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전례 이야기 ‘전례 짬짜’] (2) 상본(像本)과 이콘(Icon)
상징 통한 신적 실재와의 만남 필자는 네 살 때 세례를 받았는데 이것을 기념하여 본당신부님이 상본에 세례 날짜와 세례를 베푼 사제의 서명을 기록하여 줬다. 필자의 앨범 첫 장에 이 상본이 있다. 어린 시절 상으로 신부님이나 수녀님께 받은 상본도 있다. 김대건 신부가 한국에 배를 타고 입국하다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에서 가슴에 품고 있던 성모님 상본을 꺼내 기도하고 살아난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건 신부는 신자들 교육에 있어 상본이 매우 큰 역할을 하며 신심을 전파하는 도구가 된다고 서한에 적어 놓았다. 서적과 시청각 교재가 없었던 당시에 상본은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상본(像本)이라는 말은 중국천주교회에는 없는 한국천주교회의 용어다. 예수회에 의해 처음으로 중국에 성화(聖畵)가 전파되었을 때 부작용이 속출했다. 마치 부적(符籍)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이 점을 우려하여 성화가 한국에 전파될 때 성화를 다른 용어로 바꾸어 불렀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세웠다. 상본(像本)이라는 말은 그 형상-상(像)의 근본-본(本)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든 성인은 잡신(雜神)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의인들로서 그 그림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하느님의 영광과 성인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본의 인물과 그림의 내용이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하느님으로 귀결되며 우리 역시 그러한 삶을 살 때 성인이 된다는 내용이며 절대로 부적처럼 사용하거나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다만 성경이나 기도서에 책갈피처럼 사용하게 허락하였고 세례나 영명축일 때 선물하도록 하였다. 상본(像本)이라는 말은 우리 신앙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드러내는 용어다.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염려와 상징을 통한 신적 실재와의 만남 사이에서 고민을 해왔고 그 해답을 보이지 않는 성부를 그대로 드러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 한국천주교회의 초기 교우들이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러한 교회의 고민을 이미 했고 우상숭배로 흐를 수 있는 성화(聖畵)가 아닌 상본(像本)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5)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보다 가깝게 다가갔다.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면서 신앙을 표현하는 그림들도 많아졌다. 그중에서 이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나 기도하는 성모님 등도 볼 수 있다. 4세기 말경에는 순교자들의 일생을 그린 작품들이나 성인들의 초상화로 교회 내부를 장식했는데 일종의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했으나 아직 경배의 대상은 아니었다. 목판에 그려진 이콘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려져 후에 시나이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 옮겨진 ‘성 모자 이콘’과 ‘그리스도와 성 메나스 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부터 동방에서 이콘은 전례 안에서 특별한 위치와 가치를 획득했다. 서방에서 성인들의 유물을 공경하고 특히 13세기 이후에는 성체 공경이 강했다면 동방에서는 이콘을 공경했다. 8세기 초 성화에 대한 종교적 공경을 이교적 우상숭배로 배격하면서 ‘성화 파괴 운동’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다마스커스의 요한이 729년부터 성화 파괴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반론을 제기했다. 그리스도 자신이 보이지 않는 성부의 “모상”(이콘)이시며(콜로 1,15) 따라서 그림으로도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787년에 열린 제7차 니케아공의회에서 성화에 대한 ‘공경’이 엄숙히 승인되었고, 원상(原象)에 대한 ‘흠숭’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만 유보된다는 교의결정문을 공포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1)이라고 정의된 전례는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실현되며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서 예술을 필요로 하고, 예술에는 이콘도 당연히 포함된다. 다만 성화들과 성상들, 그리고 성모님과 성인들께 드리는 ‘공경’과 삼위일체 하느님께만 드리는 ‘흠숭’은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1) 전례헌장 7항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 ‘전례 짬짜’의 탄생! 전례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고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교우들의 호응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한국천주교의 전례용어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그에 따르는 보편교회에서의 역사와 개념을 풀이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 어떤 제목으로 연재를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중국식당에 가면 짜장면을 먹으면 옆사람이 먹고 있는 짬뽕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짬짜면’을 연상했습니다. ‘전례 짬짜’는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궁금해 하는 전례 요소들을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와 보편교회의 전례역사와 연결해서 시원스럽게 설명하고자 하는 취지가 담겨있습니다. 즉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현대화(Aggirnamento)라는 ‘진보’(Progressio)와 교회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Traditio)의 조화를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가톨릭신문, 2011년 9월 11일, 윤종식 · 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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