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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를 살다: 영성체와 감사 예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9 조회수6,273 추천수0

[전례를 살다] 영성체와 감사 예식

 

 

이번 호에서는 영성체의 지침과 규정,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봅니다. 영성체 준비 예식이 끝나면 먼저 사제부터 성체와 성혈을 영합니다. 이어 신자들의 영성체가 시작되는데 이때 사제는 신자들에게 가서 매번 성체를 조금 들어 보이며 “그리스도의 몸”하면 신자들은 “아멘.”하고 응답하면서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이 ‘아멘’은 주님과의 만남을 의식적으로 또 믿음으로 ‘네’ 하고 받아들이는 자신의 신앙고백입니다. “네, 이 작은 빵이 주님의 거룩한 몸이자 주님이심을 믿고 받아 모십니다.”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영성체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일치와 결속을 한층 더 깊게 합니다. 왜냐하면 영성체는 공동의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멘’을 중얼거리듯이 말하지 말고 또렷하고 크게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성체를 모시기 위하여 침묵 중에 주님의 식탁에로 나아가지 않고 노래를 부르면서 나아갑니다. 영성체 행렬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 위한 단순한 줄서기가 아니라 주님 만찬석상에 동참하고 주님의 부활잔치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즐겁게 같이 노래하고 함께 행동하기를 요구합니다. 성찬례의 정점은 영성체를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이룹니다. 이에 어울리는 것은 침묵이 아닌 환호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합니다. 주님의 식탁에로 나아가는 우리들은 그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공동행위에서 우리들은 선물을 받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모두 함께 노래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공동의 찬미이고, 신앙일치의 증거입니다. 영성체는 개인적인 신심의 장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맞이하거나 또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것만은 아니기에 모두 같이 노래하지 않으면 일치의 의식, 나눔의 의식에 참가하는 것이 못 됩니다. 실제로 영성체 노래는 미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미 초세기에 영성체 행렬 동안 성가대에서 노래 한 구절을 부르면 공동체는 이에 응송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미사경본의 영성체송을 신자들이 낭송하게 합니다.

 

 

영성체 방법, 횟수, 공심재

 

