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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의 숲: 신자들의 예물 봉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11 조회수6,559 추천수0

[전례의 숲] 신자들의 예물 봉헌

 

 

예물 준비 예식에서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바칩니다. 이 빵과 포도주는 감사기도에서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영성체 예식에서 신자들은 주님의 몸과 피로 바뀐 그 빵과 포도주를 받아 모실 것입니다. 

 

신자들은 미사에 필요한 빵과 포도주 외에도 가난한 사람과 교회를 위하여 금전이나 다른 예물들도 바칠 수 있습니다(미사경본 총지침 73, 140). 빵과 포도주는 제대 위에 펼쳐놓고, 집에서 가져왔거나 성당에서 모은 다른 예물들은 제대가 아닌 다른 알맞은 곳에 놓아야 합니다. 

 

초 세기부터 9세기까지는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와 다른 예물을 봉헌하였습니다. 신자들이 가져온 빵과 포도주 가운데 골라서 미사 때 쓰고 나머지는 다른 때,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과 가난한 이들에게 봉헌하는 것은 하나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는 “과부와 고아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제대와 같다”라는 격언이 생겨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미사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나눔 사이에 있는 본질적 관계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미사, 특히 성체는,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사랑의 양식”(nutrimentum caritatis)입니다(연중 22주일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 

 

이러한 전통은 멀리 구약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첫 수확물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땅의 소출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했습니다(신명 26, 1-11). 이렇게 봉헌 예식으로 땅 위에서 나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달았으며, 나아가 약속한 땅을 자기들에게 주신 주님의 활동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이방인, 곧 가난한 사람들과 재물을 나누어야 할 의무를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예식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라는 사실을 가리켰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로 보시고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마르 12, 33)고 가르치십니다. 유다교에서도 안식일 전날 저녁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식탁을 마련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2세기 중반 순교자 유스티노는 교회 안에 있는 이러한 관습을 증언합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원하면 자기가 알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바칩니다. 이 예물은 모아서 주례자에게 맡깁니다. 그는 이것으로 고아와 과부들, 질병과 어떤 이유로든 궁핍한 이들, 또는 감옥에 갇힌 이들과 여행하는 이들을 도와줍니다. 한마디로 주례자는 어려운 모든 이들을 돌보아줍니다.” 6~7세기 지방 공의회들에서 사용했던 “가난한 이들의 살해자”(necator pauperum)라는 표현의 기원도 이러한 의무를 외면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주교나 사제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3세기 초 “사도전승”은 구체적으로 첫 수확물, 기름, 치즈, 올리브, 과일, 그리고 장미와 백합 같은 꽃을 봉헌하는 관습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물들은 미사 안이나 밖에서 축복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기름은 축성하여 성유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예물들은 교회의 필요를 위해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11세기부터 자연에서 거둔 예물이 돈으로 대체되기 시작 

 

그런데 빵과 포도주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다른 예물들은 신중하게 봉헌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습니다. 그래서 4세기 말 “사도헌장”이라는 문헌에는 예물의 종류를 엄격하게 규정합니다. 

 

“제대에 아무것이나 가져와서는 안 된다. 다만, 마땅한 때, 햇곡식, 포도, 거룩한 등불을 밝히는데 필요한 기름, 거룩한 봉헌 때 쓸 향은 예외이다. 주교와 사제들을 위하여 가져오는 수확한 소출은 모두 제대가 아니라 그 집으로 가져가야 한다.” 

 

비슷한 시기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빵과 포도주로 제한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를 위하여 빵과 물 섞은 포도주 밖에 다른 것은 봉헌할 수 없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는 있었습니다. 

 

11세기부터는 여러 예물들 가운데 돈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에서 거둔 예물이 돈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오늘날 헌금은 이 관습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곧, 빵과 포도주를 바칠 필요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미사를 위하여 보통 빵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만든 누룩 안 든 빵을 사용한 사실, 신자들의 영성체를 위해 적당하게 만든 소제병을 사용한 관습, 그리고 신자들이 영성체를 드물게 한 상황이 있습니다. 

 

또한 미사의 효과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는 신학, 미사 효과를 예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신학도 자연 예물 대신 돈을 봉헌하는 관습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 신자들이 예물 봉헌을 하지 않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신자들의 봉헌 행렬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라진 고대 전통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을 통하여 복구되었습니다. 

 

 

미사는 결코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길 수 없어 

 

미사 안에는 사랑의 나눔이 유전자처럼 들어 있습니다. 미사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특히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지상의 양식을 나누는 것을 포함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주님의 식탁에서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하고, 부자가 가진 것 없는 이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1코린 11, 21-22)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주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루는 친교는 실제로 형제자매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서 살아 숨을 쉽니다. 미사에 예물 봉헌이 있는 까닭입니다. 특히 미사 제정을 기념하는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물 행렬이 있습니다. 이때 부르는 성가에서 사랑(caritas)은 사랑의 실천, 특히 가난한 사람과 나눈다는 뜻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조한 전례의 변함없는 가치, “고상한 단순성”이라는 표현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보셀리). 전례의 단순함으로 교회가 주님께 바치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예물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예식의 단순한 요소들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고귀한 단순성은 예식에서 가난한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아름다움은 예식에서 사용하는 사물, 동작, 말, 그림이나 조각, 악기 연주, 성가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장엄하고 화려한 것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은 세속 풍조가 추구합니다. 예술적 차원은 젖혀두고서도 이러한 풍조에는 가난한 이들을 따돌리거나 멀리할 위험이 있습니다. 

 

미사는 결코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전례는 세속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모방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반영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예수님의 얼굴로서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단순함이 예식의 어떤 요소를 무시하거나 소홀이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5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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