에서 이 기도는 이 기도만이 간직하고 있는 독특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이 구원역사에 협력하는 마리아의 삶을 생각하고, 하루 또는 한 주간을 되돌아보아 모든 것에 감사드리거나 앞일을 생각하여 도움을 간청하거나 혹은 기도하는 가운데 다른 원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독특한 힘이 이 기도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묵주 기도는 삶에 대한 정관(靜觀)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같은 기도는 고요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오늘날의 삶의 모습 안에서 매우 필요하고 실제적인 기도입니다. 한마디로 삶을 생각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정관하도록 만드는 기도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하는 기도 형태를 가톨릭 신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들, 예를 들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도들도 이와 비슷한 기도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그런 기도형태는 무엇을 불러일으킵니까? 만일 누가 항상 똑같은 양식을 계속 반복해서 중얼거리듯이 말한다면 - 리드미컬한 음조가 생겨난다. - 그 사람은 내적으로 깊이 잠입하여 고요를 체험하게 됩니다. 누가 묵주 기도를 바치기 바로 전에 흥분되었거나 또는 불안과 걱정이 그를 혼란하게 만들어 내적인 질서나 고요를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면 이 기도의 단조로움은 그에게 내적인 음조를 얻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되어 반복하는 ‘아베 마리아’는 그를 진정시키고 이를 통하여 삶에 대해서 새로이 생각하고 묵상하게 만들어 줍니다. 우선 외적으로 묵주 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단순히 손가락으로 알을 굴리게 하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외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냥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매인 사슬을 진주처럼 빛나게 합니다. 기도사슬은 묶어져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를 마치면 우리는 이루었다거나 채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우리가 일상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기도하고 또 다시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되돌아보게 되면 우리는 보다 침착해지고 보다 안정이 됩니다. 혼란했던 내 마음은 다시금 질서를 되찾게 됩니다. 묵주 기도에서 신비를 그때그때 바치는 것은 우리 신앙에 초석이 되는 사람이 되신 주님의 강생에, 고통스러운 죽음에 그리고 주님의 부활에 우리가 눈길을 돌립니다. 반복하는 신비의 언급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해 안에서보다는 훨씬 더 깊이 우리 안에서 무의식적인 사고나 감정이 자리하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이 얼마나 단순한 기도 형태입니까! 또한 기도의 내적인 효과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되기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특히 사람이 연약하고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즉 병이나 피로 또는 지루한 여행 도중에는 그리스도의 기도로써 가장 알맞은 기도 형태가 됩니다. 중병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묵주 기도는 환자가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입니다. 환자에게 이 기도는 큰 위로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위로와 도움의 힘은 하느님께서 주시기에 묵주 기도는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이 기도에 더한 친근함과 애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0월은 묵주 기도 성월입니다. [월간 빛, 2004년 10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월성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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