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기획] 삼위일체 교리와 신앙인의 삶
‘성부 성자 성령’처럼 사랑으로 일치해야 - ‘삼위일체’. 마사치오 작, 산타 마리아 노벨라 소장.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첫 번째 맞이하는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하느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은 완전히 서로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신성을 이룬다는 삼위일체 신비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삼위일체 교리 모든 일 전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의 성호경을 바치고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인사로 미사를 시작하는 신앙인들에게 삼위일체 교리는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신앙의 신비’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인 하느님 아버지, 구세주인 하느님 아들, 생명의 주님인 성령, 이 세 위격 안에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이 신앙 고백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표현이며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의이자 신앙의 핵심이다. 역사 안에서 겪은 구원의 체험을 정립하려는 시도에서 생겨난 삼위일체 교리는 유일신을 믿는 유다교와 이슬람교로부터도 그리스도교를 구분해 주는 신앙 고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교리는 교회 역사의 처음부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의 일신론에 본바탕을 두고 있던 면에서 성부와 같은 힘과 영광을 지닌 위격의 존재는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교리상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800년의 시간이 걸렸다.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공의회에서 교부들은 성령을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천명했으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하느님이라고 공표했다. 이로써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같은 분이 아니라 다른 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의 기틀이 마련됐다. 대축일 유래 삼위일체 대축일 제정은 그러한 교리의 형성 과정과도 맞물려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특별한 예식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사도 시대 이후부터 유스티노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저서에서 삼위일체 찬미송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단들로 인해 삼위일체 교리가 핵심적인 주제로 떠오르면서 교부들은 교리를 옹호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주일 미사에 사용될 찬미가 화답송 감사송 등을 준비했다. 대 바실리오는 “거룩한 삼위이시여! 저희가 죽을 때 저희들을 구하소서”라는 후렴구를 기도문에 포함시켰다. 800년경 알쿠인은 주간 평일 미사를 위한 미사 경본을 만들며 맨 처음에 삼위일체 미사를 수록했고, 10세기 초 리에주의 주교 스테파노는 미사를 보완하기 위해 삼위일체 성무일도를 만들었다. 삼위일체 축일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됐으며 지역에 따라 거행 날짜가 다르게 기념되기도 했다. 특별히 영국에서 널리 지켜졌다. 이유는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첫 주일에 캔터베리 대주교로 축성된 성 토마스 베케트(1118~1170)가 이 날을 영국 교회의 삼위일체 기념 축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1334년 요한 22세 교황(재위 1316~1334)은 삼위일체 축일을 성령 강림 축일 다음 주일로 지정하고 로마 전례를 거행하는 모든 교회의 의무 축일로 발표했다. 1911년 교황 비오 10세(재위 1903~1914)는 이 축일을 대축일로 공표했다. 우리의 삶 삼위일체 교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온전한 고유성과 온전한 자유를 지니면서도 한 분으로 행동하신다는 가르침이다. 신학자들은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이 우리 인간 사회 안에서도 공동체의 원리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 때, 마음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겉으로만 가족일 뿐 사실상 개개인의 집합에 불과할 것이고, 반대로 아버지나 어머니가 독단적으로 집안일을 결정하고 가족들은 따라주기만을 강요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유로운 결정 속에 서로를 배려하며 가족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 그 가족은 한마음을 지닌 참된 공동체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 일상과 연결될 수 있다. 한 신학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기 고유한 분이시나 항상 사랑으로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시기에 서로가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 하느님”이라고 강조하고 “이러한 하느님 모습이 부부, 부모자녀, 사회 안에서 구현될 때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 사회의 모습에 직결되는 소중한 교회의 가르침이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22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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