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죄 없는 고양이만 괴롭힌다 | |||
---|---|---|---|---|
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11-02-11 | 조회수52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85년 전 체스터튼(G. K. Chesterton)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보고 무척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어린애가 놀이에 싫증을 내는 오후 시간이 온다.
도둑 놀음이나 아메리칸 인디언 놀음이 싫어질 때이다.
그리하여 그는 애매한 고양이를 괴롭힌다.
질서 정연한 문화 속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 보면,
그릇된 신앙에 싫증을 내게 되고, 막대기가 1년째의 나무인 척 하는데 식상하게 되고,
밤하늘에 뜬 달이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게 한다는 착각도 시들해지게 되면서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약을 찾고 술을 마시고 약의 양을 늘린다.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서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고
더 해괴한 죄나 더욱더 놀라운 외설을 찾게 된다.
마치 바알(Baal)의 예언자들이 거의 미쳐서 자신의 몸을 칼과 창으로 찔러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듯이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려고 온갖 수를 다 쓴다. 그러나 걸으면서 졸고 있고 악몽으로 스스로를 깨우려고 애쓴다.”
체스터튼의 천재성을 새삼 다시 느낀다. 나는 이 글을 3년 전에 읽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오늘날의 문화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는 불법적인 마약거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어 있고, 알코올 중독자가 늘어나고 있고, 유명한 운동선수들과 연예인들이 많은 사람들과 잠을 잤다고 자랑하고,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코카인이 가득 찬 가방을 들고 파티장에서 뽐내고, 초등학교 부근에서 마약을 파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등 타락한 사회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경과민이 되어 더 많은 약을 복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을 반드시 부자나 유명인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은밀히 이런 것들을 즐기려고 한다.
한일 장신대·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김충렬 박사가 중독성에 대하여 말했다.
“초고속 인터넷과 PC방 등의 확산에 따라 과도하게 온라인 게임과 채팅 등에 빠져든 사람들 사이에는 현실의 실질적 대인관계를 기피하거나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질환마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 활동에 지나치게 몰입, 현실을 등한시해 학업이나 직장, 결혼, 대인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다. 사람들은 홀로 고립된 환경에 머물면서, 대면하는 인간관계 대신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대리 관계를 즐기며, 자신이 원치 않을 때는 언제라도 일방적으로 ‘오프라인’ 상태로 빠져 나올 수 있는 극도의 분화된 삶 속에 있다. 대면하는 인간관계는 점차 줄어들고, 대화와 토론은 의미를 잃어가고, 오직 순간적인 발상과 즉흥적인 충동과 함께 멀티미디어 기기에 흡인되어 버린다. 본질에 기초해 진정한 삶의 행복을 찾기보다는 신속성, 편리성에만 편중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과 가족 등 공동체 문명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순간적 발상과 즉흥적 충동과 함께 멀티미디어 기기에 의한 종속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중독을 부추길 위험성이 농후하다. 게임 중독, 인터넷 및 컴퓨터 중독, 도박 중독, 그리고 채팅 중독, 홀로 소외와 고립을 자초한 관계의 중독, 가상공간에서의 성 중독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이런 소외와 불평등의 현상은 반드시 정보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부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중독은 필요를 느끼는 욕구에서 시작되다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다시 중독이 된다.욕구를 위해 행동하다가 습관이 되면 중독되는 원리이다. 일상의 탈출은 그런 점에서 중독의 위험이 있다.
개인은 반복되는 일상을 탈출하려고 대개 여행을 꿈꾼다. 이런 때의 여행은 아마도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느끼고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여행이란 자신을 돌아보고 발견하는 기회일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날리고 원기를 회복하는 일이다.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은 대개 바다를 그린다. 탁 트인 바다는 마음을 넓혀주고 포근한 어머니 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차를 몰고 가다가 바다를 대하면 환호성부터 터져 나온다. 여름이 되면 해수욕장을 가고, 남들이 다 가버린 해수욕장의 모래 위 발자국들을 보며 좋아하고, 심지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싸늘한 겨울바다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바다를 보면서 번잡하던 세상 일들을 다 놓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겹겹이 쌓인 답답함을 모두 씻어버리고 싶어서일까? 특별한 일은 아니라도 시원한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그대로 평화로워지고 넉넉해지고 그 동안 잊고 살았던 뭔가를 다시 떠올린다. 잠시나마 어느새 세월이 머리 위로 지나간 흔적을 벗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일상을 탈출해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새로움이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다시 잡혀가는 신세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반복되는 하루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상의 탈출을 떠올리기 위해 가까운 바다 여행을 그려봤다. 여기서 외국여행을 한다면 그 좋음을 더 말해 뭐하겠는가?
