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 전례와 신앙생활 수난과 파스카 신비 새기며 부활의 기쁨 맞이할 준비를 재의 수요일인 2월 10일을 시작으로 올해도 예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참회와 보속의 기간인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사순시기는 대림시기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경축하는 한 해를 의미하는 전례주년 두 축 중 하나이다. 사순시기 의미와 전례를 충분히 이해하고 삶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은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에 필수적이다. 교회의 전례 거행은 단순한 과거 사건의 되살림이나 기억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 구세사적 사건들이 품고 있는 ‘신비를 현재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전례는 단 한 번 일어났던 구원의 위대한 업적이 되풀이해서 ‘현재가 되게 하는’ 신비이다. 그래서 전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구세사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현재에 다시금 체험하며, 다가올 구원을 미리 맛보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례는 신앙의 핵심이다. 교회의 연중 전례 주기는 절기들(대림, 성탄, 사순, 부활, 연중)과 여러 축일들로 구성된다. 전례 거행의 주기는 하루, 한 주, 그리고 한 해의 리듬을 갖는다. 특별히 교회는 주님의 강생으로부터 그분의 영광과 재림에 대한 기다림에 이르기까지, 구세사의 모든 측면들을 한 해의 주기 안에 배분했고, 그것이 전례주년으로 표현된다. 교회의 한 해는 성탄 준비, 즉 대림시기부터 시작된다. 절기들 가운데 총 34주간을 구성하는 ‘연중시기’ 사이에 대림, 성탄시기와 사순, 부활시기가 놓여 있다. 사순시기 유래와 의미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 예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회개와 기도의 시기이다. 재의 수요일 후 첫 주일을 사순 제1주일로 해 모두 6번의 주일을 지나게 된다. 사순 제6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서, 이때부터 주님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성주간이 시작된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부터 성 토요일까지는 ‘파스카 성삼일’로 사순시기와는 구분된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부활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다. 그래서 주님의 수난을 슬퍼하기보다는 부활의 기쁨에 비추어 고통과 죽음을 묵상해야 한다. 고행과 단식 역시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사랑과 나눔의 실천, 수난에 참여해 얻게 될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연관된다. 사순시기 전례 사순시기 전례는 재의 수요일 이마에 재를 받는 예식으로 시작된다. 사순시기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기쁨을 상징하는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바치지 않고, 사제의 제의도 회개와 속죄를 상징하는 보라색(자색)으로 바뀐다. 아울러 수난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칠 것이 권고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되는 마지막 주간은 성주간으로 정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파스카 신비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가장 거룩한 기간으로 보내는데, 사순시기는 성 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에 해당한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 전례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서, 하나는 세례의 회상과 준비, 또 하나는 참회와 보속의 시기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신자들은 부활의 신비, 파스카 신비를 준비한다. 그래서 사순시기 전례의 흐름은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이는 특히 주일 복음 말씀에서 잘 알 수 있다. 2016년(다해)의 사순시기 주일 복음 말씀의 주제와 구절은 다음 표와 같다. 사순시기 주일과 평일 전례의 주제들 사순시기 특징적 요소 중 하나는 세례성사의 준비이다. 세례는 회개와 참회의 영적 자세를 기본으로 한다. 사순 제6주일, 즉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외에 사순 1~5주일의 복음은 이러한 요소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순 제1주일 복음은 예수의 유혹, 제2주일 복음은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에 대한 것이다. 3~5주의 복음은 가, 나, 다해에 따라 다르다. 특히 가해의 3~5주일의 복음은 세례성사와 관련된 것으로서, 가해의 사순 제3주일 복음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한 4,5-42), 제4주일은 태중 소경의 치유(요한 9,1-41), 제5주일은 라자로의 부활(요한 11,1-45) 이야기이다. 다해인 올해는 회개, 잃어버린 양, 간음한 여인에 관한 것이다. 1~5주일의 제1독서는 그 주의 복음과 관련된 구약의 내용으로, 이스라엘의 구원 신비 여정을 제시하는 구절들로 구성된다. 제2독서 역시 복음 내용과 관련돼 그 이해를 돕는 구절들이다. 