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의 학교" - 2.2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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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2-20 | 조회수35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20 연중 제7주일 레위19,1-2.17-18 1코린3,16-23 마태5,38-48
"사랑의 학교"
“헛되고 헛되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새벽 성무일도 코헬렛 독서의 첫마디가 마음을 두들겼습니다. 사랑 가득할 때는 충만한 인생이지만 사랑이 사라지면 여지없이 누구나 허무한 인생입니다. 무한한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사랑뿐입니다.
“주님을 찬미하라”
주일 새벽 일어나자마자 여기 수도승들, 무려 한 시간 동안 하느님의 한량없는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사랑 가득 담아 주님을 찬미했습니다. 요즘 낮에는 환한 해가 밤에는 둥근 달이 스물 네 시간 동안 온 누리를 밝힙니다. 사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얼마 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0여년 만에 고향집을 찾듯 수도원을 찾은 자매입니다. 좌절과 시련으로 약 5년 동안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다가 하느님을 찾은 자매입니다.
“신부님, 안아 주세요.”
면담 성사 후, 벽면의 ‘몇 살이나 되었을까/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산책 때 마다 꼭 안아보는/아름드리 푸른 솔…’ 시를 읽어 가던 중 주르르 흘리는 눈물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솟아난 말이었습니다. 몇 년 전의 기억도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계속된 시험의 실패로 냉대와 좌절 속에 지내던 한 청년이 피신처를 찾듯이 수도원을 찾아와 면담 성사 후 쏟아 낸 말입니다.
“신부님, 한 번 안아 주실 수 없어요.”
이게 사람입니다. 사랑을 목말라 하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꽃 없는 초목 없듯이 사랑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몇 년 전 배꽃 만발할 때 써놓은 ‘평생 한 번 만이라도’ 라는 글도 생각납니다.
아 이건 하늘 향한 사랑의 고백이다 온 땅을 새하얗게 덮은 배꽃들 순결한 사랑 평생 한 번만이라도 하늘 임 향해 이런 사랑 활짝 꽃 피어 본적 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 인생 성공이다.
원래는 ‘평생 한 번 만이라도 이런 사랑, 활짝 꽃 피어 본적 없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 인생 실패이다.’ 이었는데 어느 지인의 부정적인 말마디를 긍정적인 말마디로 바꾸는 것이 좋다 하여 ‘없다면’ 을 ‘있다면’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에둘러가 아닌 직설적으로 말하여 아무리 명예에 지식에 권력에 재물을 얻었다 해도 사랑에 실패했다면 그 인생 무조건 실패입니다.
사랑 빠진 그 성취들 공허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의 화두는 단연코 사랑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엮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며, 얼마 전에 개봉 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고백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합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편을 간호하는 어느 자매의 글 “남편이 쓰러졌다, ‘사랑한다.’ 말도 못했는데‘라는 기사 중 마지막 대목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남편이 의식 없이 누워있는데 문득 이러다가 사랑한다는 말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남편을 보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 귀에 대고 말하기 시작했어. 여보,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쉬운 말을 왜 이리 아꼈을까.”
인생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죽어야 졸업인 사랑의 학교에서 과연 우리는 몇 학년 쯤 될까요.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실행해야 하는 동사입니다. 온 몸은 사랑하라 있는 ‘사랑의 도구’입니다. 멀리 밖에서가 아니라 가까이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서 함께 있는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학교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느님이 보내 주신 선물인 형제들입니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아니 작은 행동으로의 사랑입니다. 진정성 담긴 사랑의 실천이 감동을 줘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하고 충만하게 합니다. 알고 보면 악도 치유 받아야 할 사랑의 결핍입니다. 빛 앞에 사라지는 어둠처럼 사랑의 빛 앞에 사라지는 악의 어둠입니다. 그러니 악인에 맞서지 말아야 합니다. 맞설수록 강고해 지는 악의 세력입니다. 악을 무장 해제시키는 길은 사랑뿐이 없습니다. 더디더라도 이게 확실한 길입니다. 악인에 맞설수록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힘든 것 같지만 쉬운 것이 사랑입니다.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할 때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보입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형제에게 해 주고, 내 싫어하는 것은 형제에게 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 사랑이요, 형제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래야 그 형제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습니다. 형제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지 않는 사랑입니다. 다 구체적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알아도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 가까이 있는 형제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필수선택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이야기는 바로 사랑으로 지음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살기위해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살 길도, 사람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요즘 심각한 문제가 너나할 것 없이 정체성의 위기요 자존감의 결여입니다.
사랑만이 답입니다. 사랑으로 하느님 닮아갈 수록, 끊임없이 사랑 받고 사랑할수록 정체성 또렷한 자기실현에, 자존감 충만한 행복한 삶입니다. 진정한 성장도 성숙도 사랑의 성장이요 사랑의 성숙입니다. 사랑 때문에, 믿음으로, 희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진정 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할 때 지금 여기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모두가 됩니다. 행복은 선택의 결단입니다. 사랑 역시 필수 선택의 결단입니다. 살려거든 사랑을 선택하여 지금 여기서 실천해야 합니다. 진정 가난뱅이는 돈 없는 자가 아닌 사랑 없는 자입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사랑이요, 누구나 가슴 속에 무한한 사랑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많이 넓게 사랑하십시오. 사람이 되는 길은, 살기위한 길은 이 길뿐입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똑같은 능력의 사랑이 아닙니다. 각자 사랑의 크기도 색깔도 모양도 다 다릅니다. 결코 비교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끊임없이 성장 성숙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이래서 사랑의 인생학교에서 평생 사랑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원대한 평생 숙제를 주셨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아버지를 닮은 완전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는 길은 끊임없는 사랑의 실천뿐입니다. 당장 이런 사랑의 결과가 아닙니다. 사랑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현재 내 사랑 부족과 한계에 좌절할 것은 없습니다. 사랑의 노력에 항구하다보면 은총으로,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을, 속옷까지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 놓을 때가 있고, 천 걸음 가자는 자에게 이천 걸음 가줄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 언젠가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을 기다려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서 실행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는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평생사랑공부뿐입니다. 이런 이들이 모인 사랑의 학교 공동체는 그대로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실천에 항구할 때 완성되는 사랑의 공동체인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당신의 사랑 충만한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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