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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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11-02-24 | 조회수48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코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결혼을 꼽았으며 “남편이 젊은 아내와 이혼을 하면 제대(祭臺)도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혼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다. 모두 성경에서는 이혼의 사유로 여자가 ‘수치스런 일’을 행했을 경우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당시 가장 존경을 받던 랍비 힐렐(Hillel)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경우인 ‘수치스러운 일’을 임의적으로 넓게 해석하여 사소한 일을 가지고서도 아내를 충분히 추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아내가 요리를 잘못했거나 말대꾸를 하거나 단순히 자기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더 마음에 드는 경우에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심지어 2세기 초의 랍비 아키바(Akiba)는 자신의 아내보다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이혼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랍비 샴마이(Schammai)는 간음과 나쁜 행실만을 아내 추방의 원인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이혼규정은 본래는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점차 남자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편리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남자는 남성 위주의 결혼 법을 통해 성적 방종이 허락되었고 여성은 남자가 버리거나 취할 수 있는 소유물로 전락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이 자신의 불안감이나 외로움을 사라지게 해 줄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숫제 불가능한 일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사람은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주지는 못하고 하느님처럼 가까이에 있어 주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으므로 슬프게 되고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감정은 원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해도 그 믿음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환멸감이나 실망감이나 슬픔이 슬그머니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과 결혼한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완전하다. 우리가 사랑에 환멸감을 느낄 때에는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 같은 사랑으로,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시라고 생각해야 한다. 슬픔이나 실망을 느끼게 될 때에는 자신을 더 낮추고 금욕적으로 살면서, 신혼 때 처음 그 사람을 만나 하느님 같이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을 했던 것처럼 환상을 갖지 말고 달라진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면서 더 깊은 관계를 가지라는 계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롤하이저 신부님이 말했다. “부부 관계든, 친구 관계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의 한계와 서로 실망을 주지 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서로 위안을 삼는 것이다.” 부부는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 때문에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란?> 익명 사랑이란 말로 상처를 주어도 침묵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퉁명스럽게 말하더라도 참는 것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이성을 잃고 말할 때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슬퍼할 때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요구할 때 얼른 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인생에 허무를 느낄 때 용기를 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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