그래서 사순 1주일 제2독서는 악의 세력과의 투쟁과 승리의 영광, 2주일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의 동참을 통한 구원의 약속, 제3주일은 구원을 위한 회개의 촉구, 제4주일은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제5주일은 하느님 자비 안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다. 사순시기 평일 역시 회개와 세례성사를 두 축으로, 부활을 맞이하는 준비와 관련된 주제를 담고 있다. ■ 사순시기에 보면 좋을 영화 두 편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우리들과 같은 가톨릭 신자인 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의 신앙 고백적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는 관객에게 ‘거룩한 짓눌림’의 시간을 선사한다. 2004년 ‘재의 수요일’에 맞춰 개봉됐던 이 영화는 겟세마니에서 체포돼 쇠사슬에 묶인 채 짐승처럼 끌려가며, 모욕과 폭력 앞에서 덜덜 떠는 구세주를 잔인하리만치 세세하게 묘사한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의젓한 초인적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다. “왜 하느님은 이렇게까지, 도저히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참혹한 자기 살해의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어떻게 왕이신 당신께서 날 위해 죽으실 수 있는가?” 하는 경외가 관객들을 짓누른다. 그리고 그 끝은 그 무한한 사랑에 대한 경탄으로 이어진다. - 밀양 가장 어려운 종교적 질문을 던지는 ‘밀양’. 아들을 잃은 슬픔을 신앙으로 극복하려 한 주인공 신애. 억지로 살인자를 용서하려고 했지만 그에게서 참된 참회를 발견할 수 없었던 그녀는 신의 처소로 여겨지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죗값을 치러도, 그냥 자기 죄를 후회한다고 해도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고 영화는 주장한다. 자기 죄의 결과로 인해 누군가가 떨어져 몸부림친 절망과 슬픔의, 그 깊은 어둠의 계곡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회개자의 모습을 신애는 기대했다. 영화 ‘미션’의 로드리고는 자신이 죽이고 노예로 만든 원주민들을 위해, 평화주의자 가브리엘 신부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기 목숨을 바친다. 참회한 그는 원주민들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선택하고 마침내 목숨을 바침으로써, 참회로만 용서를 받았다는 안이한 평화가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신뢰하지만, 죄인인 인간의 입장에서는 좀 더 철저하고 진지한 참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사순시기에 알아야 할 전례와 교리 상식 재의 수요일 -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는 회개와 보속의 의미로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행한다. 사제는 이때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자기 죄를 뉘우쳐 영원한 삶을 구하라고 권고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수난을 묵상하게 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예루살렘에 들어서실 때, 군중들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하고 환호하지만 곧 돌변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친다. 성대한 입당으로 시작된 전례는 이내 예수님의 처절한 수난 이야기로 이어진다. 단식과 금육 -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시기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자주 묵상하고,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회개와 보속, 봉사를 권고하면서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단식과 금육을 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신자들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절약한 몫을 자선사업에 바쳐 어려운 이웃과 나누도록 해야 한다. 성주간 -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부활 성야 전 성토요일까지의 일주일을 이른다. 사순시기를 회개와 보속으로 지내온 신자들은 1년 중 가장 거룩하게 지내는 이 한 주간 동안 더 깊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체험한다. 사순시기는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이고, 이후 성금요일과 성토요일로 파스카 성삼일이 구성된다. 십자가의 길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의 14가지 중요한 장면의 형상을 하나씩 지나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기도이다. 초대 교회 때 순례자들이 실제로 수난의 현장을 순례하며 드렸던 기도에서 유래한다. 19세기 이래 수난 묵상에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시기에 널리 행해진다. 판공 - 한국교회는 교회법에 따라 모든 신자가 1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순과 대림시기에 의무로 받는 고해성사는 신자로서 쌓은 공로를 헤아려 판별한다는 뜻으로 ‘판공(判供)’ 성사라고도 한다. 부활시기를 앞두고 지켜야 하지만, 제때에 받지 못했을 경우,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으면 판공을 한 것으로 인정한다. [가톨릭신문, 2016년 2월 7일, 박영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