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저는 노인 시설에 가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몇몇 형제들은 치매노인과
미사 드리는 것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벌써 5년째 가고 있습니다.
제가 그 미사를 수락하고 지금도 계속 나가는 것은
제 어머니께 잘 하지 못하지만
제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사랑해드려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지만,
저는 이 치매 어르신들과 미사 드리는 것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갔다 오면
오후 한 나절이 다 깨져도 계속 나갑니다.
치매 어르신들은 어린이와 똑 같습니다.
그래서 강론을 할 때 질문을 드리면
어린이 수준의 답이 나와
미사 때마다 웃음바다가 되곤 합니다.
그저께도 미사를 드리며 설날 인사를 미리 드렸는데,
복 많이 받으시기를 원하시는지 여쭙고
누구의 복을 받고 싶으신지 여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드리는 복 받고 싶으시냐고 여쭈니
모두 제 복을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수녀님이 드리는 복은 받고 싶으시냐고 여쭈니
그 복은 싫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바탕 웃었는데,
왜 수녀님 복은 싫고 제 복은 좋으냐고 여쭈니
제가 드리는 복은 제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복이기 때문이라고
정답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 해 첫날,
새 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
인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겠습니다.
그 첫 번째 의미는 우리가 모두 원하는 행복은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서 행복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끔 새 해 인사로
“새 해 복 지으소서!”라는 인사를 받는데,
이것 맞는 말이고 참 멋진 말이면서도
잘못하면 마치 하느님 없이
내가 복을 지을 수 있고, 그래서
하느님 없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이해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없이
나 행복할 수 없음을 확실히 알아야 하고,
그러니 하느님으로부터 복 받아서,
다른 사람이 아닌
꼭 하느님으로부터 복 받아서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복 받아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갈망해야 하고,
아예 복 주시는 하느님을 갈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풀어서 얘기하면
주님께서 복 주시고,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주님께서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주님께서 평화 주시기를 비는 오늘 민수기의 인사보다
부자 되시라는 인사가 더 좋아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며칠 전에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매주 로또 복권을 산답니다.
그 이유는 복권을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한 주일이 뿌듯하고 든든하여 행복하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제가 느끼기에
그것은 한 번에 떼돈을 벌겠다는
천박하고 볼썽사나운 욕심이 아니라
어쩌면 매우 소박하고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그분의 희망과 갈망의 몸짓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희망하고 갈망하는 것이 로또 복권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면 더 완전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주인께 깨어있는 종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렇게 깨어있는 종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며
한 해의 운세가 어찌 될지 점쟁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등불을 켜놓고,
허리에 띠를 두르고 주인님을 깨어 기다리는 종,
이 종이 행복하다시는
주님의 말씀을 더 귀담아 들어야겠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