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전례]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전례적 개관 교회 안에서 성인 공경의 전통은 2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순교자들은 일찍부터 신앙의 공적 증거자들인 사도들과 거의 대등하게 여겨 경신예배 안에서 공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 또는 유배당한 이들에게 특별한 공경을 드렸습니다. 로마제국에서 박해가 종식된 후 뚜르의 마르티노와 같은 뛰어난 주교들과 고행 수도자들 그리고 동정녀들도 서서히 공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뒤따랐으며, 그들의 삶은 일종의 피 흘리지 않은 순교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인 공경이 과도하게 확산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000년경에 시성(諡聖)에 대한 교회적 절차가 생겨났습니다. 그 이후부터 시성을 위한 시험이 점점 까다로워졌으며 그 중에는 무엇보다도 영웅적인 그리스도 추종과 기적을 통한 증명이 요구되었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의 뿌리는 이미 4세기에 모든 순교자들의 기념일을 지냈던 동방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축일 날짜는 개별 지역교회들 안에서 세 가지로 서로 달랐습니다. 시리아 지방의 부제인 에프렘의 증언에 의하면,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성령강림 후 주일에 이 축일을 지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 정교회는 ‘모든 성인들의 축일’이라는 이름 아래 이 날 이 축일을 지내고 있고, 동부 시리아 전례는 부활 후 금요일에 이 축일을 거행합니다. 로마 교회 안에서는 세 가지 다른 기일에 대한 흔적이 발견됩니다. 먼저 5월 13일로, 교황 보니파시오 4세(608~615)는 당시 황제인 포카스(Phokas)로부터 1백년이 넘도록 사용되지 않았던 이교도 신전인 판테온 신전을 선사받은 후 609년 5월 13일(또는 610년)에 동정녀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을 공경하는 교회로 축성하였습니다. 이 성전 축성일에 교황은 카타콤바에서 순교자의 유해를 28대의 마차에 실어 이 성전으로 옮겨오게 했습니다. 구 성당 축성 미사의 화답송은 이날의 장엄하고 화려한 순교자 유해 이송을 상기시켜 줍니다. “천주의 어린 성인들이여, 당신들의 거체에 일어나소서. 이 장소를 거룩히 하시며 백성들을 축복하소서.” 오늘날의 모든 성인 대축일에 관한 또 다른 흔적은 교황 그레고리오 3세(731~741)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교황은 베드로 대성전 안에 순교자가 아닌 모든 성인들을 공경하기 위한 경당을 세우게 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오늘날 11월 1일의 모든 성인 대축일의 동기가 생겨났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4세(828~844)의 요청에 따라 프랑크 왕국의 루드비히 왕은 주교들의 동의 아래 자기의 전 제국에 이 축일을 지내게 했습니다. 이렇게 축일미사는 기본에 있어서는 이제까지의 본문들을 이어 받았지만, 제2독서와 고유감사송을 가짐으로써 과거보다 풍요로워졌습니다. 고유감사송에서 축일의 신비를 찬미가 형식으로 노래합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의 거룩한 도시이자 우리의 고향인 천상 예루살렘을 보나이다. 그곳에서 교회의 영예로운 지체들, 이미 완성에 도달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영원히 당신을 기리나이다. 우리 또한 신앙 안에서 그 곳에서 순례하며 그들의 전구와 모범으로 용기를 얻어 약속된 목적지로 즐거이 마주 나아가나이다.” 여기서 이 축일은 성인 명부에 들어 있는 성인들뿐만 아니라 이미 완성에 도달한 모든 죽은 이들, 그러니까 죽은 우리의 친지들과 친구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묵상 (마태 5,1-12) 아주 오래 전에 한 늙은 수사가 살았습니다. 그는 수도공동체 형제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그러면서 가장 지혜로웠으며 또한 인자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날 아침 그는 멀고도 험한 길, 천국문에 이르는 길을 향해 떠났습니다. 수도자는 희망에 부풀어 웅장한 철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며 쇠문은 굳게 닫힌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단 말인가? 내가 단식하는데 소홀했다거나 기도를 조금밖에 하지 않았단 말인가?” 하고 수도자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슬퍼하면서 자기 수도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보다 강도 있게 단식하고, 보다 오래 기도하며, 보다 깊은 침묵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1년 후, 그는 아주 여위고 수척한 모습으로 천국으로 가는 험준한 길을 다시 올랐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또다시 천국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고요했으며 적막에 싸여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가?’ ‘아하! 그래, 난 수도원 안에서 항상 은둔생활을 했었지. 그러니까 난 이제까지 한 사람도 회개시키지 못했어!’ 하는 생각이 들자, 즉시 그는 큰 항구도시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항구에서 그는 자기를 이교도 나라로 실어주는 배를 탔습니다. 그는 배가 도착한 지방에 뛰어내려 항구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항만 경찰은 즉시 그를 붙잡아 타고 온 배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다음에 정박한 항구에서 그는 다시 설교를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다른 교회에서 온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한 해 꼬박 설교했으며, 용감히도 온갖 시련을 이겨내어 마침내 이제까지 어떤 선교사도 할 수 없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습니다. 이제 그는 기뻐하며 천국문으로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들여보내 주겠지.’하면서 힘껏 천국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아무런 응답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너무 큰소리였나?’ 하고 생각한 그는 아주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에도 적막만이 맴돌았을 뿐 그 어떤 응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노수도자의 얼굴빛은 창백해졌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는가? 아하, 그렇지!’ 