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앵무새 이야기 들어 보셨나요?
아주 신심 깊은 할머니가 앵무새를 벗삼아 길렀는데 이 앵무새에게 주모경을 가르쳤어요.
본당에 소문이 나서 신부님이 이 앵무새를 보러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신부님께 자랑을 하고 싶으셔서
"신부님, 이 앵무새는 오른발을 당기면 주님의 기도를
왼 발을 당기면 성모송을 외운답니다."
신부님께서 "그럼, 두 발을 잡아당기면 어떻게 될까요?"
앵무새가 듣고 있다가 신부님한테
"이 등신아, 두발을 다 잡아 당기면 자빠지지!"^^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나 아니면 내 가족에게 실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이 빨리 크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있고~~
자기 남편을 보고 '저 사람 주님 앞에 나간 지 5년이 지나 10년이 되어도
주일 지키는 것조차 힘들어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한 영혼이 하느님 앞에 사로잡히기까지
앵무새 두 다리를 잡아당기듯 하면~~
그나마 기어가던 신앙도 거꾸러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두 다리를 잡아당기면 안 되지요....
그래서 다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할 때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수학공식 외우듯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하느님에 대해서 알 수는 있어도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데는
시간과 희생과 많은 세월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미사를 통해서도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씨앗 하나를 심어 주실 것입니다.
그 씨앗을 통해서 뭔가 하느님에 대해서
하느님의 한 부분, 부분씩.....
하느님 옆구리, 뒤통수에 대해서....
이렇게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사제의 강론을 통해서, 피정 때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느끼시게 될 겁니다.
오늘 복음에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
다시 말하면 신앙이 무엇이요, 믿음이 무엇인지~~
나병환자의 예수님께 접근하는 방법을 통해서 알려 주고 계십니다.
나병을 문둥병이라고 하며 의학적으로는 한센씨병이라고 합니다.
나병의 증상은 처음에 반점이 생기고, 그곳이 썩어나가기 시작하면서 고름이 나기 시작하고 눈썹이 빠지며 심해지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끝, 빨끝이 썩어나가면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 , 발가락이 한 개씩 썩어 떨어져 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온 몸에 퍼져 나가면서 2-30년 안에 죽는 진행성 병이지요.
지금은 약이 발달해서 그것을 멈출 수도 있지만
약이 없던 시절 나병은 천형이었으며, 나병에 걸린 사람은 숨은 쉬고 있으나 산시체라고 했습니다.
가족과 동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격리된 곳에서 죽음만 기다리고 살았던
나병은 육신의 고통보다 괴로운 것이 마음의 고통이었습니다.
내 아내가 나를 버리고 내 자식이 나를 버렸다는 그 영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심했습니다.
그 옛날 나병환자가 동네 한 가운데를 걸어 들어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산길을 가다가 나병환자가 저 앞에 성한 사람이 오면 나병환자 쪽에서
"나 나병환자요, 나 불결한 놈이요, 나 피해서 가시오!"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고 동네 한 가운데에 들어오면 돌로 때려죽여도 나병환자를 죽인 것은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나병환자와는 적어도 2m이상 불가피하게 사이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당시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등장하는 나병환자는 마을 한 가운데로 겁도 없이 들어 온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만나러?
이것은 무엇을 말하냐?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나려면~~
목숨을 걸고 만나야 합니다.
취미생활 정도로 일 주일에 한 번 어쩌다가 나와서 졸다가 돌아 가고
묵주기도를 하더라도 분심 중에 하는 둥 마는 둥~~
그런 정신상태로는 죽었다가 깨어도 믿음이 무엇인지 체험할 수 없을 것이요.
그런 정신 그런 믿음으로 하느님이 무엇인지 체험하지 못할 것이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뭐냐?
목숨걸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동네 한 복판에 들어 와 돌에 맞아 온몸이 온통 찢어지더라도
예수님 얼굴 한 번만 뵐 수 있다면.......
이 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성당에 나온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죽을 각오를 하고 기도생활을 하신 적이 몇 번이나 됩니까?
오늘 이 문둥병자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자기를 깨끗이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마귀라고 하는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확신을 못 갖게 합니다.
나병환자는 바리사이와 동네사람들이 돌을 던져도 예수님만큼은
나를 끌어안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느 때와 똑같은 주일미사이지만
사제의 입을 통해 내 영혼의 문을 열어 주실 것이요!
성체를 통해서 나의 영과 육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이 자리에 앉아 계셔야겠습니다.
예수님께 나올 때 내가 너무 더러워서
나같이 더러운 인간은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문둥병자는 예수님의 능력을 완전히 믿었습니다.
덜 믿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건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믿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존재하는 한 신체적으로 불치병이 있다 해도
영혼에 용서받지 못할 것이 있다고
우리들은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이 나병환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나병환자는 강제로, 협박하듯이 '내 병 고쳐주시오!"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원하신다면, 하실 수만 있다면...
저를 고쳐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게 바로 기도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 기도를 하면서 자기가 계획을 다 세워 놓습니다.
