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월 8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2-08 | 조회수969 | 추천수17 | 반대(0) 신고 |
2월 8일 연중 제5주간 화요일 - 마르코 7,1-13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열린 가슴으로 광야로 나가는 일>
한 무리 관광객들이 봄 소풍을 떠났습니다. 버스는 호수와 산, 전원과 강이 어우러진 매우 아름다운 지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차창 밖으로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버스의 상석에, 좀 더 편안한 자리에 앉힐 것인가? 누구를 더 중요한 사람으로 여길 것인가?
바깥에는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엉뚱한 주제를 두고 말다툼하느라 여행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할 것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의 ‘행복한 삶에로의 초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부차적인 것, 지극히 지엽적인 것에 몰두하느라 정작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쉽게 놓치고 마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 우리 신앙생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우선적인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분하게도 죄인인 우리를 찾아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스런 하느님 얼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시고 인간세상까지 내려오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일이 아닐까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지속적으로 만나 뵙기 위해 열린 가슴으로 광야로 나가는 일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핵심이나 본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바리사이들, 교만할 대로 교만해져서 진지한 자기반성이나 쇄신작업과는 담을 쌓은 바리사이들, 그래서 결국 빈껍데기뿐인 신앙인으로 전락한 바리사이들을 엄중하게 질책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정결례와 관련된 세칙의 부당함과 비인간성을 경고하십니다. 정결례는 한마디로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규칙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정결례에 관한 규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규칙이 또 규칙을 낳고, 또 규칙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규정들이 늘어났는지 탈무드 제1부의 6권 전체가 '씻는 규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장에 갔다가 귀가했을 때, 아주 엄한 정결례 규정이 적용되곤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죄인들이나 이방인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래서 몸이 많이 더러워지기에 50리터 이상 들어갈 수 있는 물통에 팔꿈치까지를 넣어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흐르는 물에 팔을 씻어야 했습니다. 랍비들은 이런 규정을 실천하기 위해 4마일(약 6.4Km)을 걸을지라도 고생으로 여기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외출 다녀왔다가 손 씻는 일, 위생적인 견지에서 볼 때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권장사항일 뿐이지, 의무조항이 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서 큰 준비 없이 손을 씻을 수 있다면 씻으면 되지요. 그러나 상황이 안 된다고 단순히 손을 씻기 위해서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가서 손을 씻는다는 것을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리사이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 별것도 아닌 손 씻는 예식은 목숨 걸고 지켰지만, 정작 중요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가르침은 소홀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나 몰라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통 유다 신앙인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죄 없다고, 깨끗하다며 어깨에 힘을 주며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완벽하다고, 흠 없다고, 죄 없다고,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절대로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