불현듯 어떤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났습니다. ‘그래, 나는 항상 설교만 했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임무를 잊어버렸지 않은가!’ 그리고는 다시 발길을 되돌려 길을 떠난 그는 어느 대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환자를 보살피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임무를 특별히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천국에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 시간마다 환자들에게 다가가서 “차를 갖다 드릴까요? 아니면 좀 주물러 드릴까요?” 하고 묻곤 하였다. “아뇨, 난 마시고 싶지 않은데요, 벌써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하게 합니까?”하고 오히려 환자들이 짜증스레 대답했습니다. 그는 깊은 밤중에도 꾸준히 잠든 환자를 지켜보고는 규칙적으로 환자들을 깨웠습니다. “제발 날 좀 잠자게 해주시오.”하고 환자는 참다못해 소리쳤습니다. 칭찬받거나 욕을 얻어먹든지 간에 노수도자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노수도자는 다시 산으로 오르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또 한 번 두드렸으나, 불행히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으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지를 정말 알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노수도자는 천국문 가까이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저하고 같이 놀래요?”하고 어린아이가 물었습니다. 노수도자는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채 어린아이와 같이 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곧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태양은 붉은 노을을 발하면서 언덕너머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지!”하고 어린아이가 소리치자, “그래,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노수도자도 소리쳤습니다. 그의 마음은 한껏 넓어졌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세상은 정말 아름답습니다!”하고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그 순간 육중한 천국문은 삐걱거리면서 열려졌다고 합니다. 노수도자에게 신앙은 하나의 힘든 노력이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 ‘너는 단식해야 한다.’, ‘너는 기도해야 한다.’, ‘침묵해야 한다.’, ‘설교해야 한다.’, ‘전교해야 한다.’, ‘고난을 겪어야 한다.’,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 ‘자신을 버려야 한다.’ 등등.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강철 같은 의지로 이루어냈습니다. 그렇지만 천국문은 조금도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린아이와 더불어 모래성을 쌓는데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몰두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자신을 잊어 버렸을 때, 자신의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면서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 앞에서 감사드릴 때 비로소 그에게는 천국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저 유치한 이야기에 불과할까요? 설령 그렇더라도 생각해볼만한 꺼리를 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도하게 요구하고 한편으로 치우친 잘못된 신앙관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의 사람들에게 신앙은 어느 사이엔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며 내려누르는 짐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무엇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그러한 삶의 방식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완전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해내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는 또 하나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앙의 중심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느끼고 신뢰를 가지고 감사하는 자세이며 나눌 수 있게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자는 복되다. 그들에게 천국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복된 선언을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중심이자 첫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이 놀랄만한 진리에 먼저 내 자신을 맡깁시다. 우리의 가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이 진리를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만일 이 진리가 내 안에 깊이 스며들어 내 존재의 뿌리에까지 닿는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부드러워지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에 있어 너그러워지고 자비로워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울러 우리의 마음도 완전히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는 임무를 완수하거나 의무를 채우는 것으로 얻어내지 않고,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짜로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따라 사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모든 성인들,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곁에 계시는 모든 분들은 하느님의 이런 모습을 조금씩이나마 따라 사신 분들이며,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나아가 우리를 격려해줍니다. 우리 또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성인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기에 이 날은 참 기쁜 날입니다. [월간 빛, 2004년 11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월성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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