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의 '최강일기' | |||
---|---|---|---|---|
작성자윤혜경 | 작성일2010-12-16 | 조회수51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최강일기(최강 신부님의 홈페이지) http://www.choikang.org
베가본드님의 수고로 이곳에 올라오는 최강 신부님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신부님의 홈페이지 <최강일기> 를 소개해 드립니다.
<최강일기>에서는 그동안 신부님이 쓰신 수 백 편의 주옥같은 글들을 모두 만나 보실 수 있고, '좋은 글' 섹션의 아름다운 시와 글을 벗삼아 차 한 잔 앞에 두고 조용히 몸과 영혼을 쉬실 수도 있으며, 중남미 문화와 문명, 그리고 라틴 문학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최강 일기>의 다른 섹션들에서 맛볼 수 있는 참 재미있고 정겨운 삶의 나눔, 곳곳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보물들을 글로 다 소개를 해드릴 수가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선교 사제로서 온전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당신의 삶으로 살아내고자 고뇌하는 최강 신부님의 깊은 영성, 따뜻한 마음, 솔직한 고백, 그리고 하느님 향한 끝없는 사랑을 직접 만나보시기를 바랍니다.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의 홈 페이지 주소는 http://www.choikang.org/ 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8,32)
비얌장수 -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가 제일 못견뎌하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더위를 못 참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추위에는 몹시 강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내복이란 것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더위를 못 참는다는 것은 다분히 체질과 관련이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 얼굴은 평상시에도 좀 붉은 편이어서 가끔 ‘낮술 마셨느냐’는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조금만 날씨가 더웠다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온 몸의 살갗이 빨갛게 변합니다. 이때 바로 더위를 피해서 체온을 식혀주지 않으면 불쾌지수가 너무 높아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 짜증을 내게 되고 도무지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가 않습니다.
제가 참지 못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제 어린 시절 경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집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보다 서너 살 많은 형이 뱀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 형이 들고 있는 뱀은 이미 괴롭힘을 당할 만치 당했는지 막대기에 축 늘어져서는 가끔 꼬리 부분만 살짝 움직일 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우리들을 한 줄로 죽 세우더니 한 명씩, 한 명씩 뱀을 목에 걸어 줄 테니 ‘그만’할 때까지 참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그때 당시 이미 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지만 그 형은 뱀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으므로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오만 상을 찌푸려가며 차례로 뱀을 목에 걸었고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뱀을 제 목에 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목을 놓아 울면서 그 형에게 사정을 해 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제 친구들에게 겁쟁이라고 놀림을 당할 일을 생각해 보면 그 일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당당하게 ‘악의 세력’에 맞서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어디 마음먹는 데로 다 돌아간답니까? 뱀의 그 소름끼치는 차디찬 느낌이 목에 닿자마자 저는 기절해 버렸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니까 일단 한마리만 잡솨봐’를 연신 외치면서 무슨 책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자기가 책임은 못 진다는 뱀장수 근처에도 못 가게 된 것은 물론 티비에 나오는 뱀조차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할 정도로 뱀에 대해서는 극도의 공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주일 동안의 여유가 생겨서 깜뻬체 교구에 다녀왔습니다. 깜뻬체는 ‘과테말라’와 ‘벨리스’라는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멕시코 남동부에 위치한 유까딴 반도의 한 주州로서 앞으로 제가 가서 일 할 곳이기도 합니다. 가기 오랜 전부터 동료 멕시코 신부님들로부터 깜뻬체는 고온다습한 곳이라서 매우 견디기 힘든 기후 조건일 것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어오던 터라서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제가 도착하던 날 기온이 섭씨 38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마중 나온 현지 교구 신부님은 연신 ‘오늘은 좀 덜 덥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무더운 날씨에 열대성 스콜(소나기)이 한 차례 지나가고 다시 그 위에 태양빛이 작렬하니 무럭무럭 습기가 땅에서 피어오르는데, 그야말로 ‘고온다습’이 무슨 말인지를 제대로 알겠더군요. 이튿날은 주교님께서 깜뻬체 교구 내에서 가장 ‘선교적’이고 가장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 본당 세 곳을 추천해 주셔서 그 곳들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그 중 한 곳은 폭우로 길이 끊겨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지발첸’과 ‘쎈떼나리오’라고 하는 두 본당을 방문했습니다. 