교회는 신자들이 그날 미사에서 축성되었던 성체를 모시게 하는 점을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전례헌장(55항)의 정신에 따라 제정된 미사경본 총지침(85항)은 “사제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자들도 바로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로 주님의 몸을 모시고, 미리 허용된 경우에는 성작에서 성혈을 모시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지시합니다. 축성된 성체를 감실 안에 보관하는 것은 원래 중환자에게 항시 노자성체(viaticum)를 수여 할 수 있는 데에만 그 의미를 가졌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교회의 이 같은 공식적인 가르침과 권고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많은 본당에서 무시되고 더 나아가서 비축용으로 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이하고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 손 영성체 또는 입 영성체 : 신자 영성체의 본 형태는 처음부터 손 영성체였습니다. 9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하느님 선물로서의 성체를 신자들의 손바닥에 놓아 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 주님의 몸에 대한 깊은 공경을 말해주는 아름다운 글귀가 기록된 문헌을 소개합니다. 4세기 말경 예루살렘의 주교 시릴로의 「신비 교리」의 내용 일부입니다. : “이제 당신이 나아가면 왕을 모셔야 하는 오른손을 위해 왼손을 어좌로 만드십시오. …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집어서 받으십시오. 덧붙여 아멘이라고 말하십시오. 그런 다음 조심스레 거룩한 몸을 접촉함으로써 당신의 눈을 거룩하게 하여 이를 영하십시오. 그러나 그 몸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V, 21) 성체께 대한 점점 더 커져가는 경외심과 거룩한 두려움은 마침내 9세기에 와서 성체를 입으로 영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신자들이 성체를 손으로 받은 다음 즉시 영하지 않고 집으로 모셔가서 미신 행위 등 부당한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중세기에 성체께 대한 외경심이 강조되면서 거룩한 성체를 부당한 손으로 영할 수 없다고 생각한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나라에서는 다시금 손으로 받아 모시는 영성체를 허락하도록 요청하여 마침내 경신성성은 1969년 “주님의 기억(Memoriale Domini)”이라는 훈령을 통하여 영성체 방법을 그 나라 주교회의의 재량에 맡겼습니다. 사도좌로부터 확인을 거친 후 손으로 하는 영성체는 입으로 하는 영성체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양식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땅한 경외심이 두 가지 영성체 방법에 자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지난 세기에 크게 자리했던 두려움과 과도한 죄의식 및 부당함을 강조한 의식들은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경외심이 없는 태도 또한 올바르지 못합니다. 영성체하는 사람의 태도와 몸짓은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 영성체 횟수 : 매일 미사가 없던 초세기에는 영성체 횟수에 대한 규정이 없었고, 일부 신자들이 성체를 집에 모셔가 다른 날에도 영했기 때문에 미사 횟수보다 영성체 횟수가 오히려 많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단의 등장으로 영성체 횟수가 급격히 줄어 들었고 나중에는 거의 성체를 영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적어도 1년에 한두 번 성체를 영할 것을 규정하였습니다. 20세기에 와서 미사 중의 영성체를 정상화시켰지만 하루에 한 번 이상 영성체를 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오랜 관습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특별 축일이나 성사 미사가 아니더라도 미사에 온전히 참석하기만 하면 하루에 두 번까지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917조)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에 한번 영성체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 양형 영성체 : 양형 영성체란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 때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내주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니 먹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초대 교회는 최후만찬의 의미를 되새기며 처음부터 미사 때에 양형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교우들이 성혈을 흘릴 위험성이 있다는 사목상의 문제와 주님께서 성체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신다는 신학적 근거를 이유로 이 전통이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양형 영성체의 규정을 완화하여 교구장의 판단에 따라 서품미사, 수도자 서원미사, 세례미사 등에서 성사를 받거나 서원을 한 당사자는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참조. 전례헌장 55항) 미사경본 총지침은 이를 더욱 확대시켰습니다.(참조. 283항) 소공동체 미사 등 개개의 경우 주도하는 사제, 또는 본당에서 본당신부는 사목적 판단에 따라 확대하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양형 영성체를 완전히 허용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에만 허락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성혈을 흘릴 위험성이 크며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사목상으로 어려움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교회는 오히려 양형 영성체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 공심재 : 공심재(空心齋)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기 위해 성체를 모시기 일정 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초세기에는 공심재에 대해 정해진 규정이 없었습니다. 새 교회법전(1983년)은 특정한 사람들, 즉 병자, 노약자, 간병인 등에게는 공심재 시간이 영성체 전 15분으로 단축시켰고 중환자의 경우에는 공심재를 면제시켰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공심재 시간 규정이 바뀌어왔지만 공심재의 기본 정신은 변함없습니다. 미사 전 한 시간이냐 또는 성체를 모시기 전 한 시간이냐 하는 시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내 안에 모시기 위해 합당한 준비를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사의 품위를 알고 오시는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도록 일깨우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성체를 모시기 전에 침묵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감사 침묵기도, 영성체 후 기도 : 성체 분배 후 사제는 신자들과 함께 얼마동안 침묵기도를 바치거나 영성체 성가를 하지 않고 알맞은 성가를 노래합니다. 이때의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는 침묵으로 모든 이가 잠깐 영성체 및 미사 전체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 안에 오신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미사 중에 몇 차례의 침묵시간이 있지만 의미로 보아 영성체 후의 침묵시간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침묵을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짧게 하거나 또는 침묵 대신 해설자가 묵상 지도라는 명분 아래 별도의 해설을 하는 것은 미사 전례 중에 가장 중요한 침묵 부분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근자에 성가대에서 특송이라는 이름으로 묵상곡을 노래하는 곳이 많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특송 후 절대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사목자가 그렇게 유도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특송은 받아 모신 성체께 대한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기도의 한 방법이지 공연시간이 아닙니다. 미사 후 또는 공지시간에 이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기 전에 공지사항이나 여타 다른 사목적 행사를 하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성체 후 기도로 성찬 전례를 마감하기 때문입니다. 영성체 후 기도는 방금 영성체를 통해 받은 은혜와 미사 전체에 대한 공적인 감사기도이자 방금 거행한 미사의 신비가 실생활 중에 좋은 열매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은총을 비는 간청기도입니다. 기도로 영성체 예식, 나아가 성찬 전례를 모두 마치게 됩니다.

 

[월간빛, 2014년 10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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