갇힌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는 유달리 외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마음이 잠재해 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가는 날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즉각적 경험을 한다. 이것도 반복되면 여행 중독이다. 중독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중독은 멀리 있고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고, 어쩌면 일상의 피곤을 느껴 탈출 욕구를 느낀다면 어느새 중독이 내 곁에 와 있다. 그래서 여행 중독이 되면 여행하지 않고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 나아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잠시라도 중독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생각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기에 사회적 피곤을 더 느끼는 사람이 중독 위험에 더 노출되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중독에는 이상한 유혹이 있다. 유혹하는 힘이 마력과 같아서 가까이 한다. 적어도 중독자들에게는 중독은 즐기면서 돈 버는 일이다. 비록 돈 버는 일이 아니라도 어디서도 느끼거나 얻을 수 없는 즐거움과 쾌감이 있다. 즐거움과 쾌감은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능이다.
즐거움과 쾌감은 인간이 추구하는 본능 중 향유에 해당한다. 베르고트(Antoine Vergote)에 의하면 일, 의사소통, 사랑, 즐거움은 인간의 실존을 형성하는 중요 요소다. 이 네 기능은 인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할 수 없거나 심리적으로 심각하게 금지되면 정신질환이 유발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 네 가지는 인류학 전체를 담고 있는 표지라고 한다. 이는 욕망으로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다. 죽을 때까지 추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은 생활이 어수선하고 피곤할수록 내면에서 치솟아 올라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마음에 도랑을 만들고 발을 담그라고 유혹한다. 쾌락에다 자신의 몸을 맡기고 즐기라는 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정도는 체념하고 살거나 여러 가지 쾌락에 자신을 내맡기며 산다.이런 것을 보면 그들은 한 가지를 알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모든 욕망을 제거해도 무욕(無慾)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매혹시키는 대상을 뛰어넘어, 또 그들의 현재 상태를 보완해 줄 중독에 사로잡힌다. 비록 어느 순간엔가 죄의식이 들지만, 이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이것들을 중독에서 한 번에 획득할 수 있어, 중독자들은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모험과 충동, 비합리성으로 가득 찬 중독의 세계는 일상 생활이나 노동의 세계와 상반된다. 또 이런 중독의 마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즉각성이다.”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이면서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가인
앙투안 베르고트(Antoine Vergote, 1921- )가 말했다.
“우리는 순진한 즐거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더 즐거운 것을 찾는다. 우리는 평상시에 먹은 음식에 만족하지 못하여 과식(過食)을 한다. 평소와 같은 술의 양에 만족하지 못하여 과음(過飮)을 한다. 보통의 연회에 만족하지 못하여 호화판 연회를 연다. 단순한 게임에 만족하지 못하여 극렬한 운동을 한다. 평소에 먹은 초콜릿 맛에 만족하지 못하여 세상의 모든 초콜릿을 먹으려고 한다. 같은 이유로 섹스는 더욱더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이런 욕심은 우리의 삶에서 오히려 즐거움을 뺏어가고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치 자유처럼 너무 욕심을 내게 되면 즐거움이 사라진다.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이 보아야 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하고, 더 많이 사야 하고, 더 많이 마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약효가 떨어졌다는 선입관도 버려야 한다. 평소에 금욕 생활을 하지 않으면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캐나다의 여류 작가이며 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메리 조 레디(Mary Jo Leddy, 1946- )가 말했다. “이만 하면 됐다. 나는 충분히 가졌고 나는 만족한다. 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감사해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