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성찬 전례 - 찬양과 감사 미사는 마지막 만찬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성찬 전례의 구조와 요소들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만찬에서 예수님은 빵을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신” 다음 쪼개어 당신 제자들에게 주셨고,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 마지막 만찬 이야기를 전하면서 “찬양”(우리말 성경에는 찬미)과 “감사”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찬양과 감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싣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들은 구약 성경과 유다교 전통에서 나온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성찬 전례를 잘 이해하려면 구약 성경과 유다교에서 찬양과 감사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보통 찬양은 “베라카”, 감사는 “토다”라고 합니다. 베라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유다교의 핵심적인 기도로서 모든 기도의 유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보통 “찬양받으소서” 또는 “찬양하나이다”(히브리어 “바라크”)로 시작합니다(우리말 성경에서는 “복되[시]어라”로도 옮김). 베라카라는 이름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어서 주 하느님을 부릅니다. 여기에는 “온 세상의 임금님”과 같은 영예와 찬미를 나타내는 칭호를 덧붙입니다. 그 다음 찬양하는 동기, 곧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이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말합니다. 보기를 들어, “땅에서 양식을 나오게 하셨나이다.” 한편, 이 기도에는 찬양이 근본적이지만 후대에는 청원의 요소도 덧붙여졌습니다. 베라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일컫는 말 아브라함의 종이 바친 기도는 베라카의 좋은 보기입니다. 그는 레베카를 만나서 자애와 신의를 베푸시어 주인의 며느리를 찾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양 기도를 바칩니다(창세 24,26-27). 멜키체덱도 아브라함의 승리를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고(창세 14,19-20), 모세의 장인 이트로도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 손에서 구해내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탈출 18,9-12). 예수님도 베라카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보기를 들어, 라자로를 되살리실 때 예수님은 당신 안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심을 깨닫고 찬양 기도를 바치며(요한 11,41-43), 또한 하느님 나라를 전하라고 보냈던 일흔 두 제자가 되돌아왔을 때(루카 10,21) 찬양 기도를 바칩니다. 예수님 시대 베라카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것은 식탁에서 드리는 찬양 또는 감사의 기도 (히브리어 “비르캇 하 마존”)입니다. 식탁 기도이기 때문에 경건한 유다인들은 늘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도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낭송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기도를 발설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셨습니다. 여기서 교회의 감사기도문이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용하셨을 수 있는 “식탁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L. Finkelstein). 찬양받으소서. 주님, 우리 하느님. 세상의 임금님! 당신은 어지심과 호의와 자비를 베푸시어 온 세상을 기르시나이다. 찬양받으소서. 주님, 세상을 기르시는 분! 감사하옵니다. 주님, 우리 하느님! 당신은 바라던 땅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주셨나이다. (그 열매로 우리는 먹고 그 선물로 배부르게 되리이다) 찬양받으소서. 주님, 우리 하느님! 당신은 땅과 음식을 주셨나이다.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우리 하느님!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 당신 도성 예루살렘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거처 시온, 당신의 성전, 당신의 제단, 당신의 성소에. 찬양받으소서. 주님, 예루살렘을 건설하시는 분! 찬양받으소서. 주님, 우리 하느님. 세상의 임금님! 좋으신 분, 은혜를 베푸시는 분! 한편, 베라카는(그리스어 에울로기아, 라틴어 베네딕씨오)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곧, 강복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나 무엇을 위해 하느님께 복 또는 강복을 비는 것이 “축복”입니다(축복 예식). 따라서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의 행위나 기도를 우리말로 “축복”이라고 옮기는 것은 덜 정확하다고 하겠습니다. 성찬 전례는 부분적으로 토다 제사를 대체한 것 “토다”도 성찬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용어입니다. 보통 감사의 뜻으로 이해되는 히브리어 “토다”라는 말은 “야다”(알다, 고백하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알다”는 단순히 머리로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아는 것을 뜻합니다. 토다는 처음에는 그리스어로 “고백”, “찬미”의 뜻으로 옮겼으나 예수님 시대에는 “감사”(에우카리스티아)로도 옮깁니다. 구약에는 여러 토다 기도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보통 먼저 곤경이나 위험을 기억하고 이어서 거기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주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시편 115; 69). 토다 기도는 본디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는 것과(고백) 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인정하는 것(고백, 찬미, 감사)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통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인정하고 깨닫는 마지막 단계, 또는 가장 깊은 단계는 자기 죄가 아니라 오히려 주님의 사랑, 주님 자신입니다. 마찬가지로 미사에서는 우리가 받은 한두 가지 선물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또한 감사의 기도를 바치며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억하고, 마침내 자신을 벗어나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찬양이며 고백입니다. 여기에 미사의 참된 관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하느님을 뵙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을 경축합니다. 토다는 제사 맥락에서 더욱 특별한 뜻을 갖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감사 제사” 또는 “찬미 제사”를 히브리어로는 “제바 토다” 또는 간단히 “토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제사(제바)는 식사가 뒤따르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이 감사제사에서 곡식 제물(빵과 포도주)의 한 몫을 번제 제단에서 태워 하느님께 봉헌하고, 한 몫은 사제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몫은 봉헌한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어, “거룩해진” 제물을 가족이나 친지와 함께, 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 성전 빈터에서 먹게 하였습니다. 이 식사는 주 하느님 앞에서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제들은 감사 시편을 노래하였습니다. 제물을 봉헌한 이들은 되돌려 받은 제물을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먹으며 하느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되돌려주신, “거룩한” 제물을 먹는 것과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것은 이 제사의 특징입니다. 또한 이 제사는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사람들이 이루는 친교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성찬 전례는 부분적으로 바로 토다 제사를 대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회중은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십니다. 그것은 강생하신 아드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 구원을 위하여” 제물로 바친 것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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