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사순] (5) 성교공과와 십이단, 성로선공 - 기도와 선공(善功)에 대한 헌신
“당신의 거룩한 은총 외에는 탐하지 않게 하소서” - 「천주성교공과」. 1862년 목판으로 인쇄돼 1972년 가톨릭기도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기도서다. 그 중 성호경과 삼종경, 천주경 등 중요한 12가지 기도문은 ‘십이단’이라 불렸다. (사진제공 호남교회사연구소)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면서부터 시작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신앙선조들은 가능하면 모든 일에 감사하며 기도로 응답하고자 했으며, 기도의 시간이 길수록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아침·저녁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신앙선조들은 물을 마실 때도 성호경을 바쳤고, 논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앙선조들의 기도의 삶은 「천당직로」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데, 이 책에는 인사법, 음식 먹는 방법 등 신앙생활의 기본예절에서부터 묵상하는 방법, 은총 얻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의 모든 지침들이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신앙선조들은 세수를 할 때조차도 “하느님 저는 제 육신을 씻으니 청컨대 주님은 제 영혼을 씻으시고,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제 영혼의 죄의 더러운 것을 없이하여 주소서”하고 기도했고, 옷을 입으면서도 “하느님 예전의 저를 벗기소서. 그리고 저를 새 사람으로 입히소서. 곧 저에게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입히소서”하고 되뇌었다고 한다. - 천주성교공과는 ‘성교공과’ 또는 ‘공과’로 불렸는데, 넓은 의미로는 ‘매일의 기도’를, 좁은 의미로는 ‘주일과 축일 및 기타 기도문’을 수록한 기도서를 뜻한다. 우리에게 「가톨릭기도서」가 있다면, 신앙선조들에게는 「천주성교공과」가 있었다. 천주성교공과는 1862년 목판으로 인쇄돼 1972년 가톨릭기도서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기도서였다. 천주성교공과가 나오기 이전에는 「천주성교일과」와 「공경일과」 등이 사용됐지만, 그 기도서들은 어렵고 번역이 체계화되지 못했으며 오자나 탈자도 적지 않았다. 천주성교공과는 성교공과 또는 공과로 불렸는데, ‘공과’는 넓은 의미로는 ‘매일의 기도’를, 좁은 의미로는 ‘주일과 축일 및 기타 기도문’을 수록한 기도서를 뜻한다. 그 중 성호경과 삼종경, 천주경, 성모경, 종도신경, 고죄경,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 소회죄경, 천주십계, 성교사규, 삼덕송, 봉헌경 등 중요한 12가지 기도문은 ‘십이단’이라 불렸다. 천주성교공과 머리말에는 기도에 대해 “기구(기도)는 그 자체가 천주공경이니, 천주를 흠숭하며 이왕 받은 은혜를 사례하며 죄사하여 주심을 빌며 우리와 다른 이를 위하여 유익한 은혜를 구함으로써, 우리가 온전히 천주께 종속돼 있는, 그의 피조물임을 승복하는 연고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즉 기도의 가장 첫 번째 목적이 주님을 흠숭하는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이영춘 신부는 신앙선조들의 기도생활에 관해 “선조들은 청원기도도 분명 필요한 기도지만 감사기도가 우선되지 않은 청원기도는 그저 기복신앙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했다”며 “단순히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을 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고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앙선조들이 기도에서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은 선조들이 사용한 용어에서부터 드러난다. 신앙선조들은 기도를 신공(神功)이라 불렀는데, 기도와 선공(善功) 모두를 뜻하는 신공이라는 단어는 신자들에게 단순히 기도를 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기도의 내용을 온전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성경을 해설하는 「성경직해」도 복음말씀, 주해(설명), 외에 잠(箴: 묵상자료), 의행지덕(宜行之德: 마땅히 행해야 할 덕목, 실천덕목 제시), 당무지구(當務之求: 마땅히 힘써야 할 기도, 기도를 일러줌)까지 연결돼 있는 형태였다. 즉 모든 기도의 끝에 항상 실천 덕목에 대한 다짐과 그 실천을 요구했다. 십자가의 길은 ‘성로선공(聖路善功)’이라 불렸는데, ‘성로’는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형장인 골고타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간 길을 성스럽게 이르는 말이며, ‘선공’은 주로 존경할만한 행동 또는 찬양할만한 업적을 의미한다. 