하느님에게 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급할 때는 살려 달라고 하고
그리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뜻은 눈꼽 만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기만을 기도합니다.
"예수님, 저 오늘부터 9일 기도 들어갑니다. 이 9일기도가 끝나는 날에
제 집이 비싼 값에 팔려야 되는데~~
제 기도를 만일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제가 냉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바이올시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께 공갈, 협박을 합니다.
여러분들 웃으셨습니까?
여러분들 기도 거의가 그렇습니다.
하느님 뜻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달라는 기도, 그 달라는 기도가 나쁘다는 것 아닙니다.
청하고 두드려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겸손이 그 밑바탕에 없었던 겁니다.
하느님께서 원하는 때가 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있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모양이 있습니다.
기도는 게쎄마니에서 예수님이 성부께 기도 바치셨듯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해 주십시오!'
하는 이 기도를 어느 기도든지 그 끝에 바치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뜻대로 마시고 내 배짱대로 하이소!"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입시철이 되어 어느 자매님이 아들을 좋은 대학에 붙게 해 달라면서
미사예물을 가져 왔는데 두툼했습니다.
그때 돈 50만원은 되는 것 같았는데, 미사 한 때 야물딱지게 드려 달래!
내 나름대로 손톱, 발톱 깎고 목욕하고 미사도 야물딱지게 드렸는데~~
나중에 떨어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미사때 와서 손을 내밀길래
악수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야~~
미사예물 도로 돌려달래~~
그때만 해도 순진해서~~
지금도 별명이 김순진이지만^^
'지금 같으면 그 자매 무릎 꿇려 놓고
"너 어디서 하는 짓거리야! 미사 예물을 줬다가 뺏어?"
이렇게 혼을 냈겠지만~~
얼른 돌려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미사예물을 확 낚아채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갑디다.
그 자매는 사제를 무당으로 아는 사람이요.
미사를 푸닥거리로 아는 여자요.
미사예물을 돼지 입속에 껴 넣는 만원 짜리로 아는 여자입니다.
성당 다니다가도 어느 유명한 점장이가 점을 잘 친다하면 쪼르르 쫓아갈 여자입니다.
여러분 웃으시지만~~
색깔이 다를 뿐, 하느님께 협박 공갈하는 기도하는 것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님이 들어 주시는 길은~~
자기의 부족한 것을 알고 있는 겸손한 상태의 영혼에게~~
기도의 응답을 해 주십니다.
우리는 미사할 때 마다~~
봉헌할 때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그 성가 몇 번입니까?
쥐뿔, 아낌없이 바친 것 없이~~
천 원짜리 헌금 한 장 내면서도 달달 떨면서
아낌없이 바쳐!!!
앞에서 보면 웃겨요!
헌금할려고 보니 만원짜리가 기어 나오나 봐!
천원까리 찾아 집어넣느라고
아니 우리 주님은 퍼런 것 받으시면 어디가 덧나!
겸손한 마음의 기도만이 올바르게 봉헌될 수 있습니다.
세 번 째 나병환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엎드려서 애원한다'
이 뜻은 사람에게 경배한다! 는 뜻이 아니라
'신에게 경배한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앞에 예수님 앞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있어야 합니다.
요즘 새로 짓는 성당마다 장궤틀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드리는 첫 번째 예배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미사시간 내내 무릎 한 번 꿇지 않는 성당이 많이 있습니다.
무릎이 꿇어지면 마음이 꿇어지고, 마음이 꿇어지면 영혼이 꿇어집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존경하는 행동, 존경하는 말로 드러납니다.
누구를 존경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나를 존경하고 있구나!"
"내가 우습게 보이고 있구나!" 드러납니다.
성당에 나올 때도 복장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시장, 도지사 만나러 가는데 넥타이 안 매십니까?
대충 하고 가십니까?
대통령 만나러 갈 때 미장원 가서 머리 손질하고
입던 옷 중에 제일 깨끗하고 좋은 옷 골라 입고 나올 겁니다.
예수님 만나러 올 때 대통령 만나러 갈 때만 못하다는 뜻입니까?
아닐 겁니다.
비싼 옷은 아니라도 내가 갖고 있는 옷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좋은 옷 입고 나오셔야 되요.
구두 손질도 한 번 하고, 머리도 한 번 더 빗고~~
예수님 만나러 나오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존경이 아니라 흠숭한다고 합니다.
하느님에게 흠숭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집에 입는 옷이나, 시장에 갈 때 입는 옷이나
성당 갈 때 입는 옷이나 똑같은 옷을 입는다면~~
적어도 성당에 나올 때 깨끗하고 정성껏 옷을 입는 과정이
바로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구두를 닦는 그 과정이 바로 지금 예수님께 나오는
그 설레이는 그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저는 오늘 미사에 나오기 위해서 신나게 샤워하고 깨끗하게 몸 닦고
성무 일도 바치고 오늘 미사 나오는 신자들 혹시나 나오다가 누구랑 다투지 않게 해 주시라고~~
미사 내내 한마음으로 이 자리에 머물다가 가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미사에 준비하고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이 미사에 나와야 됩다.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애원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해치우는 식의 미사로 어디 은혜가 내려가고 치유가 일어겠습니까?
