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Amen, I say to you,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are entering the Kingdom of God before you.
When John came to you in the way of righteousness,
you did not believe him;
but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did.
(Mt.21.32)
중국 음식점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갈등에 빠집니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자장면을 먹으면 짬뽕이 더 맛있어 보이고, 반대로 짬뽕을 먹으면 자장면이 더 맛있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짬뽕 반 자장 반의 형태인 ‘짬짜면’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신학생들과 음식점에 갔는데, 어떤 신학생이 아무런 갈등 없이 곧바로 대답합니다.
“저는 볶음밥 주세요.”
자신에게 있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볶음밥’ 하나이기에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지요.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 어떠한 갈등도 생길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항상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모든 것을 취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욕심은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의 경계 속에서도 우리들은 둘 다 얻고자 하는 갈등 속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도 또한 세속의 일도 충실하게 못하고 맙니다.
지금 저 역시 묵상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상이 있는 컴퓨터를 고쳐보겠다고 밤새 끙끙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묵상 글도 써야 하고요. 이 둘을 다하기 위해 묵상 글을 쓰는 노트북과 고치고 있는 컴퓨터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 이것도 저것도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묵상 글을 쓰는 데에만 충실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일이 세상의 일보다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모두를 다 취하려는 욕심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에 충실하기를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십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요구사항에 곧바로 뉘우치고 당신의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보면 포도원에 나간 두 부류의 사람들을 제시해 주십니다. 처음에 일하러 가기 싫다고 했다가 나중엔 일하러 간 맏이와 이들과 달리 일하러 간다고 했다가 아예 가지 않는 다른 아들을 비교하십니다. 맏아들은 주님의 말씀에 회개하고 주님의 뜻대로 생활하는 신앙인을 말하지요. 그리고 다른 아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세상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아무런 변화 없이 생활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내 자신의 선택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이것도 저것도 좋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일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칭찬을 받는 맏아들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났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것이다.(데카르트)
자유로운 달팽이(‘좋은 글’ 중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집을 갖기로 작정한 달팽이 한 마리가 있었다. 달팽이는 곧 아름다운 큰 집을 만들어 화려하게 꾸며놓고 행복해 했다.
세월이 지나 달팽이가 살던 양배추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어 이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달팽이는 집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어린 달팽이가 말했다.
“나는 작은 집을 가져야지. 어디든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게 말이야.”
달팽이는 소유로 인하여 자유를 잃었다. 하지만 달팽이처럼 그냥 누리려 할 때는 다시 자유를 회복하게 된다. 누릴 줄만 알아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Tide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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