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복음 선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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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0-08-13 | 조회수2,060 | 추천수0 | |
복음 선포
복음은 하느님 말씀의 거행 가운데 높은 시점이다. 4세기 이후 적어도 부제가 노래하거나 읽으면서 선포하였다. “전례상으로 복음 낭독에 최대의 경의를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한편으로 복음 낭독자의 직위를 규정하고 강복을 주고, 복음 낭독을 준비하는 기도 등으로써, 또 신자들 편에서는 응답으로 그리스도께서 현존해 계시며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써, 마침내 복음서 자체에 드리는 특별한 존경의 표시로써 복음 낭독을 다른 독서들보다 특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지침 35).
초세기부터 다른 성서들 위에 복음의 고양은 복음서들이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업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기쁜 소식” (eu-angelion)으로 봤다. 성서 저작들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권위는 복음들을 각 복음 첫 머리에 나오는 것에 기초하여 “네 가지 생물” (묵시 4,6-9; 5,6; esp. 4,7)로 보게 하였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의 족보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마태 1,1-17) 사람 얼굴을 한 생물 (이콘에서는 빈번히 사람 모습을 한 천사)로, 마르코 복음은 “광야에서 외치는” 요한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사자로, 루가 복음은 즈가리야의 제사 (루가 1,5)에 관해 말하기 때문에 황소로, 마지막으로 요한 복음은 복음서 머리말에 영적인 “비행”에 관해 말하기 때문에 (요한 1,1-17) 나는 독수리로 묘사된다.
복음서는 가장 높은 존경으로 대한다. 초기 시대부터 복음서는 값비싼 표지로 만들었다 (따라서 OR I에 따르면 복음서는 미사 후에 보관함에 봉인되었다). 그것은 보석과 상아로 장식되었다. 본문은 장식 그림과 첫 글자로 꾸며졌다. 교회법과 사회법 모두에서 맹세는 흔히 복음서 위에서 이루어졌다. “하느님과 내가 손을 얹는 그분의 거룩한 복음의 도우심에 따라”라고 하는 서약문을 읽는 동안 서약자는 손을 복음서 위에 얹었다. 특히 요한 복음 첫머리에 나오는 찬가에 손을 얹는 것이 널리 퍼졌다. 고대의 많은 필사본들이 이것을 명백히 드러낸다.
복음은 말씀을 통해서 당신 공동체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그분을 제시한다. 복음서에 표하는 존경은 제대에 하는 것과 일치한다: 침구, 절, 향, 초와 시종들의 행렬 들 (위에서 말한 제대에 대한 경의를 주목하라). 향을 사용한다면, 알렐루야를 부르는 동안 사제나 주교가 향로에 향을 아무 말 없이 넣는다. 복음 전 노래는 환호이고, 우리가 봤던 대로, 그것의 내용은 이미 복음 환호의 부분이다. 사제 자신이 복음을 읽는다면 제대 앞에 절을 하고 마음과 입술의 정화를 간구하는 준비 기도문을 바친다. 이 기도문의 주제는, 이사야가 자신의 사명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되는 예언자가 되기 전 하느님의 현현을 목격할 당시 세라핌 천사가 뜨거운 돌로 이사야의 입술을 정화하는 것 (이사 6,6-7)과 연결된다. 현행 기도문은 이전의 기도문보다 짧고 이사야 예언서에 관해 정확한 언급이 더 이상 아니다.
부제가 복음을 선포한다면, 부제는 주교나 사제의 축복을 낮은 목소리로 청해 받는다. 축복문은 준비기도문의 청원형으로 되어있다. 부제 (또는 사제)는 복음서를 제대에서 독서대로 들고 간다. 봉사자들은 그와 함께 촛대와 향을 가져갈 수 있다 (홍주; 참조 총지침 94). “독서대에 가서 책을 펴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를 하고, 자기 이마와 입과 가슴에 십자를 그으며 ‘...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한 다음, 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복음서에 향을 드린다. 교우들의 응답이 끝나면 복음을 읽는다. 복음 낭독이 끝나면 복음서에 목례를 하며 속으로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주소서’ 한다. 복음 끝에 지방 풍속에 따라 환호를 올릴 수 있다” (총지침 95).
