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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6일 야곱의 우물-마태7,21-27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06 조회수350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매주일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나에게 ‘주님, 주님 !’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 하고 말할 것이다.
 
23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 하고 선언할 것이다. 24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할 좋은 열정과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

세밀한 독서 (Lectio)
유다교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구원의 방편으로 율법 공부와 율법 준수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그것만으로 부족하며 ‘주님의 뜻을 실행’ 해야 한다고 오늘 말씀은 전합니다. (마태 7, 21 참조)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 은 무엇일까요 ? 마태오복음에서 하느님의 뜻은 두 가지 의미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신뢰하시는 하느님의 원의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번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 말씀을 따라 살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원의입니다. (21. 24. 26절) 사랑의 신뢰는 외적인 실행만이 아니라 온 존재로 행하는 투신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그날” (22절) 은, 하느님 원의에 대한 우리 응답의 결과로써, 구원의 날인 동시에 종말론적인 심판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당신을 “주님, 주님” (21ㄱ절) 하고 부르는 신앙고백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으로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할 때 (19절),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23절) 하고 선언할 것입니다. 루카복음에는 “불의를 일삼는 자들”(13, 27) 로 나오는데, 불의가 윤리적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이라면, 불법은 정의의 척도를 자신한테 두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뜻을 정의라고 일컬으며 자신은 물론 이웃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마태 15, 14 참조) 그들은 ‘주님의 이름’ 을 세 번씩 반복하며, 자신들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주님의 일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언을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켰다.” (7, 22) 해도 그 일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주님 뜻에서 빗나가는 세 갈래 길을 만납니다. 첫째 길은 겉으로 ‘주님, 주님’ 하지만, 일상 삶은 자신이 고백하는 것과 동떨어진 생활입니다. 둘째 길은 미래를 예언하며 남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지도하지만, 정작 자신은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셋째 길은 특별한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신앙으로 포장된 세속적인 삶입니다. 이런 길을 간다면, 주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23절) 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의 봉사를 한다고 자처한다면, 현재 내 사랑의 척도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설교 (5-7장) 는 ‘집 짓는 자들의 비유’ (7, 24-27) 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과 실행하지 않는 사람’ 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으로 대조시키며, 구원과 멸망이 그 결과로 따라옵니다. ‘반석’ 위에 짓는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칠 때” (7, 27) 그 결과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 주님을 따르는 이들한테 얼마나 절실하고 절대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집 짓는 일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내가 지은 집이 한순간에 없어질 때 얼마나 커다란 고통에 휩싸이게 될지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워야 할 집은 오직 ‘반석 위에 짓는 집’, 하나뿐입니다. 하늘나라를 차지할 사람은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의 참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반석 위에 집’ 을 짓는 사람입니다.

묵상 (Meditatio)
한평생 사모했던 주님한테 받을 상급을 희망하며 “그날에” (22절) 서봅니다. 그런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가라.” 는 말씀을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 하느님과 저를 분리시키는 그 무서운 폭풍의 눈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괜찮아 누구한테나 있는 거야, 괜찮아 그래도 주님의 일이잖아.’ 하며, ‘괜찮아’ 차를 몰고 하느님과 정반대 쪽으로 여행을 즐기던 저를 만납니다. 얼마나 작은 편리와 합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하느님을 등지게 하는지요. 하느님의 뜻에 이르는 길이 거칠고 험하다 해도 오늘, 제가 ‘괜찮아’ 차에서 내려 주님 말씀을 이정표로 삼아 걸어가려 합니다.

기도 (Oratio)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너희 정신에 새기고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신명 11, 18)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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