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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10 조회수71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한 주일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리스도교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요 파라독스한 종교다!

하는 말을 외부에서들도 하고 있고 또 우리들도 신앙으로 믿습니다.


역설의 종교가  무슨 뜻이겠습니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건 역설입니다.

죽어야 산다!

썩어야 새로 태어난다!


세상 이치와는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요, 파라독스한 종교입니다.


창녀가 성녀가 되는 종교입니다.

죄인이었던 세리가 의인으로 인정받는 종교입니다.

크리스천을 잡아 죽였던 사울이 바오로가 되는 종교입니다.

개망나니로 살던 어거스틴과 프란치스코가 성인이 되는 종교가 바로 그리스도 종교입니다.

이들은 죄 중에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많이 용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많이 용서받은 자만이 많이 사랑할 수 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성인이고 성녀입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병 중에서.....

그 병이 나에게 옮아 올까봐 겁을 냅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정밀 진단을 받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몸에 한두 가지씩 병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수많은 병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무슨 병이겠습니까?

우리들은 암이라고 그럽니다.

또 에이즈라고 그럽니다.

그러나 암보다 에이즈 보다 더 무서운 병은 ‘못 느끼는 병’

다른 말로 ‘불감증’이라고 그럽니다.

이 불감증은 육의 불감증이  있고 영의 불감증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고로 신경이 끊어져 버리면 불에 데어도 통증을 못 느낍니다.

팔다리가 끊어진 나가면 끊어진 부분에는 신경이 죽기 때문에 바늘로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육의 불감증보다 더 무서운 병이 뭐냐?

영의 불감증이 있습니다.

영이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의 3대 불감증을 일컬어서 첫 번째가 은총의 불감증이 있고 말씀의 불감증이 있고 또 죄의 불감증이 있다고 그럽니다.


은총의 불감증 환자들은 은총을 찾아 헤맵니다.

감사할 줄 모릅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집에 은총이 매일매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늘 불평불만으로 하루를 지냅니다.

나같이 불행한 인간이 어디 또 있을까!

매사에 불만입니다.

항상 회의론적이고 부정론적입니다.


은총이라고 하는 것은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 와 있는 은총을 나에게 와 있는 은총을 겸손되이 발견하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는 것이 은총입니다.


그러나 은총의 불감증 환자는 자기 잡에서/ 아니면 자기의 삶 가운데서/ 은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찾아 헤맵니다.

은총은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은총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겁니다.


말씀의 불감증 환자가 있습니다.

말씀만 들으면 졸립니다.

성서 책을 펴도 지루합니다.

다른 때는 눈이 말똥말똥하다가도 사제가 강론 대에만 올라서면

머릿속은 온갖 동네 다 돌아다니다 옵니다.

‘가만히 보자~~ 오늘 신부님 폼을 보니 강론이 길 것 같구나~~ 무슨 생각을 해서 이 강론 시간을 즐겁게 보내나!’

곗돈 낼 날짜도 며칠 안 남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그래도 아직 신부님 강론이 안 끝나네~~’


말씀의 불감증 환자들은 두 종류인데 아예 말씀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와서 설교를 해도 귀를 닫고 영을 닫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말씀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반대의 '말씀의 불감증 환자'가 있는데 이 불감증환자는 찾아다니기는 무척 찾아다닙니다.

피정이다 세미나다 강의다~~

유명한 강사 테이프는 다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귓구녘이 너무 고급이 되어 있어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듣기는 화려하게 들었는데~~

야고버서 1장 22절의 말씀대로

그저 듣기만 해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림이 되어서는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아름다운 말씀이 겸손의 재료가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깐이 봅니다.


말씀의 불감증 환자는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너무 많이 듣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불감증 환자입니다.


세 번째 불감증 환자는 죄의 불감증 환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전혀 못 느낍니다.

가끔 여러 사람을 죽여 놓고도 뉘우침이 없이 뻔뻔한 살인범들을 봅니다.

아무런 가책이 없어 보입니다.

희대의 살인범들이 얼마나 뻔뻔하게... 파리하나 죽인 것처럼 죽여 놓고 아무런 가책이 없는 그런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낙태를 그렇게 많이 시켜놓고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불감증 환자들이 있습니다.


정의라는 명분 아래/ 사실은 기름이 탐이 나서/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놓고 수십만명을 죽여 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성당에서는 성인성녀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가족들에게는 얼마나 냉혹하고 차가운지 모릅니다.

성당에만 나오면 최고의 남자로~~

‘참~~정말 멋있다!’

