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의 토착화는 왜 필요한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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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009 | 추천수0 | |
전례의 토착화는 왜 필요한가?
교회 전례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토착화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강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고유 문화가 우리 예배에 도입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이 갔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우리나라가 이미 서구화된 지 오래인데 무슨 토착화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전례의 토착화 작업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서구화된 사회?
한국 교회 안에서 전례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한 교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씀을 하신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까지도 이미 서구화되어 있으며, 심지어 의식주까지도 서양식으로 변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양적인 것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교회의 건축이나 전례 예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교회에 처음 들어올 때는 조금 어색할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고유의 종교인 불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따라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를 가지고 토착화라는 미명하에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더구나 교회의 전통까지 해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이미 신자들에게 눈에 익은 것이 되어 버린 것들을 무엇때문에 버려야 합니까? 갓 쓰고 도포 입고 미사를 드린다고 해서 신자들이 편하게 느낀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서구화된 우리 사회, 그러나 우리는 …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가 의식주뿐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어느 정도 서구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전통 문화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으며, 기껏해야 민속 명절 때나 잠시 구경할 수 있는 것이거나 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 전통 문화가 상당히 많은 부분 감춰진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도 이미 서구식으로 바뀐 지 오래고 전통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고급 음식점이나 시골 또는 명절에나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사고 방식, 행동 양식도 이에 못지않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나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는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양인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한국인으로 남습니다. 유럽에 사는 교포나 유학생들이 그곳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려고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여전히 그들과는 거리가 남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감추고 숨기려 해도 우리 정서 밑바닥에는 여전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자라나 그곳에서 자라지 않는 한 어릴 적에 몸에 스며든 한국적 정서는 그 무엇으로도 없애기가 힘들 정도로 은근하면서도 끈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전통 문화로 표현되는 전례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교회의 예배입니다. 이 예배의 핵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루어진 파스카 신비입니다. 그런데 이 파스카 신비를 표현할 도구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기네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가 배어 있는 행동 양식, 의복, 습관 등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때문에 전례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 외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똑같은 내용(파스카 신비)을 표현하는 방식이 각 민족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 천주교가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모양의 전례를 가지고 있기에 전례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렇게 하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불과 400년 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로마 교회에 속하면서도 다른 양식의 전례가 여러 가지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또 현재의 전례가 400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그러한 것이 아니며, 시대에 따라, 학문의 발전에 따라 조금씩 변모해 온 것을 감안한다면 불변하는 전례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가장 맛있다고 여겨지는 치즈에서는 오랫동안 씻지 않은 발에서 나는 것과 거의 같은,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이 먹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서양인이 우리 김치를 두고 코를 막는 것 역시 우리에게는 그렇게도 소중한 김치가 그들에게는 고약한 냄새덩어리 정도로밖에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입니다. 유럽에서는 당연시되는 전례의 표현 양식들이 우리에게는 어색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문화의 차이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창조주
우리는 하느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믿는다고 사도신경을 빌려 매주일 미사 때마다 고백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과,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느님이 인간에게 이 세상을 맡기셨다는 것은, 당신이 만드신 좋은 것을 보존, 발전시키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도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우리 안에 간직되어 있는 전통 문화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로서,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상관없이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전통 문화를 보존, 발전시킬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 왜 하느님을 찬미하는 수단인 전례가 우리 문화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다시 말해 전례의 토착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거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구화되어 있으므로 토착화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문에 토착화는 필요합니다. 서구화가 되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선물인 전통 문화를 그만큼 잃어버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따라서 그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 문화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또한 파스카 신비를 우리나라에 선포할 수 있도록 전례의 토착화를 이루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토착화는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과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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