직접 가서 현지 사정을 둘러보는 것이 앞으로 일 할 본당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주교님께서 당신의 사륜구동차에 운전사까지 딸려서 보내주셨습니다. 두 본당 모두 화려하고 웅장했던 마야 문명을 건설했던 마야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차로 두세 시간을 달려서 닿은 정글 속의 조그만 마을들이었는데도 전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빼놓고는 흡사 수천 년을 거슬러 온 것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지은 작은 전통 가옥들이며 동네 구석구석을 뛰노는 돼지, 닭, 칠면조, 말 등등...... 참으로 단순하고 가난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 좋았어! 가난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이 사람들과 함께 순수하고 쉬운 삶의 찬미가를 하느님 향해 바치면서 기쁘게 한 번 살아보자! 여기까지는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소명대로 살고자 기꺼이 응답한 한 선교사제에게 적당하고 알맞은 자극을 주고 있었습니다. 소명의식이 너무 충만한 나머지 이런 저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어느 공소의 뒤뜰을 걷고 있던 제 눈앞에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파란 풀밭 위를 지나다가 저를 먼저 발견한 짙은 녹색의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서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또 커다란 이구아나 한 마리가 놀라서 저보다 빠른 걸음으로 저쪽으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며칠 전에 읽었던 어느 책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깜뻬체라는 지명이 뱀을 뜻하는 ‘깐can’과 진드기를 뜻하는 ‘뻬츠pech’라는 마야 언어에서 기원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날 하루 동안 한국에서 살았다면 평생가도 다 못 보았을 뱀, 도마뱀, 이구아나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파충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기는 또 얼마나 지독한지 새까맣게 그을린 제 팔뚝에는 지금도 군데군데 빨갛게 부어올라 있습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Ηλωι ηλωι λεμα σαβαχθανι,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15,34)” 어쩌다가 제 운명은 세상에서 가장 못 견디는 두 가지를 매일, 그것도 도처에서 마주치면서 살아야만 하는 곳으로 흘러들어왔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깜뻬체에 다녀온 후에 잠깐 하느님께 원망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더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찌하여 제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뱀들의 땅’으로 저를 부르셨냐고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깜뻬체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맞은 ‘성 빈센트 드 뽈’ 축일 아침에 신학생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는데 유난히 제 마음 속에서 큰 공명으로 울려 퍼지는 찬미가가 들려왔습니다.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다니3,66-67)” 우리에게 다니엘 찬미가로 더 잘 알려진 성서의 내용입니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세운 금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 세 사람이 서로 묶인 채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에 던져 졌을 때 그들은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드리며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의 천사가 불길을 가마 밖으로 내몰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펄펄 끓는 불가마에서도 세 사람은 하느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드리며 찬미가를 불렀을진대, 하물며 깜뻬체의 더위와 뱀 따위가 우리의 하느님께 향한 찬송과 영광과 찬미를 멈출 수 있겠습니까? 뱀과 무더위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일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생활 중의 고통이나 불편을 곧 불행과 동일시 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고통이고, 불편은 불편일 뿐 그것이 곧 우리들의 불행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얼마든지 ‘고통스러운 행복’이나 ‘행복한 고통’ 혹은 ‘불편을 감수하는 행복’이나 ‘행복을 위한 불편’을 기꺼이 수락하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인생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성인들의 삶이 그러하였고, 정신 차리고 보면 우리들 생활 속의 수많은 작은 영웅들이 이웃을 위한 희생의 삶을 지금도 우리 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내 앞에 펼쳐지는 운명과도 같은 소명 앞에서 등을 돌리고 돌아서서 진眞,선善,미美를 거스르는 안락함과 편리함에 도취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의 진정성을 우리는 자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명심하십시오. 하느님 아버지! 무더위와 뱀들을 깜뻬체 땅에서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무더위와 뱀들 속에서도 당신을 찬송하고 영광을 드리며 찬미를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그리하여 마침내 어느 날, 저로 하여금 웃통을 벗어젖힌 채 제 팔뚝만한 뱀 한 마디를 아무렇지도 않게 목에 걸고 ‘한 마리만 잡솨봐’를 외치며 ‘비얌장수’ 흉내를 낼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단 한 번만이라도......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