복음서를 가지고 행렬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거의 모든 동서 전례에서 관습이다. 특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전례에서 장엄하다. 또한 OR I에서 서술된 교종 전례에서도 그렇다. 이 행렬에 초와 향을 들고 가는 것은 그것 뒤로 옛 전통을 가지고, 중세 이후 주교좌 전례와 장엄한 본당 미사에서 역할은 축소의 변화 중 하나였다. 이 행렬은 항상 중요한 것으로 남았다. 단순히 읽는 개인 미사에서도 그 당시 복음서가 포함된 미사 전례서를 제대 복사가 “서간 모서리”에서 “복음 모서리”로 옮겼다. 제대 옆의 방향 전환은 고대의 존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압시스 주교 자리에서 바라볼 때) 제대 오른편은 더 존경스러운 자리였다.
선포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인사 교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은 이어지는 것을 강조한다. 미사 중에 이러한 인사 교환은 매우 자주 사용되었는데, 오늘날 이 인사의 축소는 이 인사에 대한 위대한 의미를 드러낸다. 이 인사는 오직 미사 시작과 끝 강복 앞과 복음 선포 시작 때와 감사 기도 시작 때다. 이것에서 다시금 말씀과 성사에 주어진 존경이 병행됨을 밝히 드러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기를, 계십니다)”라는 동사는 직설법으로 가능하다. 즉, 말씀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미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복음서에 하는 십자표와, 이어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하는 십자표는 집회도 함께한다.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하는 십자표의 의미는 생각과 말과 일, 다시 말해서 전 인격과 그의 행위가 그리스도께 봉헌된다는 뜻을 드러낸다. 아니면, 하느님 말씀을 정신으로 관상하고 마음에 보존하고 입술로 고백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향을 사용할 때는 부제 (또는 사제)가 복음서에만 향을 드린다. 원래 향로는 단지 행렬 때만 들고 왔다; 중세 시작 때 제대에서처럼 복음서에도 향을 드렸다. 우리는 미사 시작 때 제대에 존경을 드리는 의미로 향을 드린다는 것을 말했다. 제대와 복음서에 존경을 드리는 동작은 주님 그분 때문에 마련되었다.
집회는 복음을 듣는 동안에 일어선다 (총지침 35).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쳐버리기 쉬운 것으로, 일어서는 동작의 의미는 앉는 것과 대조하여 독서의 중요한 상징이다. 느헤 8,5은 말하기를: “에즈라가 모두 쳐다볼 수 있도록 높은 자리에서 책을 펴들자 온 백성은 일어섰다.” 따라서 일어서는 동작은 존경과 영예의 표지이다.
독서가 끝난 다음 하는 입맞춤은 존경과 신심의 동작이다. 이것은 제대에 입맞추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OR I에 따르면, 복음 선포가 끝난 후에 보조 차부제들은 복음서를 가슴에 기대어 천으로 두른 손에 잡고 제대칸에 있는 모든 성직자들에게 가서 복음서에 입맞춤하게 한다. 최근 과거에는 중심 대 미사에서 차부제가 주례 사제 (또는 주교)에게 책을 가져갔으며, 읽는 미사 (Missa lecta)에서도 주례자는 그것에 입맞춤하였다. 오직 장례 미사에서만 예외적이었다. 현행 규정에서는 복음을 선포한 사람만이 책에 입맞춤하나 이것은 모든 미사에서 참된 것이다.
많은 지역에서 예식적 결말은 관습적이다. 부제 (또는 사제)는 노래한 (또는 말한) 환호로 복음을 따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집회는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하고 응답한다. 이 환호는 이전에는 봉사자 또는 제대 복사가 했으나 20년대와 30년대에는 이른바 공동체 미사에서 모든 집회가 했다.
복음선포 후에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주소서”라고 번역한다. 죄 사함을 위한 하느님 말씀의 힘은 성서에서 증거된다: “진실히 진실히 말하거니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는 심판에 끌려 들어가지 않고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습니다” (요한 5,24). “그대들이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그대들 안에 머문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청하시오. 이루어질 것입니다” (요한 15,7).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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