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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 - 10.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13 조회수464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13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갈라5,18-25 루카11,42-46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

 

 

 

오늘은 주로 성령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루가 복음의 다음 말씀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이 성령입니다.

성령을 청하는 욕심은, 성령 따라 살고 싶은 욕심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성령 따라 살 때 성령의 열매 풍성한 참 행복한 삶입니다.

과일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듯

우리가 성령 따라 살아 성령 나무가 될 때

이 성령나무에 가득 열리는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보기만 해도 탐스럽고 부러운 다음과 같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수행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업적의 산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해 성령 따라 살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에게

성령의 열매는 정적(靜的)인 덕(virtue)이 아니라

역동적(力動的)인 생명력(vitality)으로 특징지어 집니다.

활력 넘치는 역동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살아 일하는 성령의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생각만 해도 온통 주변이 환해지는 듯,

한없이 유쾌하게 하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성실, 온유, 절제라는

여덟 가지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하여 성령의 열매들 풍성한 이들이 진정 살아있는 이들이요

매력적인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우리 성령 나무에 이런 성령의 열매들은 어느 상태에 있는지요.

가끔 내 성령 나무의 성령의 열매들을 점검해봐야 하겠습니다.

육에 따라 사는 이들의 육의 행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의 차이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육에 따라 육의 행실 속에 살아들 가는지요.

사도 바오로가 육의 행실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불륜,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 따라 살 때는 어디나 천국이지만

육에 따라 살 때는 어디나 지옥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는지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볼 때

예수님의 지탄을 받고 있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들어납니다.

성령에 따른 삶이 아니라

율법에 따른 육적 삶에 기울었던 어리석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라사이들아!”

 

주님은 이들에게 행복 선언이 아니라

불행 선언이라는 충격 요법의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십일조는 충실히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소홀히 하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분별력이 결여된 지혜롭지 못한 바리사이였습니다.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실속 없는 허영심 가득한, 허영심에 노예 되어

‘참 나’의 자유를 살지 못한 불행한 바리사이들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일 줄을 알지 못한다.”

 

얼마나 위장, 위선에 능한, 진실치 못한 바리사이인지 깨닫습니다.

사람은 이들이 무덤과 같음을 모르겠지만

주님은 사악과 탐욕으로 가득한 무덤과 같은 이들의 속마음을

환히 들여다보십니다.

또 주님은 율법의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잔뜩 지워 놓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는,

솔선수범의 모범을 보이지 않는

불충실한 율법학자들에게 역시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복음에서 주님께 불행 선언의 대상인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별종의 사람들이 아니라,

육에 따라 자기중심적 이기적인 삶을 살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성령에 따라 살 때 진정 살아있는 삶이요 자유로운 삶입니다.

이래서 행복은 선택입니다.

성령에 따라 사느냐, 육에 따라 사느냐, 바로 행복의 갈림길입니다.

다음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성령 따라 행복하게 살 수 뿐이 없는 우리의 복된 운명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안 성령의 열매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 익어가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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