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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3-08 조회수1,028 추천수2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3월 8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Repay to Caesar what belongs to Caesar
and to God what belongs to God.”
They were utterly amazed at him.
(Mk.12.17) 
 
제1독서 토빗 2,9-14
복음 마르코 12,13-17
 
한 젊은 남자가 병원의 수술실에 누워 있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 수술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수술을 집도할 의사는 손을 환자의 어깨에 살며시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 내가 솔직히 말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인데 자네 병명은 설암으로 판명이 났네. 자네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는 자네 혀를 절개 해야만 하겠어. 따라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도록 하게. 자네는 이제부터 말을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이 젊은 남자에게 의사의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습니까?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이 순간 떨리면서 창백해지고, 입가의 근육은 경련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 주위에 늘어선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이 글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역시 이 젊은이처럼 하느님의 이름을 찬미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젊은이는 하느님의 이름을 찬미하기보다는 하느님께 대한 원망을 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요. 왜 자신에게 이렇게 커다란 아픔과 고통을 주시냐고 항변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세상의 말이 아닌, 긍정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하느님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우리 역시 내 뱉는 말이 세상의 말일수도 또 하느님의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참 생명의 길은 하느님의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더욱 더 곤란하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헤로데 당원들과 함께 다가가 오늘 복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헤로데 당원들은 황제에게 세금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 백성이 이국인들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해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헤로데 당원들에게 고발당할 것이며, 세금을 내라고 하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앞서 말이 세상의 말도 또 하느님의 말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돈 역시 황제의 것도 또 하느님의 것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쓰는 말과 행동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과연 하느님의 것으로 생각하며 사용하고 있었을까요?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어떠한 순간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 길섶에 핀 풀꽃, 담벼락을 적시는 달빛, 그것들은 모두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이외수)




‘미안합니다’를 안 해서(유남철, ‘좋은생각’ 중에서)

몇 달 전 시장에서 젊은 여성의 팔을 내 자동차 백미러로 살짝 건드리고 지나쳤다. 30분즘 지났을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중년 아저씨였다. 당장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차로 사람을 치고 도망갔으면서 왜냐고 묻는 거야?”라며 노발대발했다. 아차, 싶었다.

나를 본 아저씨는 다짜고짜 경찰에 뺑소니차로 신고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내 차 백미러에 팔을 부딪친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부녀는 백미러로 팔을 쳤을 때 바로 차에서 내려 사과했다면 그냥 갔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말없이 지나쳐 괘씸하고 기분이 나빴다며, 당장 병원에 가자고 했다. 함께 병원에 가 진단해 보았으나,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왔다.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녀는 뺑소니차로 신고해 버렸다. 나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쓰고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서 이런 고초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벌금이 몇 백만 원이라는 등, 형사 처벌로 갈 수 있다는 둥 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젊은 경찰이 부녀를 설득했나 보다. 부녀가 내게 정신적 피해 보상비로 10만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합의를 보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미안합니다.”를 안 해서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실수라도 하면 바로 사과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는 부녀가 참으로 야속했는데 지금은 소중한 가르침을 준 그분들이 고맙기만 하다.
 
 
 
Sometimes When It R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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