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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성인과 연령과 종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2,061 추천수0

[전례 해설] 성인과 연령과 종말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을 가을이라 한다지만 가을이 붉게 타버리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낙엽, 찬 서리, 쌀쌀한 바람,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죽어가는 자연을 본다. “춘추가 얼마나 되십니까?” 젊은이가 어른께 하는 질문이다. 봄철에 나이를 물으면 환갑도 한창이라 하겠지만 11월에 묻는 춘추는 다 가버린 느낌이 든다. 봄도 가을도 모두 지났으니 겨울의 골짜기만 남았다. 11월, 계절이 주는 을씨년스러움은 죽음의 계곡이요, 눈물의 구렁텅이이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 주여, 내 소리를 들어주소서. 내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 애절한 절규요 죄의 구렁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위령 성월인 11월에 신자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시편(129편) 위령 기도의 첫 구절이다. 이것은 속죄라기보다 희망의 노래이다. 속죄주께 대한 신뢰의 기도로서 교회는 이것을 죽은 이의 전례에 사용하고 있다. 이 순례의 시편은 히브리인의 전례에서 예루살렘을 순례할 때 제물을 바치기 전에 죄의 정화(淨化)를 위하여 노래했던 것으로 본다.

 

 

이름없는 모든 성인의 날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이다. 모든 성인 또는 모든 연령(연옥 영혼)이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거나 준비 중인 이승을 떠난 저 세상 사람들이다. 교회의 전례력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이름없이 조용히 가버린 사람들, 기적 같은 이야기도, 자서전이나 역사책에 기록될 것도 없는 사람들, 그저 하느님만이 아는,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미 4세기경에 모든 기억하고 순교자들을 공경하였다. 그 축일은 교회마다 달랐지만 성 에프렘의 기록에 따르면 5월 13일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성신 강림 다음 주일에 기념하였다고 기록하였고, 지금도 그리스 정교회는 이 주일을 ‘모든 성인의 주일’이란 이름으로 경축하고 있다.

 

로마에서는 609년 5월 13일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로마 판테온 신전을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축성하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면서 순교자들의 유해를 카타콤바(지하묘지)에서 교회로 모셔 왔다. 그 후 교황 그레고리오 3세(731-741년)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한 부속 교회를 모든 성인을 위해 봉헌하면서 순교자 아닌 성인들까지도 포함시키고 축일은 11월 1일로 정하였다. 835년 교황 그레고리오 4세는 이 축일을 전체 교회에 보급시켰다.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미사 제1독서(묵시록 7장)에는 이마에 도장을 받은 이스라엘 성인이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하였다. “저 사람들은 큰 혼란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이 미사의 고유 감사송은 천상의 도시 예루살렘을 경축하면서 “거기서 우리 형제들은 이미 승리의 월계관을 받아 쓰고 당신을 영원히 기리고 있나이다.”라고 감사 기도를 드린다. 영성체 후 기도문에는 성인들의 모범과 우리의 희망 및 원의가 들어 있다. “현세의 나그네 식탁에서 천상 고향의 잔칫상으로 옮겨 앉게 하소서.”

 

 

죽은 모든 영혼과의 상통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의식을 치렀다. 구약 성서에 보면 다윗왕이 상여와 무덤 앞에서 통곡하였다(2사무 3,3-34 참조). 그것은 인간적인 쓰라림을 드러낸다. 또 무덤이 없다는 것은 저주라고 생각하였다(신명 21,23 참조). 그리므로 매장 예식(토비 2,4-8), 묘지 관리(창세 23장), 음복(飮福 ; 에제 16,7), 차례(토비 4,17)도 있었다.

 

유다는 죄지은 자들이 받는 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각 사람들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2마카 12,43 참조).

 

로마 시대에 이교도들도 2월 13~22일을 죽은 이들을 위한 날로 지켰다. 이런 풍습을 그리스도인들도 받아들여 2세기부터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고 이어서 미사에도 도입하였다. 장례 후 3일과 기일을 지켰으며 얼마 뒤에는 7일, 30일, 40일도 기념하였다.

 

죽은 모든 믿는 이를 위한 기념일은 이시도로 주교(Isidor von Sevilla ; +636년)가 관할 수도자들에게 성신 강림 다음날 죽은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도록 지시한 글에서 나타난다. 오늘과 같은 11월 2일자의 위령의 날은 998년 콜뤼니(Cluny) 수도원의 오딜로(Odilo) 원장이 산하 수도원에 일년에 한 번 위령의 날을 지내도록 지시한 데서 연유한다. 이날의 기념은 곧 여러 나라로 번져 나갔다.

 

15세기말 스페인에서는 위령의 날에 모든 사제가 세 번의 미사를 지냈다. 1915년 교황 베네딕도 15세는 전체 교회 사제들에게 위령의 날 세 번의 미사 중 하나는 예물을 받고, 다른 미사는 알려지지 않은 또는 잊혀진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드리도록 하였다. 현재의 전례력도 위의 두 미사를 인정하고 셋째 미사는 교황 뜻대로 하도록 되어 있다.

 

신자들이 사도신경을 합송할 때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통공(通功)이란 쌓은 공로를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기도와 미사 참여와 성묘는 죽은 이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공로다.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들은 날마다 한 번씩 연옥 영혼들에게만 양보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다른 날 이와 같이 하는 이들은 부분 대사를 받는다(대사 총람 13항). 미사 봉헌은 가장 효과가 큰 기도이다.

 

 

그리스도왕 대축일

 

“입법은 왕이 해야 할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모든 법이 힘을 갖는 것이 아니고, 지혜 있는 왕이 힘을 갖는 것이다.” 이상적인 인격을 갖춘 왕자(王者)는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의 구성 요소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힘을 배경으로 해서 인정(仁政)을 가장하는 것은 패도(覇道)다. 반면에 덕으로써 인정을 베푸는 것을 왕도(王道)라 한다.”

 

고대 근동에서 왕권이란 신화적이었다. 에집트의 파라오는 호루스(태양신)의 화신이고, 바빌로니아의 왕은 마르둑(최고신)의 간선자였다. 왕은 인간에게 정의와 승리 그리고 평화를 보장하여야 하고 더욱 그의 덕으로 흉년과 자손의 번영, 신의 모든 축복을 가져올 임무를 띠었다.

 

성서의 하느님 왕국은 완전히 독창적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왕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야훼는 계약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하셨는데, 인간인 왕은 어느 누구도 자기 백성에게 신의 현존을 구현해 주지는 못하였다.

 

교황 비오 11세는 당시의 파괴적인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 및 전 우주에 두루 마치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으로 1925년 그리스도왕 축일을 제정하였다. 그리스도왕의 통치로 세상이 새롭게 되도록 기원하는 축일이다. 신자들의 원의는 ‘진정한 자유, 질서, 안정, 일치와 평화’이다. 이날 미사의 감사송에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로소이다.”

 

이 축일은 10월 마지막 주일로 제정되었다가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로 바뀌었다. 이 마지막 주일이란 주님이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력 전체와 세상의 종말까지도 관장하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히브 13,8),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묵시 22,13) 임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모든 인간 역사와 문화의 발전은 그리스도 왕국에서 하나로 될 것이다.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에페 1,10).

 

온 천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 청하는 최종의 기도(영성체 후 기도)는 다음과 같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나라에서 끝없이 살 수 있게 하소서.”

 

[경향잡지, 1990년 11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천안 봉명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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