그 자매님을 보면 “자매님, 참 부러워~~당신 남편 우리 성당에서 끝내 줘~~ 정말 결혼 잘 한 것 같애~~”

그 자매는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너도 와 살아봐라!‘’


대개가 남한테는 잘 하고 가족한테 차가운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입니다.

약한 사람은 늘 가면을 써야 됩니다.

집안에 들어와 봐야 지 꼬라지 가족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지 멋대로 합니다.

밖에 나가면 철저하게 가면을 많이 씁니다.

그렇게 가면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어집니다.


사실 우리는 집 밖에 있는 사람보다는 집 안에 있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합니다.

성당에서 만나는 교우들보다는 먼저 내 자식, 내 며느리, 내 시아버지, 내 아내, 내 남편에게 지극정성을 다해야 됩니다.


성당에서는 성녀 소리 듣는 할머니가 늘 손에는 묵주를 들고

그 할머니 특기는 묵주신공이요, 취미가 십사처인데~~

이렇게 성녀 소리 듣는 할머니인데 집에 가면 하나 밖에 없는 며느리 멸치대가리 볶듯이 달달달달.... 볶아댑니다.

묵주 굴리면서 ‘이 년아 밥해라~~ 저 년아 밥해라’

한 손에는 묵주, 입에는 쌍욕이 나갑니다.

그 할머니는 자기가 죄의 불감증 환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어느 본당에 부임을 했는데 전임신부님이 이미 사목회를 다 구성해 가지고.... 저는 죽으나 사나 그 사람들을 데리고 2년 이상을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사목회장을 보니까 2년 동안을 같이 이렇게 지내는데도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 거예요.

그것도 1년에 딱 한 번, 신부님들 여럿이 오셔서 합동고백성사 볼 때~~어느 줄에 서는가 이렇게 보면~~ 그것도 한국말 모르는 서양신부 앞에 딱 서가지고~~

들어갔다 기어나오는 시간을 보면 1분도 안 걸려~~

충청도는 말이 느려서 성부와 성자와 할 때 기본이 3분인데~~

‘저 인간이 1년에 한 번 성사를 보면서 어떻게 성호만 긋다가 나오는 건가!’

한번은 “술 한 잔 합시다!”

술을 먹으면서 “나 회장님한테 불만 있소.”
“뭡니까?”
“당신은 5000명 평신도의 대표인데 왜 성사생활 안 하시오?”

회장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아, 신부님,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죄가 없어요~~’

“죄가 없다고요~~ 회장님, 사업하면서 술집에 드나들 때 많지....자매님이 회장님 때문에 얼마나 눈물 얼마나 흘리는 거 알어요?

자매님 회장님 얼마 전에는 와이셔츠에 루즈도 묻혀 왔다매~~ 그리고 지난주에는 팬티도 바꿔 입고 왔대매~~그러면서도 죄가 없어요? ”


바로 요런 인간이 뭐냐?

이런 환자가 죄의 불감증 환자입니다.

그리고 성체는 넙죽넙죽 받아먹고 갑니다.

뭐 이정도 짓고~~ 이거 성사거리도 아닌데~~

바로 이런 인간이 무슨 환자?

죄의 불감증 환자~

뭐 이정도 죄 짓고 성사거리도 없는데~~

불감증 환자는 용서받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동시에 사랑도 못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많이 용서받을수록 많이 사랑할 것이고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이 적게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한 사람에게 500데나리온, 한 사람에게 300데나리온 빚을 준 사람이

두 사람 꼴을 보니까 죽었다 깨도 저 인간들 못 갚아~~

그래서 둘 다 탕감해 주었죠?

그러면 누가 더 고마워하고 감사하겠는가!

그 시몬에게 질문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초대했던... 바리세이 시몬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시몬이 아닙니다.

그 바리세이는 뭐라고 대답합니까?

‘아, 빚 더 많이 받은 사람이 당연히 더 고마워하겠지요!”

많이 탕감 받을수록 더 사랑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많은 병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감기라고 하면 바이러스든지 아니면 인플루엔자~~

죄의 불감증이라고 하는 영적 병도 분명히 병의 원인이 있을 겁니다.

죄의 불감증 환자는 늘 비교의 대상을 늘 자신보다 못 한 사람에게 둡니다.


성당에 냉담하고 있는 뒷집 사람에 비교하면 그래도 주일 지키는 내가 더 의인 쪽에 속해 있다는 착각이 듭니다.


