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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성령 강림 월요일도 한때는 큰 기념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4 조회수4,376 추천수0

[세상 속의 교회읽기] 성령 강림 월요일도 한때는 큰 기념일

 

 

하루 중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와 같아지는 날, 그리고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시발점이 되는 날이 춘분이다. 이 춘분이 지나고 처음으로 음력 보름이 지난 후 맞이하는 첫 주님의 날(주일)이 바로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기념하며 장엄하게 지내는 예수 부활 대축일이다. 우리는 신앙의 근거요 단초가 되는 주님의 부활을 잘 맞이하고자 그에 앞서 40일 동안을 철저한 준비 기간으로 삼아 지낸다(사순시기). 그리고 이후 50일 동안은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찬미하는 기간으로 지낸다(부활시기). 이 부활 시기는 성령 강림 대축일로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재의 수요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1년에 90일에 걸쳐 예수님의 부활을 그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보듯이, 성령 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혀 모양의 불꽃으로 내려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이 대축일은 전례력상으로 보면 부활 시기를 마감하는 날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위격 중 셋째 위격이신 성령을 특별히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축일을 교회가 시작된 날, 교회의 탄생일로 이해한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영어로 ‘Whit Sunday’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이름은 이날이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예비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대축일들 중의 하루였고, 이날 세례를 받은 새 영세자들이 흰 옷을 입은 데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하얀 일요일’(white Sunday)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겠다.

 

 

전에는 성령 강림도 8일 축제로 성대하게 지내

 

사실, 교회는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과 성탄을 8일 축제로 성대하게 기념하며 지내듯이 전에는 성령 강림도 8일 축제로 성대하게 지냈다. 그러던 성령 강림 대축일이 교회의 전례 개혁 이후에 8일 축제로 지내지 않는 축일이 되었고, 의미상 부활시기를 마감하는 날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더는 8일 축제로 지내는 대축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성령 강림 대축일의 각별함과 성대함 때문인지 8일 축제로 지내던 지난날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여러 나라들에서(글쓴이가 확인한 바로는 유럽을 중심으로 25개 이상의 나라들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날을 최근까지 공휴일로 지냈거나 현재도 그렇게 지내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이날 관공서, 금융기관, 대부분의 기업체들, 학교들이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일부 국가들은 이날을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지내거나 다른 공휴일로 대체하여 지낸다.

 

이 날을 ‘성령 강림 월요일’(With Monday)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이제 교회의 전례력상 연중 시기의 한 월요일일 뿐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날을 의무 축일로 지내는 곳이 있고(독일) 비록 의무 축일이 아니더라도 성령께 봉헌하는 미사를 드리는 관습이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성령 강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내는 나라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프랑스에서는 본래 성령 강림 8일 축제 기간이 모두 휴일이었으나 1789년의 프랑스 혁명 이후로 월요일만 휴일로 남았다. 그런데 2003년에 이상 고온 현상으로 1만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는데, 이 사태를 계기로 노인 복지를 위한 기금을 증액하기 위한 방책을 고심하게 되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2004년에 국민(근로자)에게 성령 강림 월요일에 일을 하고 그날 하루치의 임금을 노인 복지를 위한 재원으로 기부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상당수의 근로자들은 2005년 성령 강림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정부의 결정에 저항하였다.

 

그리하여 2008년에 이날은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그 대신에 이 아이디어는 근로자들이 개인적으로 ‘연대의 날’을 시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프랑스의 근로자들은 휴일이나 휴가 중 하루 또는 1년 동안에 7시간을 여러 번으로 나누어서 포기하고 일함으로써 이 행사에 참여한다.

 

이날 관공서, 은행, 학교 그리고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지만, 박물관들이나 미술관들은 문을 연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포도주 시음장들도 대부분 문을 연다. 또한 대중이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는 도시나 시골 마을의 빵집들도 문을 연다.

 

성령 강림 월요일은 날씨가 차츰 따뜻해지는 계절의 하루인 만큼 나들이하기에 좋은 휴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이날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모여서 쉬거나 여행을 하고,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운동경기나 문화 행사들에 참가한다.

 

 

25개 이상 국가에서 성령 강림 월요일을 휴일로

 

독일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풍습으로 성령 강림 월요일을 지낸다. 독일 사람들은 성령 강림 대축일과 월요일 사이의 밤을 ‘불안한 밤’이라고 여긴다. 예전에는 이날 밤에 악령들이 돌아다니다가 문이 잠겨 있지 않은 집이 있으면 그 집의 재물을 털어 간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는 일부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악령의 역할을 대신하여 작은 농기구들이나 정원의 벤치들을 다른 집에다 옮겨 놓는다. 젊은 남자들은 또한 자기기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사는 집의 벽에 자작나무 가지들을 꽂아 놓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령 강림을 경축하는 행사를 월요일을 넘겨서까지 거행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성령 강림 후 화요일을 ‘숲의 날’이라 하며(프랑크푸르트암아인), 이날 마을 외곽에 위치한 공원이나 근교의 숲에서 규모가 제법 큰 파티 혹은 잔치를 연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역사를 주제로 하는 야외 연극을 공연한다(다이데스하임).

 

또 다른 지역에서는 성령 강림 후 수요일을 ‘마늘의 수요일’이라 하며(작센안할트 주와 작센 주 사이의 접경 지역), 이날 전통적으로 접시에 마늘을 수북하게 담아 놓고 먹었다. 마늘을 먹는 축제는 1870년을 전후로 해서 사라졌지만, 마늘을 먹는 풍습만큼은 최근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성령 강림 월요일에는 우체국, 은행, 상점, 회사들이 문을 닫는다. 그렇지만 여행자들을 위한 상점들, 기차 정거장, 공항, 고속도로의 매점들은 문을 연다. 주류 판매, 공공 행사와 무도회는 일부 제한을 받지만, 공공 교통수단들은 평소처럼 운행한다.

 

아일랜드에서는 1973년까지 성령 강림 월요일이 은행 등 금융기관도 문을 닫는 공휴일이었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1967년까지는 이날이 은행의 휴무일이었는데, 1971년부터 이날 대신에 매년 5월 마지막 월요일을 봄철 은행 휴무일로 대체해서 실시해 왔다. 그리고 과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여러 나라들, 특히 태평양 지역의 나라들도 이날을 공휴일로 지냈다.

 

영연방에 속하는 몇몇 나라들에서는 오늘날에도 공휴일로 지낸다. 스웨덴에서는 2004년까지 이날이 공휴일이었으나 2005년에 쉬지는 않는 국경일로 대체되었다.

 

사람들은 성령의 날을 이리저리 정하고 변경하겠지만, 그럼에도 성령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그느르시며 은사를 내리시고 열매를 맺어 주실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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