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월 4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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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2-04 | 조회수795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2월 4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 마르코 6,14-29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보다 당당하게>
진실한 사람, 정직한 사람들과 달리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춥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부풀립니다.
이런 분들 별 영양가도 없으면서 유식한 척, 별 것도 없으면서 ‘있어 보이는 척’ 하려니 삶이 얼마나 고되고 피곤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가 그랬습니다. 그는 실권이 별로 없는 꼭두각시 권력을 근근이 유지하려다보니 늘 잔머리를 굴려야했습니다. 실눈을 뜨고 윗선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약자 앞에서는 대단해집니다. 얼마나 위세를 부리는지 모릅니다. 빽 없고 가난한 사람 업신여기는데 선수입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비극적인 죽음을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 더 비극적인 죽음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바로 헤로데의 죽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수행한 세례자 요한은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충실히 주님 오실 길을 잘 닦았습니다. 그가 닦아놓은 그 길 위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간 잘 양성시킨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께로 보내드렸습니다.
달릴 길을 다 달린 세례자 요한, 부여받은 역할을 완수한 세례자 요한,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그는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음도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여함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영원한 생명’을 향한 일말의 가능성마저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달릴 길을 다 달린 세례자 요한, 비극적인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았던 세례자 요한은 이제 별 중에도 가장 찬란한 별이 되었지만, 그를 처형한 헤로데는 괜한 허세로 인해 가장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무서운 것이 허세입니다. 내가 실제로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도 괜히 있는 척 하는 행동, 이미지 관리를 위해 풍선처럼 자신을 부풀리는 행동으로 인해 헤로데 처럼 결국 인생 종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세례자 요한처럼 좀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변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좀 더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나의 모습을 감추려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우리 안에 오래도록 자리 잡으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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