1년 내내 묵주기도 한 단도 안 하는 남편과 비교를 하면 그래도 매일 묵주기도하는 내가 이 인간보다는 더 의인처럼 착각이 듭니다.


사람과 비교할 때 찾아오는 것은 영적 교만~~

바벨탑을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성생활의 비교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교만해지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비교해야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만큼 기도하는가!’


어느 성당이던지, 아무리 기도 많이 하는 할머니라 하더라도

예수님이 하신 기도에 비하면 그건 기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하루 종일 파김치가 되도록 사람들을 만나고, 안수하고, 설교했지만~~

제자들은 그것 뒤쫓아다니는 것도 지쳐서 해만 지면 곯아 떨어졌지만~~

예수님은 그때 산으로 올라가셔서 밤새 철야제단 쌓으셨습니다.

하느님이신데도 그렇게 기도했는데~~

‘우리 성당에 나만큼 기도한 사람은 없을 거야!’

천만의 말씀~~

예수님이 기도에 비하면 기도도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만큼 기도하는가!

나는 그리스도만큼 봉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만큼 전교하는가!

나는 그리스도만큼 희생하는가!

나는 그리스도만큼 기도하는가!

나는 그리스도만큼, 예수님만큼 내 십자가 사랑하고 있는가!

어느 것 하나라도 예수님을 그 비교의 대상에 넣으면~~

주님 앞에 서면~~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하는 비참한 마음 밖에 들지 않습니다.


세리와 바이세이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바리세이는 제단 앞에까지 뚜벅뚜벅 걸어가서 가슴을 딱 펴고~~

“야훼시여, 저 아시죠? 당신 사랑하는 바리세이~~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했고, 십일조 칼같이 지켰고~~저 뒤에서 머리 숙이고 있는 세리와 저놈과 저를 비교하지도 마십시오.”

세리는 성전 안에도 못 들어가고 문 밖에서 감히 고개를 못 쳐들고

'하느님, 죄인입니다...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나중에 의인으로 인정받고 돌아간 자는 누구입니까?

세리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성체를 영할 때마다  미주알고주알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그 말을 하루에 수십번도 더 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못난 사제 써먹느라고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성체를 축성할 때마다

제가 무엇이길래 제 입술에 의해서 당신의 몸이 만들어집니까?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성체를 입에 넣을 때도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인간을 하느님과 단절시켜버리는 것은

‘자기만족’ 다른 말로 ‘충만의식’입니다.


인간은 선하면 선할수록 아이러니컬하게도 죄의식이 커집니다.


하느님을 만나서 깨끗한 도화지가 될 때는

까만 점이 하나만 찍혀도 괴롭습니다.


그러나 불감증 환자가 되면 그 까만 점이 수도 없이 찍히고

까만 점이 찍힐 때마다 바로바로 회개하고

늘 하얀 영적도화지를 만들려고 애를 쓰면 되는데~~

하얀 도화지에 까만 점이 찍힐 때마다 바로바로 회개하고

늘 하얀 영적도화지를 만들려고 애쓰면 되는데~~

그 새카만 점이 무수히 찍히다 보면 나중에는

이것이 까만 도화지에 흰 점이 찍혀 있는 건지~~

원래 바탕이 흰 거였는데 까맣게 된 건지 분간이 안 갑니다.


선해지면 선해질수록 죄의식이 커집니다,

바오로사도는 디모테오 후서 1장 15절에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외쳤고

프란치스코성인은 나보다 더 가련하고 비참한 죄인은 없습니다.


바오로사도나 프란치스코 성인이 얼마나 위대한 성인이시고

얼마나 선하신 분이십니까?


선하면 선할수록 더 죄의식이 커지고 하느님 앞에 깨끗하게 살려고

애를 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죄의식이 없는 것이고

하느님 앞에 늘 부족하다고 하는 이 결핍의식은

하느님의 용서에 이르는 문을 열게 됩니다.


여러분들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

또 1독서에 나왔던 말씀/ 갈라디아서 2장 11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시몬에게

너는 내가 들어왔을 때 입도 맞추지 않고 기름도 부어주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서는 나그네가 자기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샌들을 벗기고 흙먼지를 닦아주고 입을 맞추고 머리에다가 향유 한 두 방울 뿌려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거였지만

이 바리세이 시몬은 예수님을 그렇게 환대하지 않았습니다.


창녀였던 그 여인은 늘 목에다 걸고 다녔던 그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다 뿌렸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하는 표시였습니다.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은 많이 용서하고 적게 용서 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함을 믿습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가톨릭성가 294번/ 모든 성인 성녀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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