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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동체의 질(質), 공동체의 힘(力)" - 12.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4 조회수360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2.14 화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기념일

스바3,1-2.9-13 마태21,28-32

 

 

 

 

 

"공동체의 질(質), 공동체의 힘(力)"

 

 

 

지혜로운 이들이, 자비로운 이들이 하느님의 벗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독서 시 ‘하느님의 벗’이란 말이 참 좋았습니다.

이보다 더 영예로운 칭호도 없습니다.

 

“지혜는 모든 사람에게 한량없는 보물이며

  지혜를 얻은 사람들은 지혜의 가르침을 받은 덕택으로 천거를 받아

  하느님의 벗이 된다.”(지혜7.14).

 

지혜로운 이들은, 자비로운 이들은

약하고 가난한 자들, 병들고 노쇠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이들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돌보는 이들입니다.

알고보면 약한 곳이 가장 중요한 곳이며

약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이들입니다.

건물이 좋아 좋은 공동체가 아니라

약하고 가난한 이들, 병들고 노쇠한 이들을 따뜻이 돌보는 공동체가

좋고도 강한 공동체입니다.

자비로운 주님의 눈길도 늘 이들과 이들을 돌보는 이들 위에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으로 똑똑하고 강한 이들 많아 좋은 공동체가 아니라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잘 돌보는 공동체가 좋고도 강한 공동체입니다.

이들을 향한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축복 말씀입니다.

 

“당신을 믿기에 당신께 마음을 견고히 주는 이를

  당신은 완전한 평화로 지켜주시나이다.”(이사26, )

 

주님께 마음을 견고히 줄 때

약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적 보살핌이요

이들을 완전한 평화로 지켜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런 보물 같은 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공동체가

진정 부자 공동체요 강한 공동체입니다.

이런 이들이 있는 공동체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어제 본원에 갔다가 간호 수사를 만나 감동 깊게 이야기를 들으며

분도 성인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 위에 병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하며,

  참으로 그리스도께 하듯이 그들을 섬길 것이다.”(RB36,1).

 

분도 성인의 말씀대로

병든 형제들에 대해 사랑의 배려를 다하는 수사님이었습니다.

 

“병들고 약한 형제들에 대한 배려는

  공동체의 질과 공동체의 힘을 드러냅니다.

  이들을 잘 돌보는 공동체는 질 높고 힘 있는 공동체입니다.

  반대로 이들에 대한 배려가 소홀한 공동체는 질 낮고 힘없는,

  곧 와해될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병들고 약해지면 결국 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납니다.

  마음대로 못하는 몸이요 결국 몸의 욕구만 남습니다.

  정말 약해지니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들입니다.

  그러니 일체의 판단은 보류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참아주고 이해해 주고 시중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뿐이 할 일이 없습니다.

  이분들을 돌보며 제가 변했습니다.”

 

요지의 감동적 고백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질을 반영하는 공동체의 질이요

하느님의 힘을 반영하는 공동체의 힘임을 깨닫습니다.

즉시 나라공동체도 똑같은 원리임을 깨닫습니다.

군대가 강해서 강한나라가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적으며 가난하고 약한 이들,

병들고 노쇠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의 복지제도가 잘 된 나라가

질 좋고도 힘 있는 강한 나라요 이는 국가의 우선적 책무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에서의 복지 원리가 나라 공동체에까지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이 바라시는 하늘나라의 실현입니다.

이런 나라나 공동체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나라나 가정이든 안에서의 분열로 망했지

밖에서의 침입으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작은 나라나 공동체도 사랑의 나눔으로 하나로 결속되어 있을 때

아무도 손대지 못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명료해집니다.

복음의 수석사제들과 원로들,

그리고 세리와 창녀들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수석사제들과 원로들, 종교권력은

물론 강하고 부유한 기득권층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반면 세리와 창녀들은 약하고 가난한 사랑의 배려를 받아야 사람들을,

또 하느님을 향해 마음 활짝 열려 있는 가난한 영혼들을 상징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세리와 창녀로 상징되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

바로 회개하라는 표지입니다.

회개로 마음 가난하라는,

또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대해 사랑의 배려를 실천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주님의 눈길은 늘 당신 향해 마음 열려있는

가난하고 약한 이들 위에 있습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도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을 예시합니다.

역시 회개의 대상인 강한 이들로 상징되는 반항하는 이들,

억압을 일삼는 이들, 말을 듣지 않는 이들입니다.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그러나 주님이 희망을 둔 가난하고 약한 이들,

또 이들을 사랑의 배려로 돌보는 이들에 대한 주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나는 네 한 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그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당신의 가난하고 약한 우리들을 부유하고 강한 이들로 만들어 주시어

사랑의 배려를 실천하며 살게 하십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시편34,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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