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교회읽기] 캐럴 ‘성탄절 12일’에 얽힌 이야기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서양에서 널리 불리는 성탄 캐럴 중에 ‘성탄절 12일’(The Twelve Days of Christmas)이라는 노래가 있다. “성탄 절 첫째 날 내 참사랑은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네.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를. 성탄절 둘째 날 내 참사랑은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네. 멧비둘기 2마리와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를. 성탄절 셋째 날 내 참사랑은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네. 프랑스 암탉 3마리와 멧비둘기 2마리와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를. ……” 이 노래의 노랫말은 이런 식으로 열둘째 날까지 이어진다. ‘참사랑’은 계속해서 넷째 날에는 우짖는 새 4마리를, 다섯째 날에는 금반지 5개를, 여섯째 날에는 알을 낳는 거위 6마리를, 일곱째 날에는 헤엄치는 백조 7마리를, 여덟째 날에는 젖을 짜는 하녀 8명을, 아홉째 날에는 춤을 추는 아가씨 9명을, 열째 날에는 껑충껑충 뛰는 남자 10명을, 열한째 날에는 피리 부는 사람 11명을, 열둘째 날에는 북을 치는 사람 12명을 보낸다. 그러니까 선물을 받는 사람, 곧 나는 성탄 시기 12일 동안 날마다 전날 받은 선물에다 새로운 선물을 한 가지씩 더 받는다. 이 노래는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유래와 기원을 말해 주는 일화에는 교회의 아프고 고통스럽던 역사가 담겨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노래는 영국에서 가톨릭교회가 탄압을 받던 시기에 가톨릭 신자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해 주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1558년부터 300년 가까이, 그러니까 1829년 영국 의회가 가톨릭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선포할 때까지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 가톨릭의 신앙 행위나 의식을 일체 표현하거나 거행할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이 시기에는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것이 범죄행위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전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한 가지 방법이 노랫말을 암호화하여 박해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주요 교리를 그 안에 담는 것이었다. 교리를 암호화한 노랫말로 아이들에게 가르쳐 이런 식으로 그들은 아이들이 알아야 할 가톨릭 신앙의 요체를 담은 노래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12절까지 이어지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저 옛날에 짐짓 낙서라도 하는 것처럼 물고기 표시를 그림으로써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임을 넌지시 드러내곤 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이 노래에서 말하는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는 무엇일까? 먼저, 선물을 주는 ‘참사랑’은 하느님이시고, 그 선물을 받는 ‘나’는 세례를 받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선물들 12가지가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배나무에 앉아 있는 자고새 1마리 →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멧비둘기 2마리 →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프랑스 암탉 3마리 → 믿음, 희망, 사랑, 곧 향주삼덕 우짖는 새 4마리 → 네 복음서 또는 복음사가들 금반지 5개 →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 곧 오경 알을 낳는 거위 6마리 →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기간 6일 헤엄치는 백조 7마리 →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 또는 일곱 성사 젖을 짜는 하녀 8명 → 8가지 참된 행복 춤추는 아가씨 9명 →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9가지 열매 껑충껑충 뛰는 남자 10명 → 10계명 피리 부는 사람 11명 → 배반자 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충실한 사도들 북을 치는 사람 12명 → 사도신경에 나오는 12가지 믿을 교리 그러나 이 캐럴의 기원과 유래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 모든 이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를 입증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예컨대 성공회 신자들도 위에 열거한 내용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노래를 활용한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복잡하고 때로는 난해하기까지 한 교리의 요점들을 기억하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성탄절 12일’ 날짜는 역법과 교회 전승에 따라 달라 한편, 이 캐럴의 제목인 ‘성탄절 12일’은 오늘날의 달력과 전례력 기준으로 12월 25일부터 1월 5일(주님 공현 대축일 전날)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이 시기의 날짜는 역법(曆法)과 교회 전승에 따라 다르다. 또한 이 시기를 지내는 방식도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서방 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동방박사들(세 왕)이 아기 예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 도착한 때로 기념한다(마태 2,1-12 참조). 동방박사들이 몇 명이나 왔는지는 복음서에 나타나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는 사실로 미루어서 세 명이었다고 생각해 왔다.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1월 6일을 ‘세 왕의 날’ 또는 ‘왕들의 날’로 지내며, 12월25일뿐만 아니라 이날도 선물을 주고받는다. 어떤 곳에서는 앞의 캐럴 노랫말처럼 성탄 시기 12일 동안 날마다 선물을 주고받는다. 다른 전례력을 사용하는 동방 교회에서는 1월7일에 성탄을 기념하고 19일에 주님 공현을 기념한다. 그런가 하면 16세기까지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다분히 이교적인 요소를 곁들여서 성탄절을 지냈다. 이 무렵이 시기적으로 한 해가 바뀌는 때인 만큼, 성탄절을 지내면서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고 시작한다는 뜻에서 악령들을 쫓아내는 의식도 거행한 것이다. 이제 성탄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면 주님 공현 대축일 전날인 1월 5일에 사람들은 그동안 꾸며 놓았던 성탄 장식들을 치우곤 했다. 그리고 성탄 시기를 보내면서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세 왕의 방문을 기념하여 ‘왕의 케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한낱 연례행사처럼 지내는 성탄절에는 이렇듯 여러 가지 일화며 의식과 행사들이 얽혀 있다. 오늘날에는 성탄 시기가 예수 성탄 대축일, 성 스테파노 축일, 성 요한 사도 축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성 토마스 베케트 축일, 성가정 축일, 성 실베스테르 교황 축일, 천주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축일, 예수 성명 축일, 성녀 엘리사벳 시튼 축일, 성 요한 뉴만 축일로 이어진다. 이제 성탄 시기는 우리가 그 의미를 아는 만큼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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