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4년 10월7일 로사리오성월 /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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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경주 | 작성일2014-10-06 | 조회수8,885 | 추천수1 | |
루르드_동굴성당 중앙제대 / 성모자상, 묵주와 염주 그리고 기억 ☞ - 주님 현존 느끼며 성모님과 ‘구원’ 묵상
☞ - 묵주기도는 성경 묵상의 가장 탁월한 도구 ☞ - 복음 요약한 각 신비들을 기억하며 바쳐야 발행일 : 2011-10-09 [제2765호, 8면]
매괴의 성모 마더데레사의 기도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는 현재 사용되는 묵주(默珠)를 염주(念珠)라고 불렀다. 중국 천주교회에서 전해진 「성모성월(聖母聖月」이란 책에는 ‘성모염주(聖母念珠)’라는 말이 나온다. 즉 성모염주는 바로 묵주(默珠)를 이르는 말이다. 이는 유럽의 로사리오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인데 불교의 기도 도구인 염주(念珠)를 그대로 적용하다가 묵주라는 말로 고쳐 부른다. 지금도 로사리오의 공식 한국말 번역은 묵주다. 묵주의 뜻을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불교의 염주(念珠)의 의미와 비교해 본다. ‘염(念)’ 자를 풀이하면 이제 금(今)자와 마음 심(心)의 결합 즉, 지금 마음이라는 뜻이다. 지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마음이 ‘염(念)’ 자이다. 불교는 윤회설(輪回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그리고 전생(前生)에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행업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현재를 성찰하고 선업(善業)을 실천하는 것이다. 반면 묵(默)이란 글자는 선비가 글을 쓰기 위해 먹(墨)을 갈면서 개(犬)를 바라보는 형상이다. 개는 인간과 달리 현재의 것만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한 성찰이 불가능하다. 반면 글을 아는 선비는 글을 통해 과거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현재를 기록하는 역사적 활동을 하며 미래를 희망하고 예측한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기억하고 판단하고 희망하는 능력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유일한 능력임을 드러내는 단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묵주 기도―전례 예식의 기도일까?사실 묵주 기도가 여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신앙심’에 적합한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개신교도들은 종종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숭배의 비중이 너무나도 큰 것이 아니냐며 비판을 가하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구슬 꾸러미를 잡고 동일한 문구의 단조로운 기도문을 되풀이하는 행위를 힘들어한다. 정보와 행동 양식이 시시각각 새로워지는 시대에, 불교․힌두교․이슬람교 등과 같은 다른 고등 종교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활성화되고 있는, 그런 기도문의 나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인다. 기도문을 되뇌는 것은 내적인 안정과 평정을 촉진시켜 준다. 대개 민중 신앙이 그러하듯 묵주 기도도 전례적인 원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중세 초기의 수사들은 자주 150편의 시편을 기도했다. 교육이 부족한 사람들과 문맹자들은 시간전례 대신에 그리스도교의 기본 기도문인 ‘주님의 기도’를 기도했다. 따라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매 기도 시간에 대체 방식으로 수를 세는 사슬, 즉 묵주를 손에 들고 일정한 횟수의 주님의 기도를, 예를 들면 시간전례의 찬미가(讚課) 대신에 5번의 주님의 기도를 기도하도록 지시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번성하는 가운데 일찌감치 성모송도 삽입되어서 150편의 시편 대신에 150번의 성모송(“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이 삽입되었다. 이러한 성모 마리아 신앙으로의 전환은 근본적으로 성경을 바탕으로 한 기도 행위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왜냐하면 성모송의 핵심은 가브리엘 천사의 경의의 말씀(루카 1,28)과 주님의 어머니와 ‘그녀의 태중의 축복받은 결실’인 그녀의 아이에 대한 엘리사벳의 축사(루카 1,42)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은 마리아에 대한 기도였다. 왜냐하면 경의를 받는 여성은 정신적으로 장미의 화환으로 장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 칭송은 주님의 어머니에게 머물러 있지 않고, 그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그분에 대한 칭송으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다시 말해서 그 정점은 그리스도 찬미인 것이다. 이것은 후대의 발전 단계에서 성모송이 예수님이 삶의 입장에서 보는 관찰 시점과 연결될 때 훨씬 더 명백해진다. “이 두 근본 요소들의 결합은 비로소 묵주 기도가 그 본질에 따라 완성되고자 하는 것, 장미의 화환을 완성하였다. ‘예수의 삶의 전형과 성경이 말해 주는 그 여성(루카 2,19)과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성찰―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Andreas Heinz) 오늘날 우리는 묵주 기도가 예수님을 위한 기도로서 계획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13세기에 “또한 당신의 태중의 아드님은 축복받습니다.”라는 말씀에다가,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찬미 받으시는가 하는 이유가 명백해지는 짧은 문구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그 문구들은 “아버지께로 들어올려지신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나타나시기 때문에” 또는 “그분은 아버지의 의지에다 당신 자신의 의지를 예속시키셨기 때문에” 혹은 “그분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남겨 주셨기 때문에” 등이다. 