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를 살다] 미사전례 안에서의 하느님 말씀 (1) 말씀의 식탁 오늘날 우리가 미사전례에 참석하면 다양한 성경 말씀들을 듣게 됩니다. 독서들, 화답송, 후렴, 성가 등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만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 개혁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해마다 같은 주일이나 축일에 동일한 본문을 봉독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여전히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묵시록의 말씀들은 아예 인용하지도 읽혀지지도 않았습니다. 개신교 신자와 비교하면 가톨릭 신자들의 신자생활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전례와 풍부한 기도전통에 의해서 새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계시, 그분의 가르침과 약속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증인들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을 새롭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대한 믿음이 생기는 곳에서야 비로소 신뢰와 순명, 희망과 그에 응답하는 사랑이 가능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빵으로, 일로, 우리의 원의로 살아가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예수님은 악마와의 싸움에서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간에게 향하시는 하느님의 마지막이자 결정적 말씀이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삶의 증거에 귀기울이지 않아 그분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며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죽은 말이 아닙니다. 차갑거나 단지 이미 오래전에 지난 일이나 사건들을 전해주는 말이나 정보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는 생생한 하느님 자신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신앙을 일깨우고 능력과 확신을 선사하고 새로운 생명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려고 하는 것과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사람, 좌절과 낙담에 생기를 잃어버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구절을 당신의 수난으로 해석하시면서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어떤 놀라운 체험을 겪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까이 계심에 너무 기뻐하며 가슴이 불타 올랐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삶의 심오한 뜻을 깨쳤음에 기뻐하며 가슴이 불타 올랐습니다. 하느님은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없으면 교회의 성사적 활동과 개인의 기도는 경직되어 버립니다. 이미 1세기부터 교회 안에서 수도자와 사제들이 이른 아침 성경독서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자신을 말씀의 가르침과 축복으로 세웠다는 사실은 아름다운 전통이었습니다. 하느님 말씀과 영으로 새겨진 삶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은 하느님 말씀과의 만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1,24-25절에 나오는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라는 말씀은 이사야서 40,6-8 말씀의 재해석입니다. “외쳐라! …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40,6-8) 예수님 자신은 당신 말씀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1)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말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알리십니다. 특별히 당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인간의 말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삶에 참된 의미를 갖게 합니다. 인간이 진리와 생명, 희망의 미래를 얻는지는 온전히 이 말씀을 듣는 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5,24)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놀랄 만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들을 당신의 친척이자 형제요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왜냐하면 그들은 내적으로 예수님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삶은 진리를 향한 통찰과 힘, 그리고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함께 하는 기도에서 삶의 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인들도 예수님의 말씀, 하느님 계시의 말씀에서 삶의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는 말씀을 가지고 계십니다.(요한 6,68)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의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에 대한 답을 찾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예수님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이에 지상의 모든 가톨릭교회 주교들의 모임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풍성한 성경에서 샘을 퍼냄으로써 교회를 쇄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느님 말씀의 식탁은 신자들에게 풍성하게 차려져야 한다고 결의하였습니다. 계시 헌장(하느님의 말씀 : Verbum Dei) 21항은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전례헌장도 35항에서 “전례 거행에 더 풍부하고 더 다양하고 더욱 적합한 성경 봉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51항은 보다 구체적으로 방향을 세웁니다. “하느님 말씀의 더욱 풍성한 식탁을 신자들에게 마련하여 주도록 성경의 보고를 더 활짝 열어, 일정한 햇수 안에 성경의 더 중요한 부분들이 백성에게 봉독되어야 한다.” 이 방향지침이 오늘날 새로운 다양하고 풍성한 독서주기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한 전례개혁은 주일과 축일의 전례 안에서 성경 독서의 확장과 새 배열을 통하여 신앙과 교회의 삶을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신자들이 하느님 계시의 말씀의 중요한 단락들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전례시기를 주일은 3년 주기로, 평일은 2년 주기로 하여 주일과 축일들에 성경의 중요한 본문들이 선포되도록 배정하였습니다.(지침 65항) 현행 미사 독서의 특성은 독서 본문의 내용이 신구약 성경에 들어 있는 하느님 말씀을 다양하고 풍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말씀의 양식을 풍성히 누리고, 계시 진리를 폭넓게 깊이 알아들으며, 잘 준비된 마음으로 성찬 전례에 들어가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 때 외에도 다양한 사목 환경과 요구에 맞추어 여러 종류의 말씀 전례용으로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독서 본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하겠습니다. [월간빛, 2013년 9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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