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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좀 쉬도록 하여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05 조회수470 추천수5 반대(0) 신고

<좀 쉬도록 하여라>(6, 30-34)

-유 광수신부-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도록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황량한 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큰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었다.(마르 6, 7 참조) 지금 사도들이 예수께 보고하는 내용은 파견되어 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관계가 원만한 상태임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예수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에서 무엇을 묵상할 수 있는가?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돌아가듯이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은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기도를 바칠 때 우리에게 주신 하루를 어떻게 사용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될 것인가를 계획하고, 낮에는 아침에 계획한 것을 열심히 실천하고(생활하고), 저녁에는 하룻동안 아침에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고 계획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자기가 지낸 하루의 시간들을 예수님께 보고드리는 저녁 기도로 하루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비록 각자 삶의 자리가 다르더라도 우리의 모든 생활이 이렇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예수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일치하게 되고 서로를 더욱 사랑하면서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이다. 가족으로서 한 가정에 살면서 그리고 같은 공동체에 살면서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아니라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정이나 공동체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가정이며 공동체인가 아니면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생활이 이루고 지고 있는지를 먼저 성찰해 보자.

 예수님이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도록 하여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묵상할 수 있겠다. 하나는 제자들이 활동을 하고 돌아와서 육신적으로 지쳐있는 데다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 제자들이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라는 것이다. 즉 지친 제자들을 좀 쉬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제자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휴식은 필요하다. 휴식은 여유 있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즉 음악에 강약이 있고 높낮이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서 일과 휴식은 삶의 한 부분이며 삶의 리듬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쉬지 않고 열심히 뛰는 것만을 성공의 비결로 생각하고 지금같이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더욱 바쁘게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에게 쉰다는 것은 하던 일을 중단하는 것이고, 하던 일을 중단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쉰다는 것은 경쟁에서 지는 것이고 경쟁에서 지는 것은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항상 그 다음 일을 생각한다. 그래서 늘 긴장한다. 이렇게 매사에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고 이런 생각들이 우리에게서 쉼을 앗아갔다.

 

 우리가 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바쁘다는 구실 외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도 한몫을 한다. 즉 자기가 없으면 아무 일도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사사건건 모든 일에 끼어 들어 간섭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 입버릇처럼 늘상 "쉬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 말 이면에는 쉬지 않고 일하는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쉬고 싶다."는 말은 "지쳤다."는 말이지만 막상 쉴 수 있는 기회를 주면 혹시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고 능력을 과소 평가받는 것이 아닌가 섭섭해한다. 쉬는 것을 말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 바쁘게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갑자기 병이 나서 병원 신세를 지거나 아니면 과로로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정말로 영원히 쉬게 된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경험하였고 또 보았다. 오늘도 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마치 "바쁘다."라는 체면에 걸린 사람처럼 바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하고 안절 부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또 바빠야 하고 바쁘기 위해서 왔다갔다해야 한다.

 

쉰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세기 저자는 하느님의 쉼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마무리하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게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창세 2,2-3) 하느님께서 손을 떼고 쉬신다는 것은 창조를 계속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하신 것들에 복을 주시는 것이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에 결실을 보며, 겨울에 앙상해졌다가 다시 새봄이 오면 물이 오르고 움트는 것, 이 같은 일들이 하느님께서 창조를 멈추시고 쉬시는 가운데 진행된다. 만일 하느님께서 사사건건 간섭하시며 늦겨울에 피어나는 개나리를 일찍 핀다고 벌주시고, 초봄에 눈이 내린다고 탓하신다면 창조의 아름다움이나 신비스런 경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느님이 쉬시는 시간에 온 만물이 우리에게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하느님께서 쉬시는 동안, 아니 하느님께서 쉬시기에 피조물은 더욱 완성으로 나아가며, 우리는 대자연의 신비와 함께 하느님의 경이로움을 더욱더 찬양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를 멈추시고 쉬시는 동안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쉼을 잃고 있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쉼과 안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고요가 없는 곳에 쉼이 있을 수 없고, 쉼이 없는 곳에는 "창조"가 있을 수 없다. 창조가 쉼을 위해 있고 쉼이 더 나은 창조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쉼이 방해받는 데서는 재창조를 의미하는 레크리에이션도 그 기능을 잃고 만다. 이런 데서 사람들의 성격도 성급하게 변해가고 있다. 모든 자연들이 봄에 파릇파릇 새 싹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긴 겨울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봄에 개구리가 나오고 온 곤충들이 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동면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여유'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얼굴을 다듬는 방법은 오직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여유는 '쉼'에서 나온다. 찡그린 얼굴에서는 결코 창조적인 일이 나올 수 없다. 여유 있는 얼굴, 쉬는 얼굴만이 창조적인 일, 구원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내가 얼마나 잘 쉰 얼굴인지 점검하기 위하여 가끔씩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예쁜지, 화장이 잘 되었는지, 주름살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그런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잘 쉬는 얼굴인지, 얼마나 여유롭고 평안한 얼굴인지, 혹시나 지치고 찌그러진 얼굴은 아닌지 스스로 관찰하고 반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선택한 예수님의 모델과 한참 후에 찾은 유다의 모델이 같은 인물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쉴 줄 아는 얼굴과 쉴 줄 모르는 얼굴의 차이이리라.

 

 20세기의 위대한 별이었던 슈바이처는 "현대인이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밤하늘을 쳐다보며 우주를 생각한다면 현대 문명은 이렇게 병들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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