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는 주님을 준비하며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면서 준비한 그간의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구세주로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듯이
제대 앞 대림초의 불이 모두 켜져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말없이 불사르며
빛을 발하고 있는 초를 통해서 이 점을 떠올려봅니다.
‘그동안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삶을 살았는가?
혹시 매년 다가오는 성탄이라고 하면서, 마음만 들떴지
실상으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꺼진 불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잘 준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를 잘 한 사람은 기다림을 통해서
좋은 결과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준비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늘 걱정과 불안뿐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잘 준비하는 사람,
그래서 이 세상의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걱정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믿음’이라는 형태를 통해 주시기 때문에
불안에 떨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정말로 걱정 없이 살기를 원한다면,
정말로 자신 있게 이 세상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조 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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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선택
어느 교수가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인생은 어떤 목적을 향하여 평탄하게 직선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좌절과 실패가 있는 '지그재그'라는 것이다.
인생은 바로 이러한 좌절과 실패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삶이 결정된다고 한다. 실패와 좌절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
이것이 신앙의 삶에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림 제4주일인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경위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 탄생 경위가 매우 순조롭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한 시기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임신을 한다.
아마 이 사실은 요셉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성문화가 상당히 개방된 현대에도 약혼녀가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이 임신을 했다면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그 상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아주 특별한 선택을 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것의 이유를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하신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라는 말씀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 상황에서 요셉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계시와 같은
놀라운 사건 없이는 그러한 일을 설명할 수 없기에 천사의 말씀 때문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전부일까 ?
필자는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아 왔기에 성서에 나오는 위대한 사람들이나 성인
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요, 특별히 성모님과 성 요셉 같은 이들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분들로 생각해 왔기에 이분들은 한 점의 의혹과 의심 없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허상이 깨어지는 아픔과 더불어 사제
로서의 몇 년간의 삶이 필요했다.
사제 생활을 거듭해 가면서 느끼는 것은 이들은 결코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똑같은 두려움과 인간적인 약점,
거기에 더하여 생존과 자유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성 요셉도 이러한 면에서는 우리와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던 분은 아니었을 것
이다. 때문에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일러주었던 그 이야기, 물론 당시는 신화가 일상
적으로 통용되던 시대요, 처녀 잉태도 드물지만 가능한 일일 수도 있는 시대였기에
오늘날 과학의 관점으로만 요셉의 행동을 판단할 수 없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어떻든
그러한 이야기를 믿는 것은 분명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성 요셉은 갈등했을 것이다. 법을 따라야 하나, 아니면 파혼을 해야 하나, 아니면
용서해야 하나, 오늘 꿈속의 천사의 말은 그러한 갈등 중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한
또 하나의 갈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요셉은 놀랍게도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가장 가능성이 적은
사실을 선택한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어떤 특수한 상황의 한 번의 선택'이나 '우연한
한 번의 선택'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선택이 요셉의
성격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행위요, 그분의 온 삶에서 우러나온 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 요셉이 천사의 말을 듣기 전 마리아의 일을 처리하고자
했던 모습 때문이다.
성서는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
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하는데, 이 말씀을 통해 개방적이면서도 타인을 배려
하고자 하는 요셉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고, 요셉의 선택은 어쩌면 이러한 마음에서
나오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사의 말씀이 전해졌다 하더라도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이러한 개방성과 타인
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 말씀은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성 요셉의 선택에서 천사의 말씀이 하나의 이유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
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요인은 성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개방성과 남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즉,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어떻게 구약의 예언처럼 인성
으로는 다윗의 후손이 되면서 동시에 처녀의 몸에서 탄생할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데 있어 중요한 요인은 성모의 위대한
신앙의 선택과 더불어 성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하느님을
향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두가 자신만을 찾기에 바쁜 오늘의 현실에서 정말로 시사하는,
바가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성탄의 기쁨과 흥겨움이 넘쳐흐르는 이때, '남을 배려하는 성 요셉의 마음'이 어쩌면
성탄을 현실화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꾸며야 할 가장 '아름다운 구유'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홍 금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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