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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직도 나는 주님과 함께 있지 않은가 보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2-22 조회수433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오16:13-19)
 
4세기부터 내려오는 니케아 신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니케아 신경은 그 때까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성숙해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속속들이 다 알았지만 니케아 신경이나 아타나시오신경(Athanasian Creed)이나 그 밖의 다른 신학이론을 만들지는 않았다.
 
한 사실을 두고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나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그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다. 지식에는 제3자로서 보는 사실적 지식(factual knowledge)과 가까이 에서 보는 친밀한 지식(intimate knowledge)과 성인들이 말하는 신비스러운 지식(mystical knowledge)이 있다. 전기(傳記)작가나 역사가의 훈련을 받지 않으면 자기 어머니의 전기도 쓰지 못하지만 어떤 역사가나 전기 작가보다 어머니를 더 잘 알며 또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 그런데 이 친밀한 지식은 일반적으로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여 다른 지식보다도 설명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 어머니의 전기를 쓰면서 주석을 달고 참고문헌을 싣고 역사적인 배경을 싣고 살아 있을 때 생겼던 사건들과의 관계를 기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역사가는 이러한 것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친밀한 지식에 비하여 역사가의 지식은 냉정하게 보이고 비 인간적으로 보이고 너무나 객관적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다른 어떤 지식보다도 부족하지만 훨씬 더 풍부한 혜안(慧眼)에 대하여 말하였다. 강렬한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하느님을 만나면 눈이 멀게 됩니다. ‘하느님은 어둠을 비춰주시는 빛이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 빛입니다. 이는 빛의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비록 알 수는 없지만 영원히 비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눈멀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둠’만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라 했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나 예레미야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비록 이상한 주장을 했지만 사실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베드로는 친구인 예수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과 친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베드로는 이들보다 신비한 예수님의 정체를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김광규 시인의 <안개의 나라>가 생각난다.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귀는 자꾸 커진다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 같은 사람들이 안개의 나라에 산다
…………………………………..
등에 지고 있는 짐이 보이지 않는다. 짐을 껴안고 넘어지면서도 못 본다.
그러나 힘든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나는 주님과 함께 있지 않은가 보다.
나는 뿌리가 깊지 않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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