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염원하며
신묘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이 새 해는 어떤 해이기를 바라십니까?
이 새 해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오늘이 세계 평화의 날이니 올 해는 평화로운 해가 되기를 바라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니 올해는 한 번 천주의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작년 한 해 평화가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보았고, 한 번 깨진 평화를 되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달았으며, 하여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올 해는 정말 평화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平和란 어떤 것입니까? “平”과 “和”가 합친 말입니다.
“平”이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한 부분은 특별한 일이 없는 平安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좋은 일은 평안을 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안 좋은 일이 평안을 깨기에 평안은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없는 것입니다. 올해는 아무 사고가 없는 것입니다. 올해도 중병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올해도 실직되는 불상사가 없는 것입니다. 올해는 천암함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사건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아무런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다못해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는 일이라도 일어나겠지요. 그까짓 것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모기 한 마리 때문에 평안이 깨질 수도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참 평안은 아무 일이 없는 평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올해도 많은 일이 터질 것을 각오하는 평안이고, 많은 일이 벌어져도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목장의 그림 그리기 대회 얘기 말입니다. 주제가 평화였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목장의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고 최종 결선에 올라온 그림 중 하나도 목장의 평화로운 풍경을 담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아이의 그림은 너무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위험천만한 까까절벽의 옴폭 패인 둥지에 어미 품에 안긴 새끼 새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새끼 새는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치고 위험한 상황이어도 어미 새만 있으면 평안합니다. 새끼 새의 불안은 어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우리 평화도 주님 안에서 누리는 평화이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和”의 측면에서 평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和”란 벼禾와 입口가 합쳐진 말이니 벼와 입의 관계처럼 관계가 좋을 때 오는 평화, 곧 화목한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관계, 화목한 평화는 어떻게 가능합니까? 다투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선은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투지 않기 위해서 시비를 걸지 않고 굴복시키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투지 않는 것도 평화의 길이지만 그런 소극적인 평화로는 참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다투지 않는 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고 다투지 않기 위해 무관계로 일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평화는 사랑으로 얻게 되는 적극적인 평화이고 그것도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얻을 수 있는 평화입니다. 오늘 축일의 의미와 연결시킨다면 천주의 모친 마리아처럼 사랑이신 하느님을 품은 자만 이룰 수 있는 평화입니다. 힘의 균형을 이루는 아버지의 평화가 아니라 천주의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루는 평화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듯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낳아주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사랑을 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낳아주는 것입니다. 잉태한 자만이 출산을 할 수 있듯이 마리아처럼 사랑의 하느님을 잉태한 사람만이 다른 이에게 하느님 사랑을 낳아줌으로써 평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또한 평화는 염원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우리는 평화를 염원할 뿐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행동을 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