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은 포도밭 안에서만 죽으셨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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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11-03-07 | 조회수42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마르코 12:1-12)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셨다. “당신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하나를 뽑아 오시어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당신께서 자리를 마련하시니 뿌리를 내려 땅을 채웠습니다.”(시편 80:9-10)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생각을 확고하게 갖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은 가혹한 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은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은 없고 악이 판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하시려고 하셨던 것 같다.
“내 친구에게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하나 있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이사야 5:1-2)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포도나무일 뿐만 아니라 포도원의 아들이자 상속자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 대목은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마르코 복음(12:8)에서는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고 말하고 있지만 루카 복음(20:15)과 마찬가지로 마태오 복음(21:39)에서는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하고 거꾸로 말하고 있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당하신 상황을 그리려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포도밭) 밖으로 끌려 나와 시 외곽에서 죽음을 당하셨지 예루살렘 시내에서 죽음을 당하여 던져지지는 않았다. 마르코나 마태오나 루카는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건을 거꾸로 이야기한 것은 포도밭 안에서도 죽으셨고 포도밭 밖에서도 죽으셨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민족도 예수님을 죽이셨고 지금 우리들도 예수님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 같다.
사실 우리 모두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소작인이다. 소작인은 밭을 일구어 곡식을 가꾸고 거둘 때, 주인과 맺은 계약의 조건대로 주인에게 조건에 맞는 도조를 내야 하지만,
도조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밭을 통째로 차지하려고 한다. 이 땅에 우리들을 보내어 열심히 살라고 하신 주님이지만, 우리들은 항상 주님께 불평불만만 던질 뿐이다. 잘된 일은 내가 잘했기 때문이고, 안 된 일은 주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앞선 못된 소작인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또한 주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죄 많은 우리 소작인들과 너무나 많이 닮았다.
누구나 열심히 바르게 믿으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항상 기쁘고 평화가 있게 된다. 많은 성인 성녀들이 주님 뜻에 맞게 산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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