신앙선조들은 사순시기에 매일 같이 성로선공을 하며 주님의 수난에 대해 묵상했고, 박해 중에도 주님을 기억하며 믿음을 지켜왔다. 신앙선조들이 바쳤던 염경기도는 하느님을 향해 찬미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선행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람이 되고자 청하는 내용이었다. 묵상기도 역시 영혼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하느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자기에게 필요한 바를 청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느끼는 친밀함을 하느님과도 느끼고자 했다. 신앙의 선조들은 아침저녁으로 “내 마음으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은총 외에는 탐하지 않게 하소서”하고 기도했다. 이러한 기도의 힘으로 우리나라에는 103위의 성인이 탄생했으며, 124위의 순교자가 시복을 앞두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청해야할지 신앙선조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4월 6일, 김진영 기자] [온고지사순] 전주교구 되재공소 김영옥 회장
“기도,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 - 되재에서 4대째 신앙생활을 이어온 김영옥씨에게 기도는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할머니가 나를 무척 예뻐하셨어. 기도할 때 늘 나를 안고 하셨지. 할머니 품 안에서 함께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하기 싫어서 반항해본적은 없고, 기껏 했던 반항은 할머니 품에서 나와 옆에 앉아 기도하는 거였어.” 김영옥(비오·76) 공소회장은 증조부 때부터 전주교구 고산본당(주임 백승운 신부) 되재공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기간 중 성당이 불타고, 십자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불에 돌돌 말아 숨기는 어르신을 보고 자란 아이가 이제는 공소의 큰 어른이 됐다. “예전에는 아침기도를 조과라 했어. 저녁기도는 만과라 했고. 아침기도 때나 저녁기도 때나 늘 도문을 함께 바쳤지. 도문이 뭐냐고? 도문은 호칭기도야 호칭기도. 젊은이들에게는 좀 길게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그 기도가 참 좋았어” 김 회장이 젊었을 때는 아침기도는 가족끼리 바치고, 저녁기도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공소에 모여 함께했다. 각 성월에는 그 성월 기도를 하고, 사순시기에는 매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으며, 전교주일과 11월 달에는 저녁마다 ‘연도’를 바쳤다. “연도가 참 듣기가 좋았어. 지겹지 않았냐고? 당시에 하던 연도는 지금보다 더 느렸지. 그래도 얼마나 듣기가 아름다운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사실 요즘 기도는 너무 빨라.” 당시에는 연도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들이 고유의 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기도문의 구절을 번갈아 노래하는 방법인 계응 양식으로 된 기도문들이 많아 가족이나 단체가 함께 모여 앉아 공동으로 기도를 바치기에도 좋았다. “지금도 사순시기에는 매일 모여서 십자가의 길을 해. 오후 7시에 모여서 묵주기도 바치고, 만과 바치고, 성요셉성월 기도하고, 가정을 위한 기도하고, 복음말씀 읽고,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지” 어렸을 때 기도하기 싫지는 않았냐고 묻자마자 김 회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우리 어렸을 때 기도는 삶 자체였어. 안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할머니가 ‘야, 일어나라’하고 등을 두드리면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함께 기도했어. 늦잠 한 번 잔 적이 없지” 태어난 지 3일이면 공소회장이 세례를 주고,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기도를 하다 보니 기도하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 됐다고 한다. “천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고 기도를 같이 참여했지. 요즘처럼 막 교리를 배우고 기도문을 외우고 그러진 않았어. 그저 교리문답을 외우고 기도를 함께했을 뿐이지.” [가톨릭신문, 2014년 4월 6일,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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