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막에 홀로 서서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0-12-12 | 조회수509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사막에 홀로 서서
지금쯤 한국은 잔뜩 추워진 날씨에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트리로 채워져 성탄절 분위기가 한창이겠지요? 제가 사는 멕시코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접어들어서 바짝 마른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멕시코시티에서 자동차로 여덟 시간가량 떨어진 ‘쎄드랄(cedral)’이라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과달루뻬 외방선교회 소속인 알베르또 부제님의 사제서품 미사가 그곳 본당에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커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일고여덟 시간 걸리는 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미사를 마치고 일본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일했던 이그나시오 신부님과 함께 ‘저에게는’ 머나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는 여행 중간마다 만나게 될 멕시코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상상하면서 이그나시오 신부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면서 여행하도록 합시다. 어때요?” 이그나시오 신부님의 대답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사람들 사는 모습을요? 만약 있다면 그리하도록 합시다.”
왜 이그나시오 신부님이 그런 대답을 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멕시코시티와 멕시코주州를 벗어나자마자 바깥 풍경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하더니 이달고주, 께레따로주, 과나화또주를 지나 중간 기착지인 싼 루이즈 뽀또시市에 이를 때까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사막뿐이었습니다.
간간이 멀리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 몇 채가 보이거나, 미국을 오가는 대형 트레일러 기사들이 식사하면서 갈증을 해소하는 조그만 가게들만 있을 뿐, 고속도로 양 옆에는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보았던 키 큰 선인장들로 꽉 찬 사막이 있을 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너 시간을 계속 사막만 바라보면서 횡단하다 보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그나시오 신부님에게 부탁해서 사막 위에 건설된 싼 루이즈 뽀또시에 잠깐 들리기로 했지요.
1500년대 후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다는 싼 루이즈 뽀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 위의 도시입니다. 멕시코의 도시 대부분이 그렇지만 싼 루이즈 뽀또 역시 옛 모습이 잘 보존된 건물들 사이사이에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좁은 골목 위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고, 거리의 악사들은 돈 몇 푼이 담긴 바이올린 케이스를 땅바닥에 펼쳐 놓고 라틴 가락을 빠르게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정복자들이 건설한 도시인 탓에 멕시코의 어느 도시를 가도 시내 중심에는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그나시오 신부님과 함께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는 젊은 한 쌍의 혼배미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객들의 옷차림새를 보아하니 꽤 부유한 집안의 결혼식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도 말할 수 없이 고급스럽게 보였고, 신랑의 얼굴에는 시종 미소가 떠날 줄 몰랐습니다.
마침내 그 둘은 하느님 앞에서 평생을 한 몸으로 살아가겠다고 서약한 뒤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인생은 참으로 사막과 같구나. 무미건조한 삶의 중간 중간에도 저런 삶의 재미가 달콤하게 흐르고 있으니….”
- 성서와 함께 12월호에서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