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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의 숲: 성찬 제정 이야기와 축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09 조회수7,734 추천수0

[전례의 숲] 성찬 제정 이야기와 축성

 

 

축성을 위한 성령 청원 기도를 바치고 나서 사제는 “성찬 제정 축성문”, 곧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이야기”(Narratio)를 낭송합니다. 감사기도의 이 부분을 보통 “이야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이루신 사건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앞뒤 기도문에서는 현재 시제,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동작을 묘사할 때 과거 시제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4양식에서는 명백하게 “거룩하신 아버지”하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변화시켜 아버지께 봉헌하셨고, 사도들에게 먹고 마시라고 주셨으며, 당신을 기억하여 이것을 영구히 거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미사경본 총지침 79). 이 말씀과 동작으로 미사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그분의 구원 업적이 이루어집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가 축성된다고, 곧 성체와 성혈로 바뀐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축성은 감사기도 전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이해합니다(총지침 78). 예수님의 그 말씀은 감사기도 전체에서 떼어 따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동 시리아의 “아다이와 마리 사도 아나포라(감사기도문)”에는 성찬 제정 이야기가 없습니다.

 

성찬 제정 이야기는 신약 성경 네 곳에 나옵니다(1코린 11,23-25; 마태 26,26-28; 마르 14,22-24; 루카 22,19-20). 마르코와 마태오 본문은 팔레스티나(예루살렘) 교회 전승을, 바오로와 루카의 본문은 안티오키아 교회의 전승을(그리스와 다른 민족 출신 그리스도교인) 대표합니다. 전례 거행이 성경 편집에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본문들의 기원은 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봅니다.

 

 

빵과 포도주 축성은 감사기도 전체를 통해 이루어져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찬 제정 이야기가 확정된 감사기도문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정 이야기 내용(신학)이 더 보충되고 다듬어졌습니다. 다른 한편 신심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로마 전문(1양식)에서 예수님께서 “손에 빵(잔)을 드시고” 대신, “거룩하고 존엄하신 손에 빵(이 귀중한 잔)을 들고”라고 말합니다(우리말에는 “존엄하신” 생략). 그러나 새로 만든 모든 감사기도문에서 성경 본문의 소박함과 단순함을 간직합니다. 2양식은 빵에 대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한편 3양식은 빵과 잔에 대하여 제1양식처럼 “찬양하시고”를 덧붙입니다(“감사를 드리며 찬양하시고”). 4양식은 빵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고”를 “찬양하시고”로 대체합니다(우리말에는 “찬양”을 “축복”으로 옮김). 각 기도문들은 예수님께서 유다교의 식탁 기도문 전통에 따라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하느님께 찬양 기도문을 바치신 맥락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빵과 잔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새로 만든 감사기도문들에서 똑같은 형태를 지닙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런데 제정 이야기의 잔 말씀에 나오는 “많은 이를 위하여”(마르 14,24; 마태 26,28)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모든 이를 위하여”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해석한 결과입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 같은 셈족 언어에서 “많은” 표현에는 “모든”의 뜻도 들어 있다는 사실도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사도좌는 미사경본 개정판을(2002; 수정판 2008) 번역할 때 “모든 이를 위하여” 대신 원문대로 “많은 이를 위하여”로 옮겨야 한다고 결정(하고 지시)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말 미사경본에서도 “많은 이를 위하여”로 바뀔 것입니다.

 

사도좌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많은 이를 위하여” 표현은 복음서가 제정 이야기를 전하며 선택한 어귀로서, 라틴어(pro multis) 뿐 아니라 동방 교회에서도(그리스어, 시리아어, 콥트어, 아르메니아어, 슬라브어 따위) 항구하게 복음에 충실하게 옮기고 있습니다. 성경의 현대 번역들도 거의 “많은 이를 위하여”로 옮깁니다(우리말 성경에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나아가, “많은 이”의 표현은 예수님의 구원이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음을 말하면서, 자신의 의지나 참여 없이 기계적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곧, 신앙의 선물과 회개의 노력 없이 모든 이가 자동적으로 천국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이 번역은 인간 편에서 구원을 수락할 자유도 비추어주며, 아울러 성찬례 참석자들이 모든 이가 그 선물을 받아들이도록 삶으로 증언할 의무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구절은 미사에 모인 회중을 교회의 넒은 의미로 연결합니다. 곧 모든 시대와 장소로 열린 교회로서 “여기 모인 이들”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이를 위하여”가 구원의 대상을 좁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체와 성혈을 보여주기 위해 교우들에게 들어 보여

 

성찬 제정 이야기에는 여러 표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축성의 말씀, 성사를 위한 본질적인 말씀으로 간주하였던 중세 역사가 주요 배경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뒤에 사제는 교우들에게 들어 보입니다. 이 동작은 13세기에 성체 신심을 반영하여 생긴 것으로 회중에게 성체와 성혈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무렵 사제는 회중에게 어깨를 보이고 제대를 바라보고 미사를 거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현시 뒤에 무릎을 꿇습니다(한국에서는 깊은 절을 할 수 있음). 이 동작도 중세에 생겼습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신자들은 감사기도 때 서 있을 수 있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축성 때는 무릎을 꿇습니다. 무릎을 꿇지 않는 이는 사제가 무릎을 꿇을 때 깊은 절은 합니다(총지침 43). 무릎을 꿇는 것은 본디 참회의 태도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큰 존경이나 경배의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축성된 성체와 성작을 들어 보일 때 분향할 수 있습니다. 분향은 성경에서 뜻하는 대로 공경과 기도를 표현합니다(시편 141,2; 묵시 8,3). 한편 축성 바로 전에 종소리로 신자들에게 신호를 해 줄 수 있고, 성체와 성작을 들어 보일 때 종을 칠 수 있습니다(총지침 150). 그러나 분향하고, 종을 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예식의 흐름과 조화를 방해하고 신자들의 주의를 거행보다는 주변 요소들에 기울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순간에는 다른 기도문을 바치거나 노래를 해서는 안 되고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를 연주할 수 없습니다(총지침 32, 구원의 성사 53).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6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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