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제대로 하게 된 이의 모습에 제 모습이 겹쳐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인간적인 시련을 주시며, 생명을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살짝 간만 보았는데도 너무 써서 뱉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그러기가 싫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함께 맛보자며 강요까지 합니다.
원래 낙태 · 자살 · 안락사 같은 생명문제는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던 저의 도덕성을 뽐내는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옆집이나 텔레비전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던 그 일이 십 년 전쯤부터 지금까지 저한테도 줄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달콤한 일들만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제게 부모님의 갑작스런 병환과 죽음, 두 번의 자연유산, 가정해체위기 등 극심한 고통 가운데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끌어올리길 바라셨나 봅니다.
우습게도 처음에는 생명을 수호하는 교회기관에서 일하게 되어 좀 배우라고 이런 시련을 주시나 싶어 이직 (移職) 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명수호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인간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무한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 가정에서도 인공피임과 인공수정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가톨릭 교리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많은 신자가 이혼 · 자살 · 안락사 등의 유혹에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주시며, 생명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신명 30, 19 참조)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
이창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