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늘나라에서 작은이는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09 조회수349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늘나라에서 작은이는 - 윤경재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마태 11,11-15)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 읽기를 좋아합니다. 세계적으로 보통사람이 시 한두 수쯤 외우고 시 감상을 내는 민족이 그리 흔하지 않다고 합니다. 국어 시간에 입시교육을 무섭게 받아서가 아니라 원래 민족성이 가무와 시를 좋아해서 그렇답니다. 우리말도 이런 민족성에 알맞게 논리를 펴기보다 감상을 전하는데 적합합니다. 서양에서는 시인이라면 시 공부를 전공한 전문가를 떠올리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심정을 솔직 담백하게 드러내되 운율에 맞추면 되니 어느 정도 소양만 갖추면 쉽게 등단합니다. 그래서 시문학으로 정식 등단한 작가 비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국민이라고 합니다. 느낌을 표현하기 쉬운 우리말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셈입니다. 

수많은 시 작품이 나왔지만, 단 한 작품을 고르라면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은 천상병 시인의 귀천입니다. 여러 권의 시집도 내고 인생과 시 공부도 깊이 하여 쟁쟁한 이론으로 무장한 시인도 많지만 천상병 시인만큼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시인도 드뭅니다. 내용이 눈곱만큼의 가식도 없이 천진난만하여 쉬우면서도 삶의 질곡을 뛰어넘는 경지는 누구라도 감동을 받습니다. 나아가 이 시를 통해 고단한 삶의 위로까지 받게 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위대한 시인과 위대한 시작품이 어디 한둘이 아니겠지만 땅과 하늘을 동시에 아우르면서 이렇게 긍정적이며 미소 짓게 하는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귀천을 읽을 때마다 저는 땅 위에서 위대하다고 소문 난 누구보다 한없이 낮고 작은 사람이었던 천상병 시인이 하늘나라에서 웃음 짓고 있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치던 분도, 재력으로 부러움을 사던 이도, 사상과 종교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분도 이 땅을 떠나가고 나서 남긴 것은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땅에 남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기는 더 어렵습니다. 

천 시인은 정치권력에 밉보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서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습니다. 서울대학교 상대 출신일 정도로 명민했던 분이 바보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친구들에게 하도 손을 내밀며 천원만하고 빌리니 별명이 천원만이었답니다. 더도말고 하루에 천원만 있으면 막걸리 한잔으로 흡족한 웃음을 만면에 띠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점점 이런 분들이 드물어집니다. 모두 눈에 보이는 재물과 권력에 이끌려 더 높은 가치를 잊고 삽니다. 종교와 정신의 기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며 제 이름을 떨치기에 주력합니다. 작은 이가 되기를 주저합니다.

누구나 죽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다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인가 내세울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큰일을 해야 자격이 생기는 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꽥하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힘이 있어야 하늘나라에 쉽게 들어가는 줄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줄 알았으면서 창조주 하느님께서 보기에 좋았다고 감탄하신 새벽빛과 이슬을 벗 삼으며, 노을빛과 구름을 형제 삼을 줄 아는 이는 진정 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진정 피조물로서 작은 이가 될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