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배움터] 신약성경의 예배 (3) 초기교회의 전례 지난 호에서 ‘신약 예배의 특징’ 세 가지 ① 공동체적 차원 ② 역사적, 기념적, 예언적 차원 ③ 내적, 실천적 차원을 구약 예배의 특징과 비교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신약 예배의 실천적 측면’을 좀더 공부한 후, ‘초기 교회의 전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신약 예배의 실천적 측면 예수님은 ‘자신의 온전한 삶을 봉헌하는’ 새로운 예배를 설립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요한 4,23-24) 드려야 할 예배입니다. 신약성경의 예배는 예수님의 행위를 본받아 예배의 예식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강조점이 예식성에서 ‘실천’으로 넘어가도록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본문은 제의적 예배에 참여할 조건인 ‘내적 정결’(참조. 1코린 11,17-34)과 함께 ‘형제에 대한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생활실천의 예배, 영적 예배’를 제의적 예배의 연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흔들리지 않는 성실성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실천은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가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1-2)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1-2)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5) 신자들의 일반 사제직을 선언하는 이 대목(1베드 2,4-9)은 제의적 예배에서 사제적 봉사를 말하기 보다는 일상생활의 구체적 현장에서 이 세상을 향한 사제적 임무의 실천을 말합니다.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은”(히브 10,1) 것처럼, 세속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성별(聖別)’이라는 구약의 거룩함의 개념은 신약성경에서 세속을 ‘성화(聖化)’시키는 거룩함의 개념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일상의 구체적인 삶을 윤리적으로 성화하는 것은 훌륭한 ‘생활실천의 예배, 영적 예배’가 됩니다. 2. 초기 교회의 전례 초기 교회의 시기에 유다 예배의 많은 흔적들, 즉 축복 기도의 형태나 알렐루야(묵시 19,1-6), 아멘(1코린 14,16; 묵시 5,14; 7,12; 19,4), 호산나(로마 16,27; 갈라 1,5; 필리 4,20; 1티모 1,17)와 같은 어휘들이 전례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는 구약성경과 갖는 연속적이고 동시에 불연속적인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참신성을 점점 더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전례의 영역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교 고유의 특성에 대한 자의식의 확립은 예루살렘 대성전의 파괴(70년) 이후에 최고조에 도달합니다. 신약성경이 그리스어 ‘레이투르기아(leitourgia)’가 ‘전례’라는 의미로 단 한번만(사도 13, 2)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전례의 ‘참신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교회 공동체의 전례거행에 대해 말할 때 지속적으로 ‘모이다’와 ‘함께 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참조. 마태 18,20; 1코린 11,17.20.33-34; 14,23.26; 사도 4,31; 20,7-8; 히브 10,25; 야고 2,2 등) 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은 그리스도교 전례의 뜻 깊은 요소입니다. 공동체가 전례 집회를 갖는 장소를 ‘교회의 집’이라 부르는 것은 전례 거행을 위해 ‘부름 받은’ 공동체가 바로 ‘교회(에클레시아, ecclesia)’임을 잘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초기 교회 공동체는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사도 2,46) 또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빵을 떼어 나눈다는 표현이 ‘애찬(아가페)’과 ‘성찬(에우카리스티아)’ 가운데 무엇인지 불분명할지라도(참조. 1코린 11,17-34), 그리스도교 전례 모임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매주 기념하는 ‘주일’의 전례적 모임은 곧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게 됩니다.(참조. 1코린 16,2; 사도 20,7; 묵시 1,10) 유다 기원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서서히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준수하게 됩니다. ‘주일’이 주간의 파스카 기념일이라면, 서서히 ‘파스카 주일(예수 부활 대축일)’은 연중의 파스카 기념일로 특별한 중요성을 갖게 됩니다. 유다의 파스카 예식을 언급하는 코린토 전서에서 ‘파스카 주일’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1코린 5,7) 또한 이 본문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유다 예배에서 파스카 양이 희생되는 것을 대체한다는 자각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초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사도 2,38) 세례성사를 거행한다.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의 문맥에 의하면 이것은 세례자 요한이 예고한 “성령에 의한 세례”(참조. 마태 3,11; 마르 1,8; 루가 3,16; 요한 1,33), 예수께서 친히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신 세례이며(참조. 요한 3,3-5),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베풀라고 명령하신 세례입니다.(참조. 마태 28,18-20) 결론적으로 초기 교회는 정형화된 전례 규정을 갖지 않으면서도 이미 고유한 전례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체성사, 세례성사, 기도 모임 등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고유한 전례를 형성하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네 가지로, ①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②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 ③ 주님의 현존에 대한 신자들의 자각 ④ 성령의 활동 등입니다. 3. 글을 맺으면서 먼저 신약 예배의 실천적 측면을 전하는 신약성경의 대목들을 묵상하면서 잠시 우리의 예배가 생활실천에 가까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초기 교회의 신자들처럼 사도들의 가르침, 성찬, 친교, 기도 등과 항상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좀더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06년 5월호,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전례꽃꽂이연구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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