확신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겸손하게 청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음성은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은 측은한 마음을 가지셨다! 표현합니다.
나병환자 직접 다가가셔서 아무도 만지기 싫어하는 그 상처에 손을 대십니다.
손을 펴서 그에게 대셨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신자든 아니든 측은한 생각을 다 갖습니다.
그러나 피부를 접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그 사람 집에 가서 같이 그 사람 도와 주고 끌어안기 쉽지 않습니다.
옆집에 누가 굶어 죽어 가는 사람 있을 때 신자들이 기도합니다.
"성모님, 옆집에 정말 불쌍한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한다면 성모님께서
"이 멍청한 놈, 내 너를 통해 그 사람을 도와 주기를 원하고 있어~~
너 해외여행 가려고 꼬불쳐 놓은 돈 있지, 그 돈으로 쌀 사고 반찬 사서 먹여!"
옆집에 도와 줄 사람은 기도하고 있는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묵주를 들고 기도할 수는 있어도.....
물질을 봉헌하고 시간을 봉헌하는데 얼마나 인색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의 상처에 손을 대시고 고쳐주시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상처에 손을 댄다는 것은 옮을 가능성이 많지요!
나병은 접촉을 통해 생기는 병이며, 유전병이 아닙니다.
나병환자의 상처에 손을 대었다면 무서운 감염이 될 수 있는~~
오늘 의학지식이라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모한 것 같지만~~
진짜 명의는 아무리 위험한 병이라도, 목숨을 걸고 그 오염된 마을로 들어갑니다.
아무리 콜레라와 장티프스가 걸린 환자라 하더라도 정말 명의는 생명을 걸고
그 콜레라 환자를 끌어안고 치료를 합니다
의사들에게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은 멀리 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끌어안고 고쳐줘야 할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참된 그리스도는 어떤 관습도 파괴하고 .
어떤 위험도 감수하면서 이웃을 돕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손을 내미셨습니다.
저는 여러 군데에서 손을 대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었다고 합니다.
나병환자에게 손 하나 대지 않고 백 미터 밖에서 말로만 '일어나라.' 해도
일으키실 수 있는 능력자이셨지만~~
일부러 가까이 가서 상처에 손을 대십니다.
필요하시면 잡고 가세요.
'신부 손 잡아야 일주일이 편안하다면~~'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 치유시키신 후
사제에게 보여서 정한 예물을 드리고 문둥병이 깨끗해 졌다고 증거를 받게 했습니다.
나병환자를 치유시키고 나서 예수님께서 두 가지를 공식적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동네 한 복판을 지나서 사제에게 가서 공식적인 축복을 받고 예물을 봉헌하라!
왜 동네 한 가운데 가서 사제에게 축복을 받으라고 했을까?
이 환자는 겉의 피부병은 나았으나 속의 두려움은 그대로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마을을 지나가면서 그 공포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치유 받은 것에 대하여 어떤 방법으로든 예물을 봉헌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개신교신자들은 기쁜 일이 있을 때 감사예물을 봉헌합니다.
작은 기쁨이 오더라도 꼭 감사예물을 들고 찾아옵니다.
저는 사제생활을 23년 동안 했지만, 신자들이 어려운 고비 넘어가고 난 다음에
"신부님, 정말 하느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하면서
어려울 때는 그렇게 애걸복걸하고 매달리던 사람들이 해결이 되고 난 뒤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감사예물 드리는 사람이
내 기억으로 열 손가락 안에 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사제에게 가서 정한 예물을 드리고
문둥병이 깨끗해졌다고 증거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화장실 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듯이
고통 중에 있을 때와 그 고통을 벗어났을 때 우리들의 마음은 다릅니다.
오늘 이 나병환자의 치유이야기는 예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1.확신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2.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실 수만 있다면 저를 고쳐 주십시오!'
당신 고쳐 줘야만 돼! 당신 하느님 그 것 아니야!!!
이런 기도가 아닙니다.
3.존경하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해야 합니다.
미사 나올 때 집에서 단정한 마음과 단정한 몸으로
기도할 때 무릎 꿇고 기도하십시오.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바로 'touch' 요법입니다.
직접 손을 대는 겁니다.
생각으로만 백날 '좋은 일 해야 되겠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 자선은 신자의 3대 의무 가운데 하나지요
본당에서 본당신자들을 대표해서 나가서 자선을 하는 사람들이 빈첸시오회원들입니다.
제가 확인 해 보니 밴첸시오회원 몇 명 되지 않아요!
지금 나가시면 빈첸시오회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활동을 못하더라도 명예회원이 되어 반찬값 아끼고 담배값 아껴서 천 원,
이천원이라도 봉헌하시면, 그 돈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줄 겁니다.
밖에서 접수받고 있으니 가입하세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제의 입술과 성체를 통해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오늘 문둥병환자가 예수님께 치유 받는 모습으로
확신과 겸손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머물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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