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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07 조회수955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2월 7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Whatever villages or towns or countryside he entered,
they laid the sick in the marketplaces
and begged him that they might touch
only the tassel on his cloak;
and as many as touched it were healed.
(Mk.6.56) 
 
제1독서 창세기 1,1-19
복음 마르코 6,53-56
 
평생을 성당에 다니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하느님이 어디 있나? 하느님이 눈에 보여?”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 말에 자신의 믿음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의심을 하다 보니 급기야 하느님의 존재에까지도 의심을 품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 할아버지는 하느님에게 정말로 계시는지 그 증거를 요구하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이제부터는 예전과 다르게 기도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의 존재에 대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느님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저에게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즉, 제가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기도할 테니 1년 내에 제가 복권에 당첨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 할아버지는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6시간을 열심히 기도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는 복권에 당첨되지 않아서 이렇게 불평과 원망의 말을 했답니다.

“하느님, 저는 평생 동안 하느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더욱이 이번 1년 동안은 철저히 기도만 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게 아무런 응답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느님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할아버지의 원망과 불평이 맞는 것일까요? 사실 이 할아버지는 복권을 단 한 차례도 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준만을 내세워 하느님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우리 역시 취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즉, 말도 안 돼는 이유를 들어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는다고, 내게 고통과 시련이 주어졌다는 이유로, 또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너무 적은 것을 얻었다고 우리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려 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렇게 조건만을 앞세우는 믿음은 참 믿음일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믿음,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맡기는 믿음이야 말로 주님께서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데려 오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 옷자락 술에 병자들의 손이라도 닿게 되면 그만이라고 청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청을 갖고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말도 안 돼는 이유를 가지고 나아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필요한 것까지도 해결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굳은 믿음. 그 믿음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이 아닐까요?

 

아름다운 것을 만들거나 진실한 것을 발견할 때는 아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윌리엄 잉).





불만이라는 선물(‘행복한 동행’ 중에서)

옛날, 한 나라의 국왕이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랑스러운 왕자를 얻었다. 왕자가 세례를 받던 날에는 온 국민이 몰려와 축하를 전했고 옥황상제도 열두 선녀를 축하 사절로 배내 진귀한 선물을 선사했다. 선녀들은 국왕에게 지혜, 고귀함, 힘, 건강, 재력, 영민함, 지식 등의 선물을 차례로 바쳤다. 마지막 선녀의 차례가 되었을 때 딱히 내놓을 것이 없었던 그녀는 ‘불만’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러자 국왕은 “내 아들은 이미 선내들이 선사한 선물을 열한 개나 받았으니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불만도 품지 않을 것이오.”라며 기분 나쁜 마음을 숨기고 그 선물을 거절했다.

몇 년이 지난 뒤 무럭무럭 자라난 왕자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영민하고 건강했으며 성정이 온화하고 박학다식했다. 게다가 마음속에는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 왕자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며 안주했고 나라를 더 부강하게 만들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 국왕을 모시는 대신들 역시 현실에 안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의 나라는 오래지 않아 이웃 나라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불만은 때로 매우 좋은 선물이 되어 준다. 루쉰은 ‘불만은 진보의 수레’라고 말했다. 누구나 좋은 성과와 영예를 얻으면 더 이상 경쟁을 하거나 발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야말로 성장과 초월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이 부단한 성장과 초월의 과정에서 사람의 잠재력은 무한히 솟아난다.
 
 
 
 
Un Piano Sur La 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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