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 숲] 감사송 감사기도를 시작하면서, 시작 대화 뒤부터 “거룩하시도다” 전까지 바치는 장엄한 기도를 지금 우리말 미사경본에서는 “감사송”이라고 부릅니다. 중요한 이 기도문의 내용과 특징을 반영한 알맞은 이름입니다. 감사기도의 내용을 감사의 이름으로 종합하고 요약하여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의 주제를 미리 알려주는 전주에 비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감사기도는 근본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주제는 다른 곳보다 감사송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곧 감사의 목록을 열거하면서 그 동기들을 풀이합니다. 그러므로 감사송은 감사기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고대에서는 이 기도문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중세에 “서문”, 또는 “머리말”(라틴어로 프래파시오)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말 미사경본은 이 기도를 “감사서문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머리말”은 본문 앞에 덧붙인 부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본문보다 덜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중요한 감사기도에 앞서 하는 예비 기도로서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 까닭은 중세에 축성 부분, 곧 “성찬례 제정 이야기”를 강조하고 감사기도의 동기이고 핵심이자 본질적인 부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공의회 전 미사경본에서는 감사기도는 “감사송”부터가 아니라 “거룩하시도다”가 끝난 뒤에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중세 이후 이 기도문을 일컫는 “서문”, 곧 라틴어 “프래파시오”에는 다른 뜻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이나 순서보다는 공간의 뜻을 담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의 기도문은 “하느님 또는 회중 앞에서 선포되는 본문”을 뜻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성사와 관련된 중요한 기도들, 거행에 앞선 권고 따위를 가리켰습니다. 한마디로 이 기도는 감사기도 앞에 바치는 기도라기보다는 공동체 앞에서 감사를 선포하는 기도입니다. 한편, 이 기도는 아나포라의 번역으로 “고백” “제사” “봉헌” 따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감사송은 언제나 그리스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지향 감사송이 미사에 들어온 까닭은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발설하신 기도를 되풀이한 것에서 찾습니다. 주님께서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바치신 뒤에 당신의 말씀을 덧붙이셨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바오로 사도의 권고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페 5,20) 사도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콜로 3, 15)하고 말하듯이 감사는 신앙생활의 근본을 이룹니다. 미사의 감사송에서는 사도의 권고를 확인하고 실천한다고 하겠습니다. 감사기도 자체가 그렇듯이 감사송은 언제나 그리스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감사송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시작 말”로 감사의 당위성을 밝히고, 둘째는 중심 부분으로서 감사의 동기를 밝히며, 마지막 부분은 “거룩하시도다”로 이어주는 기능을 갖습니다. 감사송의 시작 구절은 몇 가지 형태로 굳어져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제2양식의 감사송(=공통 감사송 6)에 나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현행 미사경본의 많은 감사송 가운데에는 이 형태를 조금 다듬은, 다시 말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에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을 덧붙이고,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를 “우리 주”로 바꾸거나, 또는 그리스도 중개를 나타내는 이 부분을 모두 생략한 표현 양식이 가장 많습니다. 그 밖에도 다른 형태들이 꽤 있습니다. 하느님의 호칭에 관해서 부활감사송에서는 하느님을 단순하게 “주님”이라고만 부르고 기원 감사기도의 네 감사송에서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편 거의 모든 감사송에 시간과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 “언제나 어디서나”가 들어 있지만, 둘 다 없는 경우도 있고 “어디서나”를 생략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형태에서 “감사”를 드리지만 다양한 표현으로 “영광”, “찬송”, “찬양”, “찬미”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를 생략하고 단순하게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라고만 표현하는 감사송들도 몇 개 있습니다. 장엄하게 감사드리는 행위에 구원의 가치 있어 감사송의 시작 구절은 방금 전에 시작 대화에서 한 권고와 응답,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의 주제를 이어받으면서 하느님 백성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거룩한 의무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성대한 선포로 감사송과 감사기도는 공식적이고 장엄한 행위로 변합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신자들의 신분과 품위에 맞는 일이고 (마땅한 일),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법을 지키는 일입니다(옳은 일). 감사는 “구원”(salutare)이라고 표현됩니다. “구원”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며 교회가 장엄하게 감사를 드리는 행위에 구원의 가치가 있음을 가리키려 합니다. 여기서 사용한 라틴어 “구원”은 형용사가 명사로 굳어진 것이지만, 보통 “구원을 목적으로 두고 이루어지는 행위”, 곧 “구원의 샘”이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우리말 미사경본은 “구원의 길”로 옮겼습니다. “도리”(aequum)는 “의무”를 느끼는 정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옳은 일”, 곧 “정의”에 평행하는 덕행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고대에는 신에게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는” 사람에게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무”나 “정의”와 같은 어휘들은 로마 문화에서 법률 용어였습니다. 로마 전례의 기도문에서 드물지 않게 법률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실 각 민족의 고유문화는 그곳 신자들의 기도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로마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고대 종교에 있었던 법률 개념도 들어 있습니다. 법률 용어들은 감사드림이 완전한 예배임을 확인 다시 말하여 로마 문화에는 “시민 법”이 있는 것처럼 시민과 신들 사이에 관계를 관리하는 “신적인 법”이 있었습니다. 이 “신적인 법”은 “신들의 평화”(pax deorum)를 보장하기 위한, 곧 신들이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처신해 할 의무들을 규정하였습니다. 이렇게 법률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전례 기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E. 마짜). 그러므로 감사송에 도입된 이러한 법률 용어들은 감사드림이 완전한 예배임을 확인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관계에서 자기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기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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