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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꼬닥꼬닥 걷는 올레길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6 조회수398 추천수11 반대(0) 신고
 
 
 

꼬닥꼬닥 걷는 올레길 - 윤경재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은 백성은 세리들까지 포함하여 모두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자기들을 위한 하느님의 뜻을 물리쳤다.” (루카 7,24-30)

 

 

언젠가 외국여행에 나가서 장사꾼들이 우리를 보고 외치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나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이 아니라 ‘빨리빨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처음 그 말을 길거리 호객꾼에게서 들었을 때 너무 놀라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줄 알았습니다. ‘싸다’라든가 ‘하나 사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면 반가워서라도 지갑을 열었을 겁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들었을 때는 반가운 마음에 흔쾌히 물건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머리 좋은 한국 관광객들은 성질도 무척 급한 편이죠. 한꺼번에 여럿이 몰려와 비슷한 물건을 다량 주문하고, 물건값은 암산으로 다 끝내고서는 주인에게 얼른 싸달라고 ‘빨리빨리’를 하도 외쳐대니 상점 주인들은 얼이 빠졌을 겁니다. 그래서 재미를 본 외국인들이 ‘빨리빨리’라는 말뜻도 모르고 저절로 외웠을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하도 그 말을 쓰니 그들은 물건이 싸고 좋다는 뜻으로 오해하고서 한국 관광객을 호객하는 말로 쓴 것입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모처럼 외국여행에 나갔으면 여유 있게 무엇인가 색다른 것을 보거나 느끼고 와야 할 텐데 그동안 우리는 단체로 증명사진이나 박고 남는 시간엔 물건 사재기에 골몰했습니다. 좋은 추억을 남기고 왔어야 할 여행이 오히려 부끄러운 낱말만 남기고 돌아온 셈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이 지금 우리를 두고 지적하시는 말씀처럼 귓가에 생생합니다. 

한 때 제주도는 신혼여행지로, 수학 여행지나 효도관광 코스로 각광받아 국내 관광객만으로도 적잖이 북적였습니다. 그러다가 외국여행이 자유화되자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제주도 여행이 돈만 비싸고 볼거리가 없다고 소문이 나 그랬습니다. 먹을거리마저 마땅치 않았습니다.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외국에 나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이제 외국여행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습니다. 나가는 분도 많아지고 방문하는 나라도 다양해졌습니다. 증명사진이나 찍고 물건 사재기나 하는 여행을 반성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천천히 감상하는 여행문화를 정착시키고 제주도를 다시 찾아오게 할 방법을 연구하던 분들이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습니다. 바다와 한라산이 어우러져 멋진 자연을 벗 삼아 걸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을 기획한 것입니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집 앞대문에서 마을 입구까지 난 골목길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발음도 입에 착착 붙으며 무척 정겨운 맛이 나는 단어입니다. 이름을 잘 붙여서인지 올레길 탐방이 큰 호응을 얻어 제주도를 방문하는 국내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요사이 인터넷이나 언론에 올레길이 만들어낸 여러 기적이 잔잔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올레길에 얽힌 이야기는 여운도 깁니다. 결혼식 축의금을 도둑맞고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월급의 절반을 압류당한 순심씨. 그녀는 올레길 자원봉사를 하면서 웃음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조폭 출신 누구는 페인트통을 들고 이정표를 그리는 ‘예술가’로 변신했답니다. 이별 여행을 왔던 연인들은 올레길에서 마음을 바꿔 다시 사랑을 가꾸기로 하고, 어떤 父子는 17년간 나눴던 것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예쁠 것도 없는 들꽃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아내가 새삼 예뻐 보여서 살며시 손을 잡았다는 남편과 이에 아내는 ‘올레의 기적’이라고 소리쳤답니다. 

올레길을 처음 창안한 서명숙 씨의 책에서 ‘꼬닥꼬닥’이라는 멋진 말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 제주 할망들은 서둘러 달려오다가 넘어지는 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재기재기 와리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게.” 빨리빨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는 말이랍니다. 한 발 한 발 뒤뚱거리며 걷는 어린 손자가 넘어질세라 염려하는 마음이 듬뿍 담겼습니다. 사랑 어린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빨리빨리 문화에서 ‘꼬닥꼬닥’ 문화로 바뀌어야 할 시기가 된 것입니다. 그간 우리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조급증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눈 돌려야 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제주 올레길이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올레길에 빠져들면서 올레꾼, 올레 바이러스, 올레병, 올레 폐인, 올레 후유증, 올레 신드롬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부수적으로 제주도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람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는 한 사람의 충정이 이끌어 낸 기적의 발자취입니다. 

유대인에게 광야는 올레길처럼 자신을 되돌아보며 깨달음을 얻는 시간과 장소였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기적을 경험하는 자리였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그런 광야에 나갔으면 무엇인가 깨닫고 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생활에 찌들어 인생 전체의 흐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살펴볼 기회가 부족할 때 광야와 올레길로 나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감사를 체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심정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변화를 인정하는 예식이 바로 요한의 세례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광야에 나갔어도 감사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태껏 누려왔던 기득권을 자신들의 공로로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변화를 받아들이고 감사를 고백할 때가 되었습니다. 광야는 꼭 사막일 까닭이 없습니다. 어디가 되었던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깨닫는 시간과 장소이기만 하면 광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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