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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호된 검은 단식 그리고 그 뒤에 맛보는 즐거움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9 조회수6,296 추천수0

[세상 속 교회읽기] 호된 검은 단식 그리고 그 뒤에 맛보는 즐거움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살아가면서 지은 죄들과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뉘우치고 보속하는 뜻으로 날들과 행위들을 정해 이행하도록 가르친다. 그리하여 우리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기에 앞서 사순시기를 지낼 때는 교회나 신자 모두 회개하고 속죄하려는 의지와 각오가 사뭇 남달라진다. 그러면서도 어찌어찌 살다 보면 우리는 교회가 정한 날에 정한 행위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게도 된다. 그러한 현실에서 예전 신앙인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자못 숙연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사순시기를 잘 보내는 데 적합한 행위로 권장되는 것 중의 하나는 단식과 금육이다. 일상적인 식사 중 한 끼를 거르고 좋아하는 음식을 절제하는 데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통해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통에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단식재와 금육재 규정을 통하여 신자들이 사순시기에 두 번 단식을 하고 연중 금요일마다 육류를 먹지 말도록 가르친다. 그렇다면 예전의 신앙 선배들도 오늘의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금육재와 단식재를 이행했을까? 

 

예전에는 ‘검은 단식(black fast)’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엄격한 단식과 금육의 형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식사는 하루에 한 끼만 허용되었다. 그나마도 육류, 계란, 버터, 치즈, 우유는 먹을 수 없었다. 음주도 엄격히 제한되었다. 특히 성주간 동안의 식사는 빵, 소금, 채소, 물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 알량한 식사마저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는 허용되지 않았다. 

 

검은 단식의 역사는 성 암브로시오, 성 크리소스토모, 성 바실리오가 활동하던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한참 만에 한 끼 식사를 하는 시간이 바뀌었다. 10세기부터 오후 3시에 먹기 시작했고, 14세기에는 낮 12시로 바뀌었다. 또한 식사 시간이 12시로 바뀐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저녁에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19세기 초에는 아침에도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아침에 딱딱한 빵 껍데기와 커피를 마시는 관습이 생겼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는 단식의 혹독함이 완화되었다. 

 

 

부활의 기쁨을 입으로 몸으로 느껴 

 

어쨌든 사순시기가 지나면 부활 대축일이다. 부활 대축일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없이 기쁘고 좋은 날이다. 혹독한 사순시기의 끝에 맞이하는 부활 대축일이니 더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그 힘들고 긴 시기를 지내면서 특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실한 식사를 감내해야 했기에, 주님 부활의 기쁨을 무엇보다도 입으로 몸으로 느끼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도 신앙인이기에 여러 음식이며 사물에서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상징적 의미와 연관성을 읽어냈다. 

 

달걀과 병아리 : 대표적인 예로, 그리스도인들은 달걀과 달걀 속에 있다가 껍질을 깨고 태어나는 병아리에서 되살아남 또는 새로운 생명이란 의미를 읽었다. 물론 달걀의 그렇듯 심오한 의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일찍이 다산(번식)과 새로운 생명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40일, 그 긴 시간 동안 입에 댈 수 없었던 달걀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에서는 부활절에 달걀 찾기 게임을 한다. 달걀을 집이나 정원 여기저기에 숨겨 놓고 아이들을 시켜 그것들을 찾게 하는 것이다. 이때는 이따금 아이들에게 그 달걀들을 숨겨 놓은 것은 부활절 토끼 혹은 산토끼라는 말을 들려주어야 제격이다. 

 

또한 부활절 월요일에는 곳곳에서 달걀 굴리기 시합을 벌인다. 언덕과 같이 비탈진 곳에서 아래로 달걀을 굴리는데 깨뜨리지 않은 채로 가장 먼저 도달시킨 사람이 이기는 시합이다. 그리고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시리아 등지에서는 달걀 두드리기 게임을 한다. 이것은 각자 삶은 달걀을 지니고 자신의 것은 깨지지 않도록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의 것을 깨뜨리는 게임이다. 모든 달걀을 깨뜨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승리자가 된다. 

 

전에는 나무로 달걀 모양을 깎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그 대신 초콜릿 달걀을 만드는데, 당연히 초콜릿 달걀이 훨씬 먹기 좋다. 

 

새끼 토끼와 새끼 양 : 동물들의 새끼들은 대부분 봄에 태어나며, 그러기에 새끼 토끼들과 새끼 양들도 부활절과 친숙한 동물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집토끼나 산토끼를 행운과 새로운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는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의미들 중에서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시어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되신 예수님과 연관 지어 새로운 생명이란 의미를 받아들였다. 새끼 양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유다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죄와 잘못을 기워 갚는 희생 제물로 새끼 양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돌아가시고 희생당하셨다고 믿으며, 그래서 부활절의 주요 음식으로 새끼 양을 요리해서 먹는 곳이 많다. 

 

부활절의 꽃들 : 많은 꽃들이 봄 또는 부활 축제와 관련되는데, 그중에 몇몇 꽃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절을 경축하는 꽃으로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정결과 선함의 상징인 백합(부활절 백합)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죄와 흠이 없으셨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시계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영어로 수난의 꽃(Passion flower)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상기시킨다. 이 꽃의 수술이 세 개인데, 이는 예수님의 손과 발을 꿰뚫은 세 개의 못 또는 세 개의 십자가 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나타낸다. 둥근 모양으로 피는 작은 꽃잎들은 예수님이 쓰셨던 가시관을, 열 개의 큰 꽃잎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배신하지 않은 열 명의 제자들을 나타낸다. 또한 이 꽃나무의 이파리들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꿰찌른 창을 가리킨다. 그리고 시계꽃은 대체로 3일 동안 피어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무덤에서 보내신 사흘을 가리킨다. 

 

부활절 음식 : 영국에서는 성금요일에 부풀린 반죽에 건포도 등을 넣어 둥글게 빚고 위에 십자 모양의 장식을 얹어 만든 빵인 핫크로스번즈(Hot Cross Buns)를 먹는다. 비그리스도인들은 이 빵의 둥근 모양에서 달을 보고 십자 모양으로 나뉜 네 부분에서 사계절을 보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달콤한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십자가 모양의 장식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십자가를 나타낸다고 그 의미를 살짝 바꿔서 받아들였다. 

 

또한 사순 제4주일에는 과일을 많이 넣어 만들고 그 위에 아몬드 가루와 설탕 가루를 섞어 끈적끈적하게 만든 마지팬을 한 켜 얹은 심넬 케이크(Simnel Cake)를 먹는다. 이 케이크의 마지팬 켜의 둘레에는 작은 마지팬 덩이 11개를 올려놓는데, 이는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 11명을 나타낸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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