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월 26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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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2-26 | 조회수638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2월 26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마르코 10장 13-16절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다시금 어린이로 돌아갈 순간>
요즘이야 아이들을 금이야 옥이야 하고 키우지만 예수님 시대 어린이들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부계사회, 가부장제, 남성위주의 당시 유다 사회 안에서 건강하고 자식 많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 어른을 최고로 쳤습니다.
그 외 여성들, 자기 역할 제대로 못하는 남성들, 환자들, 장애우들은 어딜 가도 제대로 대접도 못 받았습니다. 특히 의료기술이 극도로 낙후되었던 당시 당연히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는데, 어린이들은 인간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명백히 선언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을 축복해주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언행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 하느님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 경건하게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느님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니, 어안이 벙벙해진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 그간 살아오면서 세상에 기여한 바도 없는 어린이들, 하느님과 율법에 대해서 문외한인 어린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바람직한 인간의 생애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린이-어른-어린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래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어린이들, 비록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큰 근심걱정 없이 살아갑니다. 죄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이웃에 대한 기대치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투명합니다. 머릿속에 든 것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자기주장도 강하지 않고 대체로 수용적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 그리 대단하다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삶이 아닐까요?
그러나 어린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갑니다. 더불어 세상의 부조리도 알아갑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에 물들어갑니다. 순수성을 잃어가며 죄에 물들어갑니다. 내세울만한 것도 아니지만 조금 배웠다고, 자기주장이 강해집니다. 고집도 세지고 당연히 이웃들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집니다. 지나치게 세속적, 자기중심적 삶으로 인해 피곤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하느님 나라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지요.
다시금 어린이로 돌아갈 순간입니다. 부드럽고 수용적인 어린이의 삶, 겸손과 침묵을 배경으로 그간 무겁게 달고 다니던 고집과 편견, 죄와 위선을 하나하나 떨쳐버리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야할 순간입니다.
어렵지만 ‘이 나이에 무슨’ 하는 체면도 멀리 던져버리고, 지난날 최고라고 여겼던 것들도 조금씩 내려놓고, 엄청나게 힘이 들어간 목도 부드럽게 만들며, 어린이처럼 작은 자가 되어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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