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톡톡] 평신도가 미사 때 복음을 읽을 수 있는가? 저희 본당에선 벌써 오년 전부터 독서뿐 아니라 복음도 남녀 평신도가 읽고 있습니다. 게다가 신자들은 항상 앉아서 들어요. 제가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자주 하는데, 미사 때 이렇게 하는 것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 비첸차에서 죠반니 - 미사 통상문은 악보에 비길 수 있어요. 악보 속의 모든 표시는 연주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전체 안에서 짜여져 알맞게 정해진 것들이지요. 가수 한 사람이나 오케스트라 단원 한 명이 자신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부분을 노래하거나 연주한다면 음악 전체가 엉망이 되겠지요. 일반 평신도가 미사 때 복음을 읽는 것도 이와 같아요.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라 전체 조화를 깨뜨리는 큰 문제가 되지요. 그런데 늘 이렇게 하고 있다거나, 더 나아가 본당신부의 허락까지 받은 것이라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사례는 성체성사 거행 안의 다양한 역할들에 대한 중대한 오해이자 예식을 왜곡한 것이에요. 사제와 평신도의 역할 사제의 역할과 평신도 회중의 역할 - 상호 부단한 관계를 주고받는 양극점 또는 수렴점 -, 그 사이에는 몇몇 사람들, 또는 임무가 확실히 규정된 배역들이 있어서, 서로 내치거나 간섭함이 없어요. 어떤 이는 부차적이라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Sacrosanctum concilium)은 이런 관계에 대해 분명한 관심을 표현하며 이렇게 강조하지요. “전례 거행에서는 누구나 교역자든 신자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예식의 성격과 전례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딸린 모든 부분을 또 그것만을 하여야 한다”(전례헌장 28항). 공의회의 결정 덕분에, 사제가 하던 여러 기능들, 즉 주례서부터 독서와 노래하게 되어 있는 본문을 낭독하는 데까지 사제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특권이 사라졌어요. 표현하고 참여하는 완전한 능력이 평신도 회중에게 다시 주어졌어요. 사실 회중이란 교회가 보여질 수 있게 특별하게 드러난 것과 꼭 같지요 - 그래서 교회의 본성과 특성들을 밝혀 드러내주지요 -, 즉 두루뭉술하고 획일적인 군중이 아니라 서품에 따라(ordinato) 모인 백성이랍니다. 거기에선 모든 일원들 또는 그룹들이 전체를 위한 봉사에서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지요. 성찬례에 모인 회중에서 머리 자리에 위치한 인물이 사제랍니다. 그는 성품성사(여기서 나온 말이 ‘서품에 따른 직무’)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모임을 주례하고, 기도를 바치고,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고, 백성을 희생제물과 결합시키며, 영원한 생명의 빵을 나누어주어요. 서품에 따른 직무들 가운데에는, 주교직 외에도, 사람들이 언제나 큰 영예로 여겨온 부제직도 있답니다. 부제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특히 복음을 선포하고 영성체 때 성혈을 나누어주는 봉사를 해요. 회중이 할 일은 모든 형태의 개인주의와 분열을 피하면서 한 몸을 이루는 일이지요. 그 일은 유기적인 참여를 요구해요. 말씀을 듣는 일, 기도, 노래, 봉헌, 영성체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작과 자세에도 일치가 요구된답니다. 봉사를 위한 직무들 주례자와 회중을 위해 봉사하도록 규정된 직책 또는 직무들이 여럿 있는데(봉사한다는 말이지 특권이나 권력을 뜻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 직무들은 전례 거행의 개별 순간들과 맞게 적절히 지정되고 준비된 이들이 수행하지요. 그런 직무 수행자들이 복사, 독서자, 주도자, 성가대, 제대 봉사자 등이에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의 수는 회중의 인원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변하지만, 신자들이 참여하는 미사에서 요구되는 최소 인원은 적어도 세 명, 그러니까 복사, 독서자 그리고 선창자랍니다. 선창자는 백성의 노래를 이끌고 받쳐주는 임무를 맡는데, 성가대가 이때 옆에 있다면 더욱 좋지요. 복사는 제대에서 사제를 돕는데, 특별한 조건에서는 신자들에게 성체도 분배해요. 독서자 - 복사처럼 ‘직이 수여된’, 즉 정해진 방식으로 고유한 예식에 따라 임명된 직무자 - 의 임무는 복음을 제외한 성경 본문을 낭독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직무는 아무 신자라도 수행할 수 있어요. 단, 성서적, 전례적, 영적 그리고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준비가 되어 있는 신자라야 하겠지요. 하느님의 말씀 평신도들에게 열려있는 직무들 가운데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중요한 직무는 독서직입니다. 이 임무를 위해서 장소와 책이 따로 정해져 있어요. 장소는 독서대인데,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책받침대를 높이 세운 자리이지요. 독서집이라고 부르는 책은 모든 전례 거행에 쓰이는 성경 독서 모음집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성체성사를 하는 법은 결코 없으며, 독서자가 읽을 때 모두는 앉아서 듣습니다. 복음을 읽을 때는 예외가 되는데, 모두 일어서서, 십자성호를 긋고, 시작할 때와 마칠 때 환호를 외치죠. 그리고 끝으로 독서자는 복음서의 펼쳐진 쪽에 입을 맞춘답니다. 동방과 서방은 고대로부터 전통적으로 복음 독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어요. 복음서에 공경을 표하고 고귀한 책처럼 값비싼 장식으로 꾸몄으며(이탈리아 교회에서 펴낸 고급 금장판을 보면 정말 예술품이지요!), 이를 읽고 선포하는 것도 부제가, 또는 부제가 없으면 사제가 하도록 정했답니다. 복음 말씀 안에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렇게 가르쳐요(전례헌장 33항) -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어 오늘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이지요(전례헌장 7항). 복음 독서에 동반되는 전례적 동작들(앞서 말한 것들 외에, 장엄 전례 때의 노래, 분향, 촛대, 행렬 등등)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해 현존하신다는 회중의 믿음을 표현하지요. 그러므로 전례 거행 중에 복음 독서를 아무에게나 맡기는 것은 직무에 대한 중대한 오해일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말씀이신 그분께 대한 존경심의 결여에요. (R. Falsini, La liturgia. Risposta alle domande piu provocatorie, San Paolo, Cinisello Balsamo 1998, 17-19)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5년 겨울호(Vol. 32), 번역 최종근 빠코미오 신부(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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