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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캔들마스를 아시나요?(주님 봉헌 축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8 조회수6,252 추천수0

[세상 속의 교회읽기] 캔들마스를 아시나요?

 

 

모세 율법에 의하면, 맏아들을 낳으면 하느님께 바쳐야 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는 40일 또는 80일 후에 부정을 씻어내야 한다.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도 이 규정에 따라 성전에 가셔서 첫아들인 예수님을 봉헌하셨고 정결 예식을 거행하셨다. 그리고 교회는 이 일을 성탄 대축일인 12월25일에서 40일째 되는 2월2일에 기념한다. ‘주님 봉헌 축일’이다.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낸 지는 꽤 오래되었다. 380년경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자가 그리스도의 무덤 성당에서 이 축일을 장엄하고 성대하게 지내는 광경을 보고 일기에 남긴 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542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휩쓸던 재앙(페스트)이 끝난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이 축일을 널리 지내도록 명했다. 이로써 동방교회에서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고, 차츰 서방교회도 지내게 되었다.

 

이 축일 미사의 복음은 시메온과 한나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고, 시메온이 예수님을 두고 ‘이방인들에게 계시의 빛’이라 말했다고 전한다(루카 2장 참조). 그래서 이 축일을 동방교회에서는 ‘휘파판테’(Hypapante, 주님과의 만남) 또는 ‘만남’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축일이 서방교회에 전해진 것은 마리아 신심이 한창 고조된 때였고, 그래선지 어느 면에서는 아들 예수님보다는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는 데에 무게가 더해졌다. 명칭조차도 성모님이 정결 예식을 거행한 것을 기념하는 ‘성모 취결례 축일’이었다.

 

교회는 1969년에 이 축일의 이름을 ‘주님 봉헌 축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이 1974년에 발표한 신심에 관한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이 그 의미를 설명한다. “주님 봉헌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은 2월2일의 축일도 그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참작한다면, 아드님과 어머니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축일입니다.”(7항)

 

이를테면, 교회는 성모님이 예수님을 봉헌하심으로써 비로소 구세주 예언이 성취되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시작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빛’이신 예수님 기념해 초 축복

 

이 축일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방인들의 빛’이신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을 기념하여 초를 축복하고, 이 초에 불을 켜서 들고 행진하여 성당으로 들어갔다. 이 행렬은 참회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1960년대까지 이 축일에 사제는 보라색 제의를 입었다. 이 전통이 이어져서 오늘날에도 교회는 1년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하고, 전례에 이 초들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시메온의 말마따나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기리고 기념하여 초를 축복하고 촛불 행렬을 하는 것을 당연하고 걸맞은 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 축일을 서양에서는 흔히 ‘캔들마스’(Candlemas)라고 부른다. 예수 성탄 대축일을 크리스마스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캔들마스 또한 성대한 축일에 속한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축일에 프랑스 등 유럽 일부 지역에는 크레페를 만들어 먹는다. 가족들이 모여 크레페를 만드는데, 저마다 손에 동전을 쥔 채로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다음 캔들마스까지 1년 동안 내내 재물과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에서는 이 축일에 앞서 주님 공현 대축일에 ‘로스카 데 레예스’(Rosca de Reyes, ‘왕들의 케이크’라는 뜻)를 만드는데, 이 빵 안에 아기 예수 인형을 숨겨 놓고 빵을 먹다가 인형을 발견한 사람이 캔들마스 모임 때 음식을 장만해 온다. 정교회 신자들은 이 축일에 밀랍으로 초를 만들어 교회로 가져가서 교회나 가정에서 쓸 수 있도록 축복해 주기를 청한다. 이날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하여 성탄을 맞아 장식해 놓은 것들을 철거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축일을 두고 어떤 이들은 부분적으로 아일랜드 게일족의 축제인 임볼릭(Imbolc)이나 로마의 축제인 루페르칼리아(Lupercalia) 같은 이교(異敎) 풍습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임볼릭’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축제로 2월1일에 지냈는데, ‘킬데어의 성녀 브리지다의 날’이라고도 불렸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녀 브리지다는 본래 브리지다 여신으로 숭앙되었고, 임볼릭은 이 브리지다 여신을 기리는 축제였다고 한다. 참고로, 브리지다 성녀의 축일은 주님 봉헌 축일 전날인 2월1일이다. 루페르칼리아는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로마 이교의 축제로 2월15일에 지냈다. 이 축제는 494년 교황 젤라시오 1세(492~496)가 2월2일로 날짜를 바꿔 지내게 할 때까지 줄곧 2월15일에 거행되었다.

 

 

빛이 강성해지는 시기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봉헌 축일 지내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캔들마스가 이러한 축제들을 대신한다고 말할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캔들마스는 겨울이 한창인 12월의 동지와 봄이 한창인 3월의 춘분 사이의 중간쯤 되는 시점이다. 겨울이 절반가량 지났다고 생각하며 봄을 기다림직한 때다. 이제 사람들은 힘을 내어 봄을 기다리기로 마음을 다잡게 될 것이다. 겨울이 비록 춥고 밤이 긴 계절, 악의 세력인 어둠이 선의 세력인 빛을 압도하는 계절이지만, 벌써 동지도 지났으니 결국에는 물러가고 말리라는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빛이 점점 강성해지는 시기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봉헌하는 축일을 지내는 것은 서로 맞아 떨어지는 일이다.

 

눈밭에 피어난 스노드롭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날을 ‘그라운드호그의 날’이라고도 부른다. 속설에 따르면, 그라운드호그(비버의 한 종류)가 겨울잠을 자다가 이날 깨어나 밖으로 나오는데, 해가 떠서 자기 몸을 비추면 그림자를 보고 겨울잠을 그만 잘 것인지 아니면 더 잘 것인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라운드호그가 다시 겨울잠을 자기로 하면 날씨가 따뜻해지지 않고 6주 동안 추위가 더 계속되며, 따라서 사람들은 남은 겨울에 대비한다고 한다.

 

겨울이 길고 추운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봄이 오기를, 빛과 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간절했다. 그리고 그 절실한 심정으로 추위 속에 꽃을 피우는 식물에서 희망을 보았다. 아직 추운 2,3월에 올라와 피어나는 희고 작은 눈덩이 같은 꽃, 스노드롭(Snowdrops)이 그것이다. 그래서 캔들마스가 오기 전에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의 이름을 ‘캔들마스 종’(Candlemas Bell)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했다.

 

이 꽃과 관련해서 애틋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스노드롭이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려고 몸부림칠 때 한 천사가 무사히 꽃을 피우도록 도와주었다. 때마침 하와가 자신으로 해서 이 세상에 추위와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에 절망하여 뉘우치며 울었다. 이 모습을 본 천사는 스노드롭 꽃을 희망의 표지로 삼으라며 위로했다.’ 그래서인지 그리스도인들은 이 꽃을 세상의 희망이신 예수님의 상징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캔들마스에 봉헌되어 타오르며 어둠을 밝히는 초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의 상징으로 여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2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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