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Are you the one who is to come,
or should we look for another?”
(Lk.7.18)
제1독서 이사야 45,6ㄴ-8.18.21ㅁ-25
복음 루카 7,18ㄴ-23
요즘 텔레비전을 보다보면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 광고가 바로 보험광고입니다. 그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자동차 보험, 생명 보험은 물론이고 암보험, 치아보험 등 각종 보험광고들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험 회사들이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미리 미리 준비해라. 그렇지 않으면 큰 일 날 수 있어.”
계속해서 광고는 흘러나오고 광고 끝에는 꼭 지금 바로 전화하라며 친절하게 몇 번에 걸쳐 전화번호까지 일러줍니다. 그러다보면 자기 집 전화번호는 잊어버려도 이 보험광고 전화번호를 기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험에 꼭 가입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도 들게 됩니다.
어떤 외국인이 우리나라 보험광고를 보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 슬프고 힘든 일인데도 ‘미리 보험에 들어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고 말하면서 환자와 그의 가족들의 해맑게 웃는 것이 너무 이상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없애고자 하는 보험, 그러나 그 보험이 오히려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 삶에는 이처럼 불안 속에서 흔들리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불안에서 벗어나게 만들려는 것들 역시 나를 더 큰 불안에 떨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이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불안에서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태중에 있을 때부터 알아보았던 세례자 요한이 의심을 품고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한 메시아가 분명한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닌 것 같은 것입니다. 죄인들을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하시고,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선동하지도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시기로 한 메시아는 정치적 메시아, 벌을 주는 메시아가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다가서는 사랑의 메시아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만이 모든 불안을 벗어던지고 참으로 행복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불안 속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주님과 제대로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도 이제 딱 열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더욱 더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모든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걸어간 길을 걸어가 보기 전에는 결코 그를 이해할 수 없다.(이드리스 샤흐)
히말라야 삼목(‘좋은 글’ 중에서)
캐나다의 퀘벡에는 긴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동쪽과 서쪽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서쪽에는 여러 나무들이 울창한 반면 동쪽에는 오직 히말라야 삼목만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기이한 경관은 사람들에게 줄곧 수수께끼였다.
이 태고의 수수께끼는 한 부부에 의해서 풀렸다. 1983년의 어느 겨울날, 결혼 생활이 위태로워진 부부는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만약 여행을 통해 변화가 없으면 과감히 헤어지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큰 눈이 내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내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여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왜 동쪽에는 히말라야삼목 외에는 살 수 없었는지.”
“동쪽의 히말라야삼목은 적당히 휘어지기 때문이에요. 동쪽은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휘어질 줄 모르는 나무는 결국 부러지거나 꺾여서 죽고 말았던 거예요. 서쪽은 당연히 눈이 적고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니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살 수 있었던 거고요.”
이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다 뜨겁게 포옹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동안 내가 잘못했소. 나는 내 고집만 부릴 줄 알았지. 당신 생각을 받아들이고 양보할 줄을 몰랐소. 내가 휘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서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거요.”
아내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나 역시 나만 알아달라고 했던 걸요. 우리 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휘어질 줄 아는 부부가 되기로 해요. 그럼 적어도 서로의 고집만 피우다 부러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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