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 1.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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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1-01 | 조회수37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1.1 토요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민수6,22-27 갈라4,4-7 루카2,16-21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참 좋은 날입니다. 새해 첫날은 천주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평화의 어머니께서 2011년 새해 첫날의 휘장을 활짝 여셨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수도원 배 밭이 꼭 ‘하얀 평화’처럼 우리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추운 겨울 날씨지만 맑은 하늘, 따뜻한 햇볕 역시 마음을 평화롭게 합니다. 마침 어제 써놓은 “이 평화 너는 모를 거다.”라는 글을 나눕니다.
“날씨 추워도 평화롭다.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하기에 세상 어렵고 힘들어도 평화롭다. 영혼은 맑고 마음은 따뜻하기에 이 평화 너는 모를 거다.”
이런 평화는 순전히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밖의 환경에서 오는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평화입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혼을 맑게,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저는 오늘 주로 평화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우리 인류의 보편적 갈망이 평화요, 하느님의 소원도 우리 세상의 평화일 것입니다. 사실 가장 못난 평화라도 가장 잘 난 전쟁보다 낫습니다. 작년 한 해는 사람이나 자연이 나 모두 평화롭지 못한 해였습니다. 멀리 밖으로 갈 것 없이 지금 여기 나 자신부터,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부터 평화를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평화롭습니까?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는 평화롭습니까?
하느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평화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평화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평화의 공동체가 유토피아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하느님의 평화입니다. 세상의 거짓 평화에 속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 평화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명실 공히 그리스도 예수님을 내 마음 중심 안에, 내 공동체 중심 안에 모시고, 그분만을 향해 살아갈 때 정중동(靜中動)의 평화입니다.
바로 여기 성전 제대 오른 쪽 '성탄의 빛' 가득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 이 평화를 상징합니다.
‘평화의 빛’으로 충만한 성가정입니다.
모두가 온통 집안 중심에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 예수님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의 얼굴이 평화의 빛으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가축의 짐승들까지도 평화가 가득한 모습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발산하는 평화의 빛입니다. 오늘 하느님은 그리스도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복을 주십니다. 이 복된 새해 첫날 민수기를 통한 주님의 축복 말씀을 여러분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시기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여러분에게 평화를 베푸시기를 빕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향해 살 때 선사되는 주님의 평화의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참 평화, 참 행복, 참 자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자, 때가 차자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세상 운명에 매여 사는 우리를 구원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선사받는 이 아드님의 영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평화롭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아드님의 영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외칩니다. 바로 이 아드님의 영이 ‘평화의 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사람이라 하여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의 종으로, 죄의 종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자유인도 있습니다. 세상의 종, 죄의 종으로 살 때 거짓 평화일 뿐 참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의 자녀로 살 때 비로소 참 평화요 이 또한 회개의 열매입니다. 아침 3시경 성무일도 중 다음 시편 대목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평화를 미워하는 그들과 함께 내 영혼은 너무 오래 살아왔노라. 평화가 내 원이건만 그 말만 하여도, 그들은 싸우고자 달려들도다.”
바로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말만 평화이지 끊임없이 싸움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들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평화로 무장하지 않고는 참 힘든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 안에서 평화의 길을 찾는 성모마리아가 우리의 모범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목자들의 전한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긴, 매사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한 지혜로운 성모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중요한 판단의 잣대는 공동체의 평화입니다. 공동체의 분열로 평화를 깨는 것보다 큰 죄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 무르익어 때가 되기까지 모든 것 담아두고 곰곰이 되새기며 인내하며 기다릴 때 평화입니다. 중심이 얕고 가벼우면 주변이 시끄럽습니다. 중심이신 성모님이 깊고 고요했기에 어려움 중에도 늘 평화로웠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할 때 평화입니다.
세상의 평화에 하느님 찬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예스런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우리 수도승들이 세상에 기여하는 평화도 바로 이런 찬미의 평화입니다. 여기 수도공동체가 우여곡절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도 찬미의 은총 덕분입니다. 사람들 간의 협소한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세상 모든 피조물이 함께 누리는 평화입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얼마나 많이 자연이 파괴되고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는지요. 엄동설한 추위에도 구제역이 창궐하여 학살로 죽어가는 소와 돼지들의 비명소리 처절합니다. 자연의 평화, 뭇 생명들의 평화 없이는 우리의 평화도 없습니다.
오늘 가난한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갑니다. 가난하나 부유한 사람들은 목자들처럼 '찬미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아침 시편 찬미가를 바치며 저는 새삼 온 우주의 평화는 하느님 찬미에서 가능함을 깨달았습니다.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별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밤과 낮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땅아 주님을 찬미하라.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바다와 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고기와 물에 사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새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짐승과 가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세상 모든 피조물이 '찬미의 형제들'이자 '찬미의 자매들'인데 함부로 마구 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강들아 산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면서 강과 산을 마구 허물지는 않을 것이며 짐승과 가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면서 무자비하게 동물을 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평화는 인간사회의 평화를 넘어 온 우주에 까지 확산되어야 비로소 평화의 완성입니다. 이사야의 평화의 비전도 이러합니다. 새해 첫 날 온 누리 쏟아지는 햇살 같은 주님의 평화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를 축복하십니다. '하느님의 평화'인 주님과 하나되어 '평화의 일꾼'으로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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