묵주 기도는 하느님의 구원에 감사하는 기억을 끊임없이 생생하게 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 신앙의 이러한 형태가 신앙사의 모든 고락을 거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만으로, 묵주 기도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적합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는 부족하다. 묵주 기도의 형태를 유지하려면, 훨씬 더 강력하게 복음으로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 통용되는 15단 기도(매 단마다 주님의 기도 1번, 성모송 10번, 영광송 1번)의 형태는 충분하지 못하고,중세의 방식들보다 본질적으로 빈약하다. 묵주 기도가 여태까지 그래왔듯 단지 청원 기도로 이해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원천과 내적인 본질에 따라 되고자 하는 것, 그 이상으로 이해되는 일이 필수적이다. 즉 찬미의 기도로 반드시 이해되어야 한다. 마리아의 아드님은 축복받으시고, 그분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신앙고백)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찬미 받으신다. 따라서 묵주 기도는 확실히 그리스도 찬미와 마리아 찬미의 보증된 형식이며, 도시 민중 신앙에 가까운 형태이다. 이 형식은 상응해서 구성되는 말씀의 전례의 틀 안에서 볼 때 철두철미하게 교구 공동체의 전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례안의 마리아1마리아는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신 깨어있는 동정녀이시다. 마리아의 신앙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전제 조건이요 길이었다. 왜냐하면 성 아우구스티노가 깨달았듯이 “복되신 마리아는 믿음으로 잉태하신 분(예수)을 믿음으로 낳으셨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의문에 대한 천사의 답변을 들으신(루가 1,34-37 참조) 마리아께서는 충만한 믿음으로 예수를 태중에 잉태하기에 앞서 그 마음에 품으셨다. 그녀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고 대답하셨다. ” 믿음은 마리아의 복됨과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의 원천이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 1,45).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구세주 강생의 주역을 담당하게 되셨고, 그 유일한 증인이 되셨으며, 그리스도의 유년기 사건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셨다(루가 2,19.51 참조). 교회 역시 이와 비슷하게 행동하는데 특히 전례에 있어서 그러하다. 교회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이를 선포하고 존중할 뿐 아니라, 생명의 음식으로 신자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이 말씀에 비추어 시대의 표징을 찾아내며 역사상의 사건들을 해석하여 생활화하는 것이다(17항). 마리아는 또한 기도하는 동정녀이시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를 방문하셨을 때, 마리아께서는 기도하는 동정녀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겸손과 믿음과 희망을 보이셨다. 이것이 저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로서, 옛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의 기쁨이 어우러진 메시아시대의 노래, 성모의 노래(루가 1,46-55)인 것이다. 성 이레네오가 제시하였듯이, 이 마리아의 찬가에서 메시아를 미리 보고 기뻐한 아브라함의 환희(요한 8,56 참조)를 다시 한 번 듣게 되며, 다음과 같은 교회의 예언적인 음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마리아는 기쁨으로 설레면서 교회를 대신하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라고 예언하셨다.” 실제로, 마리아의 찬가는 널리 퍼져나가서 시대를 불문하고 온 교회의 기도가 되었다(18항). 마리아는 가나에서도 기도하는 동정녀로 나타나신다. 현실적인 도움을 조심스럽게 아드님에게 요청하셨을 때, 마리아께서는 초자연적 은총의 효과까지도 얻으셨다.예수께서는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도록 하신 것이다(요한 2,1-12 참조).(18항) 마리아의 생애에 관한 마지막 묘사 역시 마리아를 기도하는 동정녀로 나타내고 있다. 제자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사도 1,14)고 사도행전은 전하고 있다. 마리아는 초대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세기를 통하여 기도하는 동정녀로 계속 현존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마리아께서는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후에도 당신의 전구로써 구원을 얻어주시는 일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18항)
바로가기/ 전례안의 마리아2: http://liturgia.kr/?p=1542 바로가기/ 전례안의 마리아3: http://liturgia.kr/?p=1584 바로가기/ 전례안의 마리아4: http://liturgia.kr/?p=13765 바로가기/ 전례안의 마리아5 <부록> : http://liturgia.kr/?p=13803
묵주기도의 영성
묵주기도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묵주기도는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만약 묵주기도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라면, 왜 성모님 상(像) 중에 묵주를들고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는 성모님 상이 있겠는가? 묵주기도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라면 성모님이 묵주를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가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성모님께 바친다는 이야기는 맞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깊숙이 묵상에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예수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마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묵주기도는 오히려 성모님을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성모님의 중심은 예수였고 성모님의 모든 것이 예수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묵주기도의 모든 묵상은 예수님을 향해야 한다.
'각 단의 신비 묵상이 기도의 핵심' 묵상중엔 자신의 지향 생각하지 말아야 매일 정성껏 봉헌하면 관상의 경지 도달 묵주기도는 복음전체의 요약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 전체를 드러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로부터 시작해 탄생, 유년시절,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거쳐 성령강림, 성모승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비가 복음서에 기록돼 있다. 그래서 묵주기도를 할때는 복음의 마음으로 외워야한다. 묵주기도는 구도(口禱)와 염도(念禱)가 가장 아름답게 조화된 기도라고 한다. 구도란 일정한 문장으로 정해진 기도문이고, 염도란 일정한 문장으로 정해지지 않은 내심의 기도를 말한다. 즉, 성모송과 주님의 기도, 영광송 등의 기도문을 외우면서, 침묵 가운데 주님의 구원신비를 묵상하는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할때는 각 단의 신비 내용을 진심으로 묵상해야 한다.
묵상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부활 등 구원사를 요약한 환희·고통·영광의 신비와 공생활 주요 부분에 초점을 맞춘 빛의 신비로 이뤄져있다. 빛의 신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2년 10월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발표, 기존 세가지 신비에 추가하고 목요일에 묵상하도록 권장한 바 있다. 묵주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따르기 위한 것이지만, 각 신비를 완전히 알지 못하거나 각자의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를 잘못 바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환희의 신비 제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라고 말하면서 신비의 내용은 전혀 묵상하지 않고, 입으로만 성모송을 암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반적인 생각이나 묵상으로 바치거나, 아무런 생각이나 묵상도 하지 않고 외워버리는 것은 올바른 기도방법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세운 지향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바치기도 하는데, 지향은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세우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묵상 중에 생각한다면 일종의 분심일 뿐이다. 또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모든 기도가 그렇듯 묵주기도를 바칠때도 분심이 많이 생긴다. 이럴 경우 다시 처음부터 기도를 시작하든 그렇지 않든 개인적 신심에 따라 택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묵주기도는 가장 보편적인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영광송을 외워가면서 잡념을 없애고 기도에 집중하도록 하며, 하느님의 신비를 관상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도 한다. 묵주기도의 관상은 각 단의 신비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핵심을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서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교리와 기도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더라도 매일 정성껏 묵상한다면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신비를 담고 있는 기도, 쉽게 바칠 수 있으면서 구원신비 전체를 담고 있는 기도,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면서도 바칠 수 있으며 깊은 묵상과 관상까지 이르게 하는 기도. 이러한 묵주기도를 얼마나 깊이 묵상할 수 있는가는 자신의 생활을 기도화하고, 얼마나 정성껏 바치느냐에 달려 있다. 일상에서 꾸준히 묵주기도를 묵상해나갈 때, 깊은 영성에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레판도 해전, 터키군이 로마를 점령, 가톨릭을 말살시키려, 대 함대로 공격, 적군의 반도 안되는 함대, 병력으로 대항, 교황이 묵주기를 명, 적의 함대에 포위, 절망상태에서 전황이 기적적으로 바끼며 격퇴시키고 말았다. 묵주기도가 대승리를 온 유럽의 신앙을 구해준 것이다. 그후 성모호칭기도에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기도문이 삽입, 10월7일을 축일로 정함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과 묵주기도 "하느님의 어머니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펼치십시오!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교회의 수백 년 신앙 가운데 비오 신부보다 더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친 사람이 보았다는 것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비오 신부는 마리아 공경을 위해 묵주기도를 셀 수 없이 많이 바쳤다.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성모송에 집중해야 할지, 신비 묵상에 집중해야 할지를 물으면 비오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모송, 다시 말해 동정녀를 향한 인사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비 묵상에 침잠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기도를 바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존하시고, 사랑과 고통으로써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경건한 카푸친회의 신부였던 비오 신부는 평생 이 마리아의 그리스도론에 인도 되었다. 비오 신부는 탄생하시고,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하시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죽음의 고통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성령을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마리아 안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비오 신부에게 묵주기도는 언제나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걷는 길이었다.
즉 마리아는 극악무도한 원수와 경계도 없는 전장에서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비오 신부에게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무기"를 준 것이었다. 비오 신부는 묵주기도를 통해 마리아를 공경했을 뿐만 아니라 마리아께서 그토록 좋아하시는 묵주기도의 사도였다. 비오 신부는 사제직을 수행하는 동안 성모님의 묵주기도를 전파하기 위해 힘썼다.
비오 신부는 묵주기도에 바쳐진 자신의 일생을 마치면서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유산으로 남겼다.
이것이 경건한 카푸친회 신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이 성모님의 천사는 손에 묵주를 쥐고 숨을 거두었다. 가톨릭신문 / 박경희기자
묵주기도 묵주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하며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감사드리고 우리도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비는 기도로서 우리를 예수님과 일치시켜주는 좋은 기도입니다.
묵주기도 방법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자료 : 전례학회 / 굿뉴스 / 성바오로 딸 수도원 편집 : 